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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3~15일 제주도로 만행을 떠났다. 바람 쌩쌩 부는 제주 한라산에서 도반들과 만행 중에 곰곰이 생각해 봤다. ‘팔자를 바꾸는 건 대복을 타고나야 한다는데, 과연 내게 그러한 대복이 있을까?’, ‘내게 광대하고 웅장한 한라산 대자연의 기상을 담을 그릇이 있기나 한 걸까?’ 이런저런 의구심이 궂은 날씨처럼 마음을 붙잡고 잠시도 놓아주질 않았다.
빠르게 휘감아 나타났다 사라지는 안개구름. 그 빽빽함에 제주도 윗세오름으로 오르는 어리목의 절경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뻥 뚫린 하늘이 나타났고, 그 두툼한 먹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과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장관이 펼쳐지자 모두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나 역시 감탄하였고, 순간 몹시도 부끄러워졌다. 저렇게 명명백백히 존재하는데 단지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의심으로 마음이 어지러웠던 것이다. 그렇다. 그릇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준비된 그릇인 것이며 복 중의 대복인 것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 부처님 감사합니다. 이제 이 깨달음 가지고 일상에서 수행과 함께하는 행복한 삶을 지어가겠습니다. 이 만행을 이끄시고 지혜와 경책의 말씀으로 지도하여 주신 우곡 선사님께도 감사의 마음으로 삼배를 올린다.
나의 일상이 부처님 법을 수지하고 수행으로 이어지게 되기까지 정신적 방황은 길고도 험난했다. 어릴 적엔 가톨릭에서 영세를 받고 신부가 될 것이라는 나름의 목표와 같은 것이 있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어느새 나의 종교는 개신교로 바뀌어 있었다. 가족들 모두 개신교인인 까닭에 혼자 가톨릭을 고집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정신적 방황을 시작하게 된 것은.
신을 믿는다는 것과 진리라는 것이 결코 같지 않음을 알게 되면서 무엇이 진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체념 상태로 종교인의 생활을 계속해 오던 중 갑작스레 아버님이 돌아가셨고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뒤로는 종교인의 생활마저 접었다. 이로 인한 교회와 가족들의 성화는 대단하였다.
종교 생활을 접은 것은 일종의 종교에 대한 실망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소위 진보적 종교라는 점에 관심이 많아 모임에도 나가보고 매스컴을 타는 유명한 인사들과 만나도 보았지만 내가 느끼고 있던 실망감을 걷어주기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면 불교는 과연 어떤 종교일까 하는 호기심에 다가가 보기도 했으나 나에겐 너무나 어렵고 골치 아픈 말들로만 비춰질 뿐이었다. 왠지 꿈속에서나 볼 듯한 아름다운 세상을 추구하고 솜사탕 같은 언어들을 쏟아내는 기존의 종교들 역시 내 눈에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下편에서 계속>
(향원·46)
1025호
[2009년 12월 01일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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