나는 살아오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좋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절을 찾거나 조사의 행적을 다룬 소설책 등을 읽거나 직장에서 신행단체에 가입하여 스님의 법문을 듣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직장 상사의 권유로 2003년 9월 우곡선원을 찾게 되었고, 글이나 말이 아닌 마음과 행동으로 체득하게 되는 참선수행의 길을 가게 되었다. 하지만 선원에서 수행을 하는 과정에서도 오랫동안 중생놀음의 훈습에 젖어 온 세월이다 보니 직장생활을 핑계로 선원에 빠지는 경우도 자주 있었으며, 1년 6개월이 지나도 특별히 마음에 와 닿지를 않았고 하고자하는 공부도 잘 되지를 않았다. 다른 도반들은 100일 정진을 하는 등 수행에 열성적이었고 많은 진전이 있어 보였다.

 기실 다른 도반들이 100일 정진을 하는 것을 들은 바 있었지만 별로 마음에 두지 않았었다. 그것은 직장을 다니면서 100일이라는 기간동안 수행을 빠트리지 않고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자의에 의해서 때로는 타의에 의해서 저녁을 먹는 때가 많고 그럴 때면 으레 술 한 잔이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100일이라는 기간이 인생에 비유하면 아주 짧은 시간으로 볼 수 있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러 사람과 일에 부딪치는 것을 생각하면 그 기간을 수행으로 계속 이어간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한 100일 정진이 나에게 또 다른 인연으로 다가왔다.
5월 21일 천성산에 만행을 가면서 차 안에서 선사님께서 100일 정진을 해 보라고 말씀을 하셨다. 나는 “다음에 생각해 보고 기회가 되면 해 보겠다”고 말씀드렸는데, 다음날 천성산의 달빛을 가슴에 안고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100일 정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마음에 다가왔다.

 5월 23일 선원에 100일 정진을 하겠다고 입재를 시작한 지 100일인  8월 30일에 회향을 하였다. 처음 시작 하고보니 그야말로 한여름 내내 수행을 하면서 더위와 싸워야 하는 형국이 되었다. 하지만 한번 하겠다고 한 약속을 저버릴 수 없어 비가 오는 날이나 더위에 밖을 나가기 싫을 때도 선원을 찾았다. 기왕에 한번 시작한 정진을 가능하면 선원에서 하는 것이 올바르고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은 가기 싫을 때도 있었고 “집에서 할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결국 게으름을 극복해야하는 나 자신과의 싸움임을 느끼게 되었고 “그래, 선원에 가자”하면서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수행을 하는 동안 내내 “수행을 방해하는 일이 생겨 중도에 못하는 일이 생기면 어쩌지?”하는 조바심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지방에 갈 일이 있거나 저녁에 약속이 있을 때면 낮에 미리 선원을 찾아 혼자서 정진을 하였다. 이러한 정진 중에 저녁에 「혜일거사님과 반야월, 혜련화 보살님」과 함께 정진을 할 때는 혼자 하는 것보다 마음이 푸근하고 위안이 되었다.

 우리는 우물을 파면서 10m정도 파면 물이 나온다는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땅을 판다. 하지만 땅을 파면서 돌부리가 걸리고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래서 9m정도 판 후에 자신이 하는 일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정말 물이 나올까? 지금까지 힘들게 팠지만 물이 나오지 않는데 언제 나올까?”하는 의심으로 나머지 1m를 포기하고 또 다른 곳에 우물을 파기 시작한다. 그러한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중에 결국 물은 찾지 못하고 고생만 하고 만다. 수많은 고통을 이겨내고 신념을 가지고 행하는 자만이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다. 우리의 수행도 이와 같은지도 모른다. 처음 열심히 수행하다가도 자신의 수행에 의심을 가지다 결국 포기하고 이곳저곳 절을 떠돌아 다니며 기웃거리는지도 모른다. 정진을 하는 것이 비록 힘들고 때론 조바심이 나는 경우도 있지만 수행은 언제나 마음에 준비된 고행의 길을 쉬임없이 가지 않으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생각나면 한번씩 하는 수행으로는 수행보다 중생의 맛에 길들여진 훈습으로 무심의 세계에 다가가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된다.

 나는 100일 정진을 하는 과정에서 수행은 결코 즐거움이나 복을 갖고자 함이 아니라 끝없는 수련을 통한 자기성찰과 무심의 지혜로 다가가기 위한 몸부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마음으로 깨달음의 세계로 한걸음씩 다가가지 않으면 결국 중생의 희노애락에 맛들여진 삶을 살 수 밖에 없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100일 정진의 의미는 바로 우리의 수행을 일상생활에서 한시도 놓지 않아야된다는 의미를 가슴속에 되새기는 방편이 아닌가 싶다. 사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수행보다 중생의 훈습에 더 많이 어울리고 더 쉽게 다가가기 때문이다.  

 그동안 성인이 되어 30여년의 세월속에 접해진 불교의 가르침은 그저 마음내키거나 소설을 음미하는 즐거움이다보니 깨달음과는 전혀 먼 길이었다. 금년에 처음으로 행한 100일 정진은 비록 30여년에 비하면 1%에 불과한 기간이지만 마음에 와 닿는 깨우침은 그 몇 배에 이르는 가치를 나에게 안겨주었다.

 이제 다시 새로운 출발을 하면서 오로지 끊임없는 수행만이 나에게 빛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간직하게 되었다. 비록 아직도 중생의 훈습이 많이 남아있어 고심하지만 꾸준한 수행을 통하여 나 자신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확신한다. 이러한 길을 인도하여 무심의 세계에 닿을 수 있는 가능성을 주신 선사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정진하는 과정에 많은 가르침과 격려를 해 주신 선원의 거사님과 보살님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끊임없는 수행을 통하여 중생의 모습에서 보다 깨달음의 세계에 다가갈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 각성 합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