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창

 

9.조선일보 (2001년 4월 30일)보도

"벽안 참선 " [사설칼럼 이규태 코너]

독일 철학자에 헤리겔이라는 석학이 있다. 궁도를 통해 선의 경지를 터득해보라는 권유를 받고 활을 배우기 시작했다. 사범은 사를 버리고 쏘라고 누누이 말했다. 매사를 합리적으로 생각해온 이 서양사람은 「내가 쏘지 않고 누구더러 쏘라는 겁니까」 하고 물었으나 대답이 없었다. 귀찮게 물어대니 「내가 없으면 그것이 쏜다」 했다. 그것이 뭣이냐고 묻자 꾸준히 공을 쌓아나가면 그것이 터득된다고만 할 뿐이었다.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어느 날 사범이 헤리겔에게 큰절을 하며 「방금 그것이 쏜 것을 보았습니다. 당신 아닌 그것에게 절을 한 것입니다」 하는 것이었다. 헤리겔 박사는 그것을 체험하긴 했지만 그때도 지금도 그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고 써 남겼다.

서양사람은 활을 쏠 때 먼저 눈을 과녁에 맞추는 외관을 하고, 동양사람은 활을 쏠 때 먼저 눈을 마음에 맞추는 내관을 한다. 내관에서 나(사)가 없어졌을 때 무심지경에 이르고 그 육체의 징발에서 나타나는 것이 「그것」이다. 초나라의 명궁 백혼무인은 백길 벼랑에서 튀어나온 바위 가장자리에 발바닥의 3분의 1만을 딛고서 강궁의 시위를 당겨 활을 쏘았다. 이처럼 그것은 육체의 징발상태다.

「무문관」에서 향엄 스님은 말했다. 나무에 올라가 높은 가지를 잡지도 않고 발로 딛지도 않은 채 그저 입으로 가지 한 줄기 물고 늘어져 있는데 그 아래 지나가던 사람이 「선이란 어떠한 것이오」 하고 진지하게 물었을 때 어떻게 하느냐는 선문이 있다. 대답 않으려니 도에 어긋나고 대답하려니 높은 곳에서의 추락이 불가피하다. 정신과 육체의 양날 틈에서 고통을 겪노라면 육체가 징발하는 것을 느끼게 되며 그것이 선체험이다.

괴산 우곡선원 다보수련원 등지에서 선의 경지를 체험하려는 외국인 학생들의 참선 붐이 일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국 선사에 미국 명문대 출신의 미국인 주지스님이 탄생하기도 하고. 달에 착륙했던 우주비행사에게 가장 강렬했던 인상을 물었을 때 신이 보다 가까이 있다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과학이 첨단화할수록 이처럼 신에게 가까워지듯이 합리주의도 첨예화할수록 선과 가까워짐을 이 벽안 참선의 폭주가 말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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