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창

 

141. 법보신문(2009년 12월 7일) 보도  

 

[나의 발심수행] 참선수행 황인섭 씨 <하>

 

『수행과 일상 하나 된 삶 위해 정진』
 

어떤 사람의 말도, 어떤 책도 한 순간의 감동으로 끝이 날 뿐이었다. 모든 것이 허무하고 덧없었으며, 헛된 것처럼 느껴져 내 마음 하나 둘 곳이 아무데도 없었다. 그저 한 마리 들짐승처럼 살다가 가는 것이 서러웠지만 이것 또한 별수 없는 운명이라고 받아들였다.

 

어느 땐 그냥 더 아파하지 않고 일찍 생을 마감하는 것이 오히려 최선일 것이란 생각까지 하였다. 모든 삶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아직 어려 그마저도 어찌하지 못하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그런 중에 우곡선원에 인연이 닿았고 제대로 된 부처님 법을 알게 되었다.

 

‘아프지 않고 사랑할 수 있을까?’ 잠꼬대 같은 이 간절한 부르짖음에 인연이 닿았다. 어릴 적부터 유별난 우정을 쌓아온 친구가 부처님 법이 살아있는 우곡선원으로 인도해주어 지금 이 순간 아프지 않고 사랑하는 삶을 터득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불교는 기복이 아닙니다. 신은 몸 없는 중생일 뿐이며 그 신에게 빌고 구하고 매달리는 종교는 진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영혼의 아편에 불과합니다.” 우곡 선사님의 말씀에 절절히 공감하면서 수행을 그치는 것은 숨쉬기를 멈추는 것과 같다 여기는데도 아직은 어린 수행자라 여물지 못하여 게으르고 그르치기 십상이다. 찬송가 소리, 부족함을 채워달라고 비는 기도소리, 신을 부르는 소리 등등 예전엔 나의 주변에 가득한 이 소리들이 거슬려 마음에 날카로운 날을 세우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저 소리로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더욱 정진해 조금 더 진전되면 시비분별하지 않으며 측은지심으로 바라보는 부처님의 마음이 될 수 있을까?

 

겹겹이 쌓인 구름이 걷히자 한라산 가득히 파란 하늘과 햇살이 쏟아진다. 그 하늘이 지금 내 마음 속에 있다. 자연이 위대한 스승이라는 스승님의 말씀, 꼭 그 말씀이 아니어도 이렇게 절기마다 만행을 따라 나서다보니 자연과 함께 자연 속에서 일부가 되는 법을 스스럼없이 터득하게 된듯하다. 때문에 만행 수행이 너무나 고귀하고 고맙게 느껴진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매일하는 108배와 틈나는 대로 나를 비우려는 노력, 정신이 흐트러지고 산만할 땐 자연스럽게 날숨 한 번 쉬고 집중하는 삼지법 그리고 일상으로 깃드는 수행 등 정진의 시간은 하루 종일 계속된다. 세상은 좋은 소식은 별로 없고 우울한 일들은 반복되는 것 같다.

 

특히 최근에는 신종플루다 변종바이러스다 하여 학교가 휴교를 하고, 아이들에게 예방백신을 맞힌다고 야단이다. 제정신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참으로 힘든 세상이다. 부처님의 가피력이 아니면 이 험난한 세상을 어찌 헤쳐 나갈까.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사람들도 공덕은 고사하고 타고난 자기 복을 헛되게 까먹게 되는데 우리 같은 범부들이야 부처님 법을 만나지 못하면 그저 빌고 구하고 매달리며 고달픈 현실에 꿈꾸듯 흘러갈 뿐, 생각해보면 끔찍한 일이다.

 

삶에 지쳐 바짝 오그라든 낙엽들이 길거리를 비질하는데 행인의 발걸음은 무정하다. 삼삼오오 무리지어 지나가는 사람들 뒤로 짙은 그늘 드리우는 콘크리트 빌딩숲, 휙휙 부는 바람이 면도날같이 예리하다. 이럴 때 내면에 모닥불을 지펴 아무라도 다가오는 이들에게 불꽃씨앗을 나눠주리라. 온 세상이 따뜻해 질 때까지.

 

(향원·46)

1026호 [2009년 1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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