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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中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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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
전념하려면 꼭 출가해야 하나요?”
가족
잘 보살피는 것도 참된 수행
<법보신문 컬럼/2004-05-12/755호>
Q :
정신세계에 관심이
많아 경전을 읽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설픈
광기, 어설픈 탐구심, 어설픈 불심으로 계속
헤매고 있습니다.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는
즐길 것 다 즐기고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그분처럼 즐길
것 다 즐기면서 수행을 지어 가는 것이 바른
것인지? 아니면 출가하여 꾹 참으면서 수행에만
몰두하는 것이 바른 것인지? 올바른 수행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A : 즐기고 싶거나 꾹 참을 것이
있으면 오백생을 닦아도 헛방입니다. 마음밖에
뜻을 둔 성불은 없습니다. 마음이 평정된 사람은
담배 술 도박 등 잡기에 의지하여 달리 즐거움을
찾을 필요를 못 느낍니다. 찰나를 저버린 깨우침은
불조이전에도 없었습니다. 현실과 괴리된 부처공부는
그 이름에 상관없이 득실거리는 번뇌 망상과
수미산 보다 더 높은 아상만 쌓게 됩니다.
그리하여 깨달았다면 틀림없이 무기(無記)에
빠졌거나 환(幻)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올바른
심신수행은 우리보다 먼저 해탈열반에 들었던
석가세존의 삶과 인생에서 바른 길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고행이거나 단절이 아니라
보편적인 삶으로 회귀한 후의 일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처럼 간단한 도리를 깨치는데 굳이 특별한
모습이나 방법이 필요할까요?
우주 천지만물이 모두 마음
안이므로 달리 분별하여 나눌 것이 없다는
이치를 일러주는 것이 불교의 근본이며, 깨우침의
첫 관문입니다. 깨닫는데 출, 재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출가는 궁여지책이며, 진정
고상한 삶은 부모봉양 잘하고 식솔을 위하여
불철주야 애쓰면서도 이웃과 나라 인류를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참된 보살이고
바라밀행이며, 세간을 벗어나지 않고 출세의
법을 지닌 부처님의 적손들입니다.
Q :
회사원입니다.
경전이나 조사어록을 보면 중심(中心)을 잡아야
한다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급변하는 시대를
살면서 스스로 중심을 잡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닌데, 그 중심이 무엇이고 그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합니까?
A : 중심은 불법(佛法)의 핵이고,
무심이며, 부처님 마음입니다. 중심은 달리
있는 것이 아니라 성주괴공하고 생주이멸 하는
우주만물의 법칙과 티끌만큼도 어긋남이 없는
마음자세를 말합니다. 제법(諸法)에는 틀리거나
중심 잡히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죽음도 옳습니다. 그러나 탐, 진, 치심에 가로막힌
중생의 눈에는 이처럼 명약관화한 이치가 들어오지
않을 뿐입니다. 어긋난 지난 삶의 업보 때문에
그렇습니다.
불교 8만4천 교법이 직관하는
도리 즉, 중심 잡는 법을 일러주고 있지만
말과 상에 속고 잿밥에 눈이 멀어 그야말로
우이독경이며 닦을수록 더 어두운데 무슨 지혜로
중심을 잡습니까. 경전을 학문 탐구하듯이
보면 중심은커녕 경이 오히려 우환덩어리입니다.
그리고 목탁반주로 빌어 구하여 얻을 중심
즉, 성불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중심을 잡으려면
먼저 사람다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중심의
기준을 일깨워 줄 무심인연이 닿습니다. 인간답지
못하면 새벽이슬아래서 백년을 염불해도 분별상이
떨어지지 않아 중심 근처에도 닿지 못합니다.
그저 그런 짓을 잘하는 사람으로 남을 뿐입니다.
중심은 중도(中道), 정도(正道)로서 반드시
인간다운 예(禮)의 바탕 위에서만 세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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