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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와 영원한 자유- 13
“선에서
말하는 경계란 무엇인가요?”
'전생
훈습을 한 단계 벗는 과정'
<법보신문 컬럼/2004-07-07/762호>
Q :
불교수행에서 경계는 필연이고 경계를 넘지 않은 해탈지혜는 없다고 말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경계라고 합니까?
A :
경계는 전생과보에 의한 현생의 지위나 처지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불교수행 측면에서 경계는 반드시 지어야 할 마디이며 그러므로 일어나는 몸과 마음의 변화를 일컫습니다. 마디를 통하여 자라고 지탱되는 대나무처럼 마음도 이와 똑같아 어떤 경계를 맞이하고 초월하느냐에 따라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그 만의 변화를 맞이합니다. 삶의 마디와 같은 경계를 맞이하는 동기는 천차만별이지만 참선수행 과정에서 드러나는 경계는 지혜의 발현으로서 대체로 선이 굵고 분명합니다. 동기부여로 분심이 동하면 마치 산모처럼 심신을 뒤틀며 전생습인의 뿌리가 빠지는 인고를 겪지만 그만큼 전생숙업을 소멸하고 시절인연을 앞당기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넘어야하는 장애가 숙업이고 경계이지만 어떤 경지의 인연으로 마디를 짓고 최상승법을 터득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사바중생의 초기경계를 대체로 비현실적이고 허황된 종교관이며 상근기일수록 내면의 분심이 표출되는 마디가 뚜렷하고, 정.부정을 교차하며 중심을 잡아 제상(諸相)에 물들지 않는 자아를 형성합니다.
사바중생은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굳어진 숙세의 업을 마치 돌덩어리처럼 마음속에 껴안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업장의 질에 의하여 드러나는 분별의식이 자기인줄 아는 식(識)의 노예가 사바중생입니다. 지난 삶의 이력서인 업력에 따라 시대와 부모, 스승인연이 지어지며 운명 또한 전생업장에 의하여 현생의 팔자소관을 빚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운명은 어느 누구의 의지나 조작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이며 인연과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는 만물의 영장이기에 전생도 당연히 인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은 그와 정반대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기에 내생에 축생이나 미물 등의 낮은 근기로 떨어지지 않을 것 같지만 그것은 자가당착입니다.
자연섭리에서 바라본 인간은 고귀하거나 위대할 것도 없는 그냥 한 생명체일 뿐이며 오히려 탐욕을 제어 못하는 곤란스런 무리로 비추어질 겁니다. 먹물로 채운 잔머리로 상대를 이용하고 부려먹은 죄업으로 말미암아 내생에 사람 몸 받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려운 것이 인간입니다.
개오초기 해탈관문에서 마주치는 거리의 군상들 가운데 아수라나 축생의 속성에서 벗어난 사람을 만날 수 없어 당산나무를 도반으로 무상심심미묘법을 토로하고 그로서 할 일을 다 마친듯하여 이 풍진세상을 떠나려는 것도 구도역정에서 나타나는 한 경계입니다.
공덕을 쌓아야 해탈인연을 만납니다. 모든 인간은 확신으로 쌓은 내공이 없으면 죽음을 맞이하는 극한의 공포와 태어날 때 첫 날숨을 쉬기 전의 지독한 고통 속에서 앎을 거의 망실하기에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육도윤회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주워들은 식견은 불을 건너지 못하는 목불(木佛)과 같아 윤회고해를 뛰어넘을 밑천이 되지 못합니다.
내공이 없는 하근기일수록 구원이나 미신에 심취하고 형상이나 느낌 등 허망한 오온(五蘊)을 의지처로 삼기에 진정한 자기재산을 만드는 해탈지혜는 귓전에도 닿지 않습니다. 전생업장을 끌어내는 경계는 어렵고 두렵지만 경계없는 심신수행은 인생낭비입니다. 종기를 터뜨리지 않고 상처가 아물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음이듯 알량한 식견으로 해탈문전을 얼씬거리다가 법마(法魔)에 빠지면 그나마 자기중생을 부정할 수 있는 경계는 그림의 떡입니다. 화산이 폭발하듯 확철대오로 일거에 전생업장을 소명하는 대근기도 있지만 돈오점수의 한마디 한마디는 진일보된 일생과 같습니다.
시절인연이 도래하여 경계가 극명히 표출되는 경우는 기포가 터지듯 전생에 지녔던 몸의 체취와 습성을 그대로 드러내곤 합니다. 전생 습인이 인간 몸을 받아 누리는데 눈 밝은 자로부터 허물이 벗겨지는 경계와 맞닥뜨렸으니 숨은 귀신이 발악하며 뒤집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인두겁을 뒤집어쓰고 배우고 익혀 그럴듯하게 치장된 속물중생의 내면세계는 목불인견의 아수라판이며 하등동물 습인을 지닐수록 표독하고 야비하며 탐욕스럽습니다.
불도(佛道)는 어쭙잖고 허무맹랑한 종교적 신앙이 아니라 전생습인을 제도하는 초과학적인 비법이자 인과가 선명한 고차원의 철학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생에 반드시 생사문제을 해결하려는 굳은 의지와 이대로는 억울해서 못살겠다는 분심이 들끓어야만 비로소 정도문(正道門)에 들어선 것입니다.
경계는 전생 업장을 한 꺼풀 벗는 과정이며 그런 만큼 지혜가 밝아집니다. 그로부터 살며 마주치는 순간순간이 모두 잔재가 없는 생생한 경계이기에 보고 듣고 맛본 업(業)이 그를 어쩌지 못하는 것이 해탈세계이고 영원한 자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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