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 그리고 운명- 45

 


<주간컬럼/2005-03-20>

Q : 업(業)이 무엇입니까? 인간은 왜 업장을 갖게 되었으며 업이 운명을 결정짓는 원인은 무엇입니까. 특히 불교는 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업장소멸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과 천도재는 물론 미래 업을 소멸한다는 생전예수재 등, 불교는 업 문제 때문에 존재하는 종교가 아닌가 할 정도로 수행을 업장과 결부 짓기도 합니다. 숙업은 인간의 운명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어떻게 하면 업에서 자유스러울 수 있습니까?

A : 업(業)은 지난 삶의 발자취이며 떨칠 수 없는 그림자와 같은 것입니다. 선업(善業)은 해탈지혜의 밑거름이지만 악업(惡業)은 생각과 행동을 그르치고 반연을 양산하여 일상을 부자유스럽게 합니다. 이와 같이 인생의 고락(苦樂)을 가름하는 근본요인은 자신의 업력에서 비롯된 것이듯, 모든 인간은 전생업장을 원만히 해결하지 못한 과보로 생로병사를 겪어야하는 이 몸을 받게 된 것입니다. 불교수행은 괴로운 생사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법을 터득하는 공부이지만 깊이 헤아려보면 전생업장의 성질을 바꾸는 미묘한 노력과 다르지 않습니다. 업으로부터 자유로워진 해탈지혜로서만이 내적 평정과 운명의 개척,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억겁을 윤회하며 생사고해에서 헤어나지 못하였던 원인은 숙업이지만 우리는 다행히 불연(佛緣)을 만나 숙업을 정화하여 운명을 바꾸고 팔자를 고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석가부처님께서도 숙명론(宿命論)을 믿는 사람들을 외도라고 말씀하였듯이 인간의 운명은 딱히 결정지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창조하기 나름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삶의 질을 결정짓는 업장은 몸과 마음의 작용으로써 신(身), 구(口), 의(意)에서 비롯된 삼업(三業)으로 대별하고 있습니다. 몸으로 짓는 악업은 살생, 도둑질, 사음과 입으로 짓는 망어(妄語) 즉 거짓말, 이간질하는 양설(兩舌), 욕하는 악구(惡口), 아첨의 기어(綺語)가 있고, 뜻으로 짓는 악업에는 탐욕과 진애, 어리석음 즉, 탐(貪), 진(瞋), 치(痴)의 삼독이 있습니다. 이상의 3신업과 4구업의 3의업을 합친 10악(十惡)은 다음 생에까지 영향력을 끼친다고 합니다. 10선(十善)으로 10악(十惡)을 끊는 것만큼이 지혜의 힘으로써 천상과 인간계에 태어나고 그렇지 못할 경우 지옥이나 아귀, 축생의 몸을 받는 것을 업보(業報)라고 합니다. 업의 의미는 행위이지만 인과법칙과 결합해서 일종의 힘으로 작용하고, 고락(苦樂)의 과보를 초래하는 윤회전생의 씨종자가 되는 것입니다.

구사론(俱舍論)에서는 업을 어떤 행위를 완성하는 순간에 생겨나는 표업(表業)과 무표업(無表業)으로 분류하며, 업이 작용하는 장소와 업이 완성되기 위한 경과를 행위이전의 예비적 단계인 가행(加行), 행위를 완성하는 근본단계, 업이 완성된 후 그에 따라 일어나는 후기의 세 단계로 근본업도(根本業道)를 설명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처럼 업은 중생이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선악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전생의 소행으로 말미암아 현세에 받는 응보(應報)의 결과인 것입니다. 착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선업(善業)과 악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 선도 악도 아닌 무기에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記業)을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하며, 그 업과가 나타나는 시기에 따라서는 순현업(順現業)과 순생업(順生業), 순후업(順後業)의 3가지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중생이 업과(業果)를 받도록 인도하는 것을 업도(業道)라 하며 여기에는 십선업도(十善業道)와 십악업도(十惡業道)가 있다’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또한 화엄경 보살명난품(菩薩明難品)에 업(業)의 본성에 관하여 ‘몸을 이룬 4대(四大)는 실체가 없고, 모든 존재의 본성은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지만 과보를 받는 것은 업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업 또한 실체는 없다. 마치 거울에 비친 그림자가 여럿이듯이 업의 본성도 그와 같고, 종자와 밭이 서로 모르지만 싹이 트듯 업의 본성도 그와 같고, 산새가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내듯이 업의 본성도 그와 같으며, 지옥이 외부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듯 업의 본성도 그와 같다.’라고 하여 업은 실체가 없지만 행위를 통하여 선악(善惡)의 업인(業因)이 되고 그에 따른 업과(業果)를 받지만 무기(無記)는 과보를 이끄는 힘이 없어 수행력은 고사하고 인생살이 자체가 헛것임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선업선과(善業善果) 악업악과(惡業惡果)에 의한 인과응보(因果應報)는 굳이 불교사상이 아니더라도 불변의 인간사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생사고락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전생 숙업의 결과이지만 이생에 팔정도와 바라밀 실천으로 악업을 선업으로 바꾸어 스스로 운명을 재창조할 수 있는 시절인연을 만난 것은 분명 행운이고 축복입니다. 열반적정에 들어 윤회전생을 그치는 것도 업장소멸에서 비롯된다고 볼 때 해탈지혜를 갖추어야 하는 이유는 너무도 자명합니다. 그리고 천도의식 등은 조상님의 업장이 소멸되기를 바라는 효(孝)차원이며, 생전예수재는 태(胎),난(卵),습(濕),화(化) 사생(四生)까지 그 영향이 미치는 것은 물론 삼계고해를 벗어나기 위한 공덕의 씨앗을 뿌리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업장을 소멸시켜준다는 절집 장사메뉴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식상해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생 삶의 모습이 과거 업보에 의한 결과이듯이 업장소멸은 별스런 수단과 방법이 아니라 오직 자비헌신의 보살행만이 숙업을 개선하여 운명과 팔자를 고치는 비법임을 자각하였다면 우리 모두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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