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는 할 수 없는 것- 9

“卍行이 수행에 도움이 되나요?”

'만행은 틀 벗어난 능동적 수행'

 

<법보신문 컬럼/2004-06-02/758호>

 

Q :『경덕 전등록』에 “작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요. 금년 가난이 비로소 가난일세. 작년 가난은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 가난은 송곳마저 없다네.”라는 글이 있는데 송곳을 꽂는 일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A : 육식(六識)으로 닿는 것은 부처도 상(相)입니다. 송곳 꽂을 여백과 송곳마저 없다는 푸념보다 차라리 ‘지난밤 꿈속에 산적이 나타나 내 마음속 재산을 몽땅 빼앗겨 지금은 빈털터리가 되었다’라고 한다면 조금은 되었다 할 것입니다.

 

이것과 저것, 더하고 빼는 것은 오도송이 아니라 영악한 중생의 셈법입니다. 없다는 상은 치유되기 어려운 고질병이며 한번 빤짝하였다고 단박에 중생습기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심안(心眼)이 열려도 혜(慧)가 분명해질 때 까지는 장애가 첩첩입니다. 몇 생일수도 있으며, 보리심과 대자대비의 인고만큼이 지혜의 밑천입니다. 전도된 지견이 한 단계 밝아지는 경계 즉, 몸과 마음의 맛을 굳이 송하려면 사리에 맞고 솔직담백해야 합니다. 훗날 눈 밝은 자에게 들켜 두 번 죽지 않으려면 미사여구로 꾸민 오도송은 절대금물입니다.

 

속진에 빠진 무명업식이 한 꺼풀만 벗겨져도 천하를 다 얻은 듯 합니다. 그때는 날짐승과 무정물에게도 이치를 설하며, 주체 못할 법열에 취하지만 그것은 완성이 아닙니다. 환희심은 객관적인 판단력과 예리한 분석력을 갖춘 평상심이 아니기에 곧 시들해 집니다. 연이어 타는 갈애와 은산철벽에 갇힌 듯한 시련이 엄습할 때는 생사문제는 고사하고 한번의 들숨과 날숨 간격이 천리만리와 같이 멀고 힘겹습니다. 초조의 6년 설산고행이 어디 그냥 이겠습니까. 객진번뇌를 녹여내는 절절한 체험이 없는 도(道)는 어릿광대이며, 감상적인 오도송은 철부지들의 재롱입니다. ‘도는 할∼수 없는 것’ 지옥과 극락세계를 뒹굴며 푹 익어야만 해오(解悟) 즉, 통(通)해 집니다.

 

Q : 시중에 벽안의 수행자가 쓴 만행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습니다. 흔히 만행이라고 하면 출가승들만의 전유물로 인식되는 것이 일반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만행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이며, 수행을 지어가는 데 있어 어떠한 도움을 주는 것입니까?

 

A : 겨울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것은 그 무엇보다 따뜻한 봄날입니다. 선가의 만행은 누구의 전유물이거나 주유천하가 아니라 문사수(聞思修)의 집약이며, 틀에서 벗어나 광야에서 봄을 맞이하려는 능동적인 수행입니다. 원만 구족한 지혜를 구하는데 있어 대자연만큼 허물과 과오가 없는 스승은 없습니다. 불법이 그렇듯 가없는 자연은 중생의 삼독심을 녹이는 용광로이며, 순수하고 장엄한 기상을 갖추는 원소입니다.

 

값진 황금은 광석을 제련하여 뽑아낸 것이듯 부처공부 또한 세속잡사로부터 초연할 때 비로소 존재의 본질을 꿰뚫는 힘과 효력이 드러납니다. 그것은 무욕이라는 텅 빈 충만이며, 무너지지 않는 마음그릇을 조성하는 것이기에 정도수행은 유·무위법계를 만행하며 거듭 담금질을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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