廻向功德- 39

 


<주간컬럼/2005-01-09>

Q : 화엄경에서 말하는 회향은 무조건적으로 남에게 베푸는 것을 말하는지요. 되돌려주는 것, 부처님에게 바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공부한 인과법이라는 논리로 보면 자신의 업은 자기가 지은 대로 받고 자기 책임 하에서 형성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화엄경에서는 ‘회향(廻向)은 남의 잘못한 대가를 내가 대신하여 받겠다는 것이며 내가 잘한 일은 남에게 되돌리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남의 업을 내가 지고 또 내 공덕을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는 행위는 인과법의 논리로부터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A : 불교의 廻向은 자기가 닦은 공덕을 남에게 돌리므로 궁극적으로는 범부중생이 佛果를 얻게 됨을 일컫지만 육경에 잔영이 남지 않는 행간이 회향의 진면목일 것입니다. 행주좌와 간에 무상인 것은 심신이 이미 법구로써 당처마다 중생을 이롭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를 이루는 절대요소인 지혜와 공덕은 우선순위를 논할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지만 그 밑바탕에는 회향공덕이 항상 꿈틀거린다는 사실입니다. 찰나 찰나마다 즉시즉시 되돌려 마음에 그 어떤 상도 지님이 없어야만 열반적정에 들고 영생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애써 닦아 얻은 기쁨과 결과를 상대방에게 무주상보시하는 회향이라는 용기와 결단이 견줄 데 없이 큰 공덕이 되어 위없는 해탈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회향을 이해함에 있어 자신이 지은 업과를 상대방에게 떠넘긴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선업이든 악업이든 업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몫이며 선근이 토대를 이룰 때 자리이타인 회향심이 발현하는 것입니다. 삼독에 찌든 중생의 사견이나 악습, 神들림을 타인에게 전이시키는 행위 등을 회향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진실의 눈을 갖지 못한 범부중생은 언어와 상에 속아 본의 아니게 삿된 에너지를 받아 지니는 적회향의 피해자가 양산되는 현실 또한 부인할 수 없습니다. 도와 법이라는 미명하에 터무니없는 가치관을 배우고 익혀 타인에게 전파, 주입하는 행위는 흑과 백을 직시하지 못하는 무지한 영혼들을 세세생생 윤회고통에 빠뜨린 가해자로 저승명부에 영원히 기록됩니다.

화엄경 十廻向品에 “보살이 보리심을 내어 모든 선근을 회향하는 것은 한 중생을 위해서도 아니고, 한 불국토를 정화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한 부처님을 믿기 위해서도 아니고, 한 부처님의 법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다. 보살은 오로지 중생을 구호하기 위해서 온갖 선근을 회향하는 것이다. 모든 불국토를 정화하고 모든 부처님을 믿고 받들어 공양하며, 모든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바른 법을 듣기 위해 온갖 선근을 최상의 깨달음에 회향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중생이 불법을 닦고 실천하여 선근을 쌓은 그 공덕으로 깨달음을 얻되 자기만의 이익이나 해탈을 위해서가 아니라 범부중생과 더불어 수행해야 하며, 아상을 앞세우거나 아만을 갖거나 분별심을 갖지 말고 대자대비로 불국정토 실현에 이바지하는 보살의 회향이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삼처회향(三處廻向)이라 하여 일체지심(一切智心)을 일으켜 닦은 일체선법을 보리에 회향하여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공덕의 종자를 심는 보리회향(菩提廻向)과 일체중생을 염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회향함으로써 더불어 성불하는 서원을 가지는 중생회향(衆生廻向), 선근으로 유위(有爲)를 멸하고, 근본이며 실제인 무위(無爲)를 증득하여 如如한 즐거움을 확립하는 실제회향(實際廻向)으로 회향의 도리를 구분하기도 하지만 십회향과 다르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회향은 사람다운 사람의 당연한 도리이고 무욕으로써 상구보리를 얻는 가르침이지만 의롭고 진실한 행이 없는 부처공부는 죽은 口佛임을 경계하는 것임을 놓쳐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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