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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배와 방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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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생하면
정말 복 받나요?”
'보리심-자비행이
최고의 복상'
<법보신문 컬럼/2004-06-16/759호>
Q :
불자들에게 있어서 절은 큰
의미를 지니는 듯합니다. 적게는 3배부터 많게는
3000배, 10000배까지, 저 또한 무릎이 아파
걷지 못할 정도로 절을 해 보았습니다. 요즘은
정치인들까지 삼보일배를 하던데 절은 왜 하는
것이며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해야 하는지요.
A : 옥그릇도 비워야 쓸모가 있듯이
규칙적인 108배는 잡념을 이기고 하심과 겸손을
실천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정성을 기울여
절을 하게 되면 때에 따라 온몸으로 무아를
체험할 수 있으며, 진 참회는 물론 헬스효과까지
있어 절하기는 간단하면서도 아주 괜찮은 수행법입니다.
3000배 이야기는 산중에 누구를 만나 어쩌겠다는
치기를 없애기 위한 방편이었지 무턱대고 절
많이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근자 절하기가
하나의 문화로 정착하는 것은 일반대중의 정신건강
측면에서 아주 바람직한 모습입니다.
선거철에 정치인들이 거리에서
절하는 것은 숭고한 불교정신을 모방한 것으로서
절하는 의미를 격하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선거에 임박하여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뜻으로 울며 겨자 먹기로 절하기보다 평소
불교진리에 귀의하여 마음을 다스렸다면 보다
좋은 정치를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시류에
영합하려는 간사한 정치인들도 그렇지만 사회적인
이슈가 있을 때 마다 종교인들까지 거리로
몰려나와 절하는 모습은 별로더군요. 108배
등 절하기가 숭배나 구원의 몸짓으로 비추어지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Q :
흔히 절에서는
삼사순례라고 하여 세 곳의 절을 돌면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면 복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도 관광버스를 타고 하루 세 곳의 절을 다니며
절도 하고 공양도 올렸습니다. 게다가 잡은
거북이나 물고기, 새 등을 사서 강이나 산에
놓아 살려주는 방생은 커다란 자비행이라 말합니다.
정말 이러한 행위들을 하면 선업을 쌓아 복을
받을 수 있는지요.
A : 사찰은 복을 구하는 데가
아니라 부처되는 공부를 하는 전당입니다.
업장소멸하고 복 짓기 위하여 삼사순례 한다고
몰려다니는 행위는 불법을 호도한 부끄러운
폐단입니다. 삼사순례자들이 서로 먼저 절하겠다고
허겁지겁하는 모습들은 이런 관행을 만든 교활한
절집 인간들과 피장파장이더군요. 절과 부처는
복을 지어주는 대상이 아닙니다. 보리심과
자비행이 더할 나위없는 복상입니다.
그리고 불교의 방생은 집착에
사로잡힌 어리석음에서 놓여나는 것을 일컫습니다.
식용으로 잡아들인 물고기나 날짐승을 풀어주면서
복을 기원하는 방생법회는 전도몽상이며 죄업을
일삼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오늘날 지각없는
불자들의 어류방생으로 말미암아 자연생태계가
교란되어 그 폐해가 대단히 심각하다고 합니다.
그보다도 더욱 안타까운 노릇은 방생한다고
물고기를 차에 싣고 다니면서 초죽음 시키는
것은 생명체에게 임의로 고통을 안겨주는 짓이며,
복을 비는 염불시간에 배를 허옇게 뒤집는
물고기는 그 사람들에게 저주를 퍼부을 겁니다.
더구나 민물 거북이를 바다에 풀어주고 복을
비는 불자들이 지천인 마당에 항하사 같이
많은 불보살이라도 가피력을 내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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