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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공양과 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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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컬럼/2005-04-10>
Q :
살생을 금하는 불교에서 자신의 몸을 불태우는 야만적인 소신공양이라는 말이 왜 있는 것입니까. 부처님은 소신공양을 좋아하고 극락을 가기 위해서는 소신공양을 해야 하는지요. 불교관련 방송을 보다 보면 손가락 몇 개 태워 없앤 것을 자랑하듯 흔들며 설법하는 승려들이 보이던데 신체를 스스로 훼손하는 사람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까. 자해공갈단 마냥 자신의 신체 일부를 절단하고 불태우는 행위가 도를 이루는 지름길처럼 추앙받는 것이 의아스럽습니다. 이렇게 도를 성취할 수 있다면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면 곧바로 깨닫지 않겠습니까?
A :
불교는 죽음을 미화하고 사후 영생을 위하여 현실을 부정하는 어리석은 내세종교가 아닙니다. 이생에 생사경계를 뛰어넘은 해탈지혜로 유여열반에 이르지 못하였다면 사후에도 극락세상은 없습니다. 금생에 업장소멸을 못한 업보중생의 내생은 마지막 날숨호흡이 끝나는 순간부터 그 누구도 소용 닿지 않는 경악스런 지옥고만 있을 뿐입니다. 불교는 맹목적인 신앙이 아닌 영원한 삶을 위하여 반야지혜를 체득하는 철학적이고 초과학적인 요소가 가미된 합리적인 종교입니다. 내 경험에 의하면 탐욕과 집착으로 생사경계를 여의지 못한 중생의 죽음은 형언할 길 없는 극한의 공포와 맞닥뜨립니다. 육도중생은 살아서는 오욕칠정에 휘둘리고, 죽으면 지옥고통에 자지러지는 업식(業識)을 몸을 불태우듯 불전에 회향해 버리면 생사일여(生死一如)의 영원한 삶으로 거듭난다는 뜻이 소신공양(燒身供養)입니다.
법화경의 소신공양은 육신에 깃든 속세욕망을 몽땅 부처님께 보시함으로써 무아(無我)를 실현할 수 있다는 비유입니다. 즉 생사윤회를 거듭하는 중생을 불태워 버리듯 함으로써 공적(空寂)에 이른다는 해탈법문을 유위법으로 해석하는 무지가 육신을 불태우는 행위로 곡해하는 것입니다. 불도에서 가장 큰 장애는 삭발무늬와 경전을 많이 알고 맹신하는 법마(法魔)도 구제불능이지만 환(幻)에 빠지는 것입니다. 삿됨이 고조되면 죽고 사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아 자신의 신체를 불태우는 행위를 마치 높은 경지로 여기는 세태가 말법시 이기도 합니다. 해탈세계는 즐겁고 기쁜 환희심도 슬프고 고통스런 비마(悲魔) 못지않은 변견입니다. 불교경전이 해탈진리를 가리키는 방편 교설임을 알지 못하고 신앙으로 굳어진 고질병은 화타도 처방전을 못 쓸 겁니다. 특히 경전에 등장하는 보살은 각자(覺者)의 제세구민을 의인화한 것인데도 실제 인물로 믿는 불자들이 지천입니다. 불상 좌우에 마치 예수의 열두 제자같이 불보살을 12명의 팔등신 여인상으로 빚어 세워놓은 서울 안ㅇ선원의 현란한 법당을 보고 졸도할 뻔하였습니다. 경전 속의 의인상이 실상으로 보이는 지경에 이르면 혹세무민이 주업인 사마외도 자손으로 굳어져 석가부처님이 손을 내밀어도 소용없습니다. 해탈성불을 방해하는 마왕은 십지보살과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눈 밝은 선지식이 없는 문중은 불도량이 아니라 허무한 형상과 거짓된 환상의 노예가 되는 마구니 소굴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돈오의 씨앗을 품고 있지만 마음 밖에서 구하기 때문에 불성이 발아하는 시절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도통을 핑계로 부모가 낳아 길러준 소중한 몸을 임의로 훼손한 불효자는 삼겁 이내로 해탈인연을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깨우침은 특별한 행위로서가 아니라 육경(六境)에 헛것이 맺히지 않는 밝은 의식이 되는 것이기에 반듯한 품성과 의리와 신의가 근본입니다. 몸을 임의로 불태워 사대가 훼손되었다는 것은 깨우침의 필수조건에서 배제되는 첫 번째 결격사유입니다. 깨달음은 말과 글이 아닌 천지만물 대 우주와 계합하는 시발점이기에 무엇보다 먼저 소우주인 신체가 온전해야 합니다. 궁극의 도는 대우주와 교류하는 운기조식이기에 신체적 결함이 있으면 원만구족은 불가합니다.
연지(燃指)는 자신의 손가락 마디를 불태워 회향함으로써 부처님과 같은 몸을 갖게 된다는 소신공양의 소극적인 표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연지의 참뜻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매달린 어리석음을 불태워 없애버림으로써 진리와 계합한다는 단순한 비유입니다. 부모가 낳아주고 길러준 육신을 임의로 훼손하는 행위는 성불은 고사하고 용서받지 못할 죄입니다. 참사람답지 않은 부처는 없습니다. 육신에 깃든 욕망을 제압하기 위하여 고행을 자처해도 자해하는 인간이 깨우쳤다는 기별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시절이 하수상하니 손가락 몇 마디 없는 것을 자랑삼아 흔들며 설법하는 모습은 법 없는 가문의 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불가는 예부터 신체장애자를 입문시키지 않는 불문율이 있습니다. 불도수행은 구불타령이 아닌 직접 몸으로 부닥쳐야 하는 험난한 과정이기에 신체결함은 결국 해탈을 부정하고 불연을 끊게 되는 우를 방지하고자 출가를 막는 것입니다. 불가에서 흔히 인용하는 소신공양과 연지는 중생의 사상(四相)을 불태워 없애버리듯 소멸시킴으로써 불(佛)세계에 이르게 된다는 비유이지만 차별 없는 해탈법문이 때론 흉기가 될 수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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