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부산광역시 교육청에서 지정한 특수분야 연수기관으로
기본과정, 심화과정 두 개의 연수과정을 열어
각각 공·사립 유,초,중,고 교원 및 교육전문직을
대상으로 '특수분야(심성개발) 교원 직무 연수'를
시행하고 있는 사단법인 우곡선원(牛谷禪院)을
찾았다.
부산의 해운대 앞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오션타워 19층에 소재한 (사)우곡선원은
"피안의 세계로 초대"라는 주제아래
참선(명상)수련으로써 맑고 고요한 근본마음을
확립하여 교원들의 지식과 경험을 빛나게 만들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이곳은 불교적 내용을
포함하면서도 종교적 교의를 강요하지 않아야
하는 교원 연수 프로그램의 특성상 명상, 호흡,
선기공 등의 실습과 함께 명상이나 선기공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학문적 토대를 제시하는
강의로 프로그램이 구성되어 있다. 하산(下山)스님은
선원 전통 식사법으로 소욕지족의 삶을 체득시키고
선기공, 명상수련, 정중동(靜中動)의 생활화에
대한 강의와 때로는 동백섬 산책으로 바다와
동백섬 그리고 자신을 생각해 보는 시간도
갖게 했다. 심화과정의 프로그램에는 발우공양은
물론이고 삶과 죽음, 우주는 하나의 시스템,
명상호흡을 통하여 마음의 안정과 고요에 이르는
방법, 집중과 고요, 지식과 관념의 실체, 세계관,
존재의 실상에 대한 실습과 강의 등으로 더욱
알차게 마련된다. 3일 닦은 마음 천년의
보배라는 말처럼 3일간의 연수를 통하여 일체의
고정관념을 텅 비워낸 자리에 아이들을 환하게
비출 맑은 거울 하나씩을 마음에 간직하며
심화과정을 더욱 기대하게 된다고들 한다.
땅을 기는 칡넝쿨도 곧은 소나무와
함께 하면 하늘로 치켜 오르고 흰 모래도 검은
진흙에 섞여 들면 쉬 검어지듯 깨달음은 참
인연이 빚어 냅니다.
심성을 재개발하여 꿈을 이루게
하고 시대를 선도할 지혜를 갖추는 요람을
설립하여 참 인연을 맺게 해 주는 우곡(牛谷)
선원장의 법문을 들어 보았다. 묻고 답하고
수행통로가 평이하고 열린 공간이 가능한 격의가
없는 만남의 광장 진지한 야단법석(惹端法席-불가용어)을
통해서 배우자고 했다. 피안의 삶, 즉,
깨달음은 이것과 저것을 잘 가려 선택하는
변별력이 아니다. 시운이 맞지 않으면
지혜 세계가 이루어 질 수 없다. 모든
수행은 분별에 물들지 않는 지혜를 갖추기
위함이다. 빛은 어둠을 밝히는 원천이다.
모든 생명은 빛 에너지로부터 태동되었고 가동되어
진다. 깨달음의 극치인 무심 지혜는 최상의
기량과 상태로 원시적 순수를 회복한 인간의
이성을 말한다. 자성(自性)은 원래 청정하고
태양의 빛처럼 밝지만 생사고락에 휩쓸린 업으로
말미암아 무명에 가려진 것이 중생이다. 무명의
업은 반드시 인고를 요구하며 인연 공덕으로
흑백이 분명한 무심씨앗을 받아 예와 덕으로
삶의 경험 철학을 쌓을 때 비로소 유여열반에
들 수 있는 것이 해탈 세계의 철칙이다.
나는 아무 말 한 적이 없다고 한 석가모니불처럼
아무에게도 기억이 안되어 지기를 바란다며
할 수 없이 산다. 숨을 잘 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법이며, 금생에 필요한 그릇 단 한
개면 족할 터, 만남과 염원이 어우러져 좋은
사회가 이루어 질 것이라며, 우곡선원은 부처
만드는 공장이고 부처는 참 사람, 즉 선지식인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참사람 양성을 위한 종합
선(禪)센터를 건립, 우리 인간의 숙명인 노(老),
병(病), 사(死)를 여여히 수렴하는 선진 모델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는 우곡 선원장은 <놓고
비우고 버리기> <행동하는 참선>
禪詩集 <길을 걷노라니> <그대나그네>
등의 저서를 통한 참 禪 지도도 하고 있다.
다양한
계층 위한 참선 교육 경험과 체계적 이론
(사)우곡선원은 외국인과 외국 유학생들에게
참선교육과 선 문화를 체험시키는 선구자 역할도
하는 한편, 사이버 우곡선원(http://www.zenkorea.org
/ E-mail: pusanwk@wookok.org)은 다양한 계층을
위한 참선 교육 경험과 체계적인 이론으로
선의 중심에 있다. 하루 2,000명 이상 클릭하는
사이버 공간으로 불교계에서 가장 앞선 대한민국
최고의 법당을 가진 셈이라 자부하는 모습에서
우곡선원의 무한한 도약을 느낄 수 있다. 지면관계로
우곡 심성개발 교육원의 상세한 교육내용과
(사)우곡선원 선원장의 고명한 법문을 다 싣지
못하는 아쉬운 마음으로 글을 맺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