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사별곡- 42

 


<주간컬럼/2005-01-30>

Q : 도를 통달하였다는 도사가 왜 부처님과 여러 신을 섬깁니까. 삼라만상의 이치를 터득한 사람이 신을 추앙한다는 것은 허구인 신의 종노릇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과 일맥상통할 것 같은데 도사는 원래 그런 건지요. 특히 우리나라는 종교가 다양하고 그에 따른 전문가들과 길흉화복을 점치는 도사 등이 수두룩한데 이런 사람들은 사회경제발전에 무익한 부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종교의 세력화는 필연적으로 영역다툼이 일어나고 나아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발전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종교지도자들이 균형을 잡고 다른 사람의 영혼을 올바르게 인도할 수 있는 힘이 있기는 합니까?

A : 導師란 삶의 바른길을 인도하는 존경스런 분을 지칭하며 석가부처님을 삼계대도사라고 말합니다. 부처는 神도 아니거니와 神을 섬기지도 않습니다. 신은 그 이름이 무엇이든 몸 없이 육도 윤회하는 불쌍한 중생입니다. 따라서 불교는 신이 되는 것도 신과 비슷한 경지에 이르려는 것도 아닌 三界를 뛰어넘는 해탈지혜를 강구하는 철학적 요소가 강한 종교로써 석가부처님의 가르침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제불을 신격화 하는 것은 불교교리를 잘못 알았기 때문이며 부처님을 받들고 섬기는 것은 삼계도사의 지혜와 덕성을 닮고자 하는 존경심의 발로이지 신을 섬기는 여타 종교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불교는 우주를 욕계, 색계, 무색계라는 세 종류의 세계로 나누어 봅니다. 인간의 사사로운 욕망을 벗어나지 못한 욕계와 욕망은 벗어났으나 형색은 벗어나지 못한 색계, 욕망과 형색은 벗어났으나 의식으로부터는 자유스럽지 못한 무색계를 三界라 하고 다시 25유라는 각각의 존재세계로 영역을 세분화합니다. 욕계는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이며 탐심이 번성하는 육치(六道)로써 육도의 본성과 같은 천상(六欲天)이 우리가 흔히 신이라 부르는 존재들이 사는 세계입니다. 색계는 18종류의 천상이 있고 무색계에는 4종류의 천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석가부처님은 이런 三界를 모두 초월하였기에 천상세계의 신들조차 부처님을 받들고 가르침을 배우는 것입니다.

인간의 미래를 예시하고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은 말 그대로 점쟁이지 삼계를 초월한 도사가 아닙니다. 진정한 도사는 인간의 명운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잘못인 숙업을 정화하고 뜻을 바르게 하여 원이 성취되도록 바른 길로 안내하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미신보다 더 엉터리인 죽었다가 부활하였다는 한 유태인을 신봉하는 서양귀신교 등이 지금의 첨단과학시대와 함께 한다는 것은 어둡고 허약한 인간의 속성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탐착의 집산물인 신과 종속관계를 맺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모순을 종교로 삼아 전파하는 행위는 삼겁을 지옥고에서 벗어나지 못할 업을 짓는 것입니다. 인간일 때 내면의 자유와 평정을 실현하여 운명을 재창조하지 못하면 허공과 물속을 헤집고 땅을 기는 미물과 오감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축생의 뱃속을 빌어 천생을 생사유전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존재이치를 터득한 사람 즉, 도사는 몸과 정신이 연기하는 우주자연과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땅과 하늘의 변화는 물론 인간 삶에 영향을 미치는 대사건들을 예지, 정화하고 불치병을 해결하는 등의 역량으로 사바세상에 이바지합니다. 이 세상에는 아는 자와 깨달은 자, 특출한 종교지도자가 수두룩하지만 이타의 삶인 바라밀행이 여법하지 않으면 알고 깨달았다는 것들이 九牛一毛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국을 종교백화점이라고 말하는 것은 온갖 종교가 묵시적 합의로 존립근거를 확립하는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신세계의 해방이 아닌 개개인의 영혼을 신탁관리하려는 이질적인 종교가 우리사회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현실에서 피로 점철된 지난 인류역사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핵과 냉전으로 아마겟돈을 맞이할 것이라는 공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세계는 민족과 종교 갈등으로 인한 인종청소적인 성격이 짙은 국소적 전쟁이 현재진행형인 것은 무엇보다 잔혹한 종교충돌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물의 영장이 하열한 신을 숭배하고 그 힘을 빌려 행복을 구하고 고뇌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욕구야 탓할 바는 아니지만 사실과 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대중적인 무지가 결국 감내하지 못할 사회적 병폐를 양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각설하고 종교는 인간의 고뇌와 두려움을 해방시키고 자유와 평등을 헌사 하는 사회봉사단체이어야 마땅합니다. 죽은 부처와 허구인 절대자를 팔아 일신의 영달을 꾀하는 영혼장사치들이 세상의 균형을 잡고 어두운 영혼을 바르게 인도하는 도사가 되려면 당나귀해가 도래해야만 可할 것입니다. 종교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라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형상없는 과제일 뿐입니다. 사랑은 연필로 쓰듯 배우고 익힌 바를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는 힘이 自我完成이며, 불교마저 초월한 진리에 의한 진리적인 삶을 구가하는 것이 導師의 진면목이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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