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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전의 살묘(殺猫)와 덕산의 점심(點心)- 34
<주간컬럼/2004/2004-06-23/760호>
Q :
동서 양편 승당에서 고양이를 가지고 다투자 이를 본 남전스님이 고양이를 붙잡고 “말할 수 있다면 베지 않겠다.”라고 하였으나 아무도 대답을 못하자 고양이를 두 동강으로 베어버렸다고 합니다. 고양이를 베었다는 이 말은 화두로서 제방에 널리 알려져 있는데 남전스님이 고양이를 벤 것이 왜 화두며 해석이 구구각색이라 종지를 알 수 없습니다.
A : 천지사방이 은산철벽일 때 비로소 처처가 불(佛)임을 깨닫고 그로부터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의식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깨달음은 제형(諸形)이 허망한 것임을 알지 못하는 자아를 처절한 단절의 벽으로 몰아가 환골탈태시키는 불보살의 출격입니다. 전생에 쌓은 불사공덕에 불연이 닿는 시절인연으로 개오(開悟)의 일문이 열립니다. 화두를 잡거나 교상(敎像)에 의지하여 진아(眞我)를 찾겠다는 근기라면 삼생을 내리 닦아 공덕을 쌓아야 합니다. 삶의 마디마다 새록새록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이 개오이고 선정이기에 부처공부에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한 점 공덕도 없이 죽치고 앉아 문자화두를 염염하는 것은 약을 끊지 못하는 고질병 환자와 다름없습니다. 남전보원이 고양이를 두 동강으로 베어버린 일화가 절집의 고상한 화두라면 도살장의 도부는 날마다 소, 돼지를 때려잡아 두부 썰듯하니 그대로 출격대장부요 대자대비보살이라 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범부도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데 중들이 고양이를 붙잡고 서로 내 것이라고 다툴 정도면 시주 밥에 길들어진 삭발식충인데 그들에게 뭘 바란다는 말입니까. 근본이 어긋나면 삼생을 닦아도 일문도 열리지 않습니다. 남전의 살묘(殺猫)는 제풀에 죄 없는 고양이만 희생시킨 하지하책일 뿐입니다. 중이 절집에서 고양이를 살생한 사건이 화두가 되어 대대손손 망상분별을 떨 소재가 된 것은 썩은 새끼줄도 못 넘을 근기에게 출세를 기대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경책으로 보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부처를 앞세워 무위도식하는 가문에 법 없는 것이야 불문가지이지만 시주 밥만 축내는 삼천대중을 산문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는 옛 대종사의 출현이 메시아를 기다리는 유태인들보다 더 절실한 판국입니다. 살묘(殺猫)는 계율을 뛰어넘어 대자유인으로 나아가게 하는 궁여지책이었지만 대중가운데 아무도 상(相)을 넘는 자가 없었으니 남전보원은 된장국에 소금 값도 못하는 중이 되고만 격입니다. 고양이만 베고 말 것이 아니라 내쳐 끝장을 보지 않아 오늘날까지 제방에 망상거리를 제공한 남전보원의 허물로 말미암아 덕산선감의 몽둥이가 춤을 출듯합니다.
Q :
덕산스님이 금강경 소(疏)를 지어 짊어지고 길을 걷다가 떡집 노파에게 점심으로 떡을 주문하니 노파가 덕산에게 묻기를 "등에 멘 것이 무엇이요" “금강경 소초입니다” “그렇다면 스님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대답을 하면 떡을 거저 드리겠지만 만약 대답을 하지 못하면 다른 곳으로 가시오.”라고 하며 금강경에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이라고 하였는데 스님은 어디에 점(點)을 찍으려 하시오’라고 말하자 그만 말문이 막혀 버렸다고 합니다. 이럴 때 덕산스님은 어디에 점을 찍어야 합니까?
A : 과거 현재 미래 삼세가 끊어진바 없는데 무엇을 간택한단 말입니까? 과거 현재 미래를 분별하여 점을 찍으려는 생각을 놓아버리면 그대로 일없고 일없는 도인입니다. 덕산선감이 진즉 이 도리를 깨우쳤으면 금강경을 뒤적거리고 구차스런 논(論)과 소(疏)를 붙여 불도를 어지럽히다가 떡장수 노파에게 박살나지 않았을 겁니다. 덕산선감의 점심(點心)은 모든 경전의 존재이유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임을 일러주는 것입니다. 특히 불자들이 소중히 여기는 금강경에 걸려 달을 보지 못하는 고질병을 치유하는 약 처방전을 제대로 알아보는 자가 없어 화두로 존치되었을 것입니다. 문자에 가려진 해탈진리는 없듯 뜻을 통하면 경전은 그냥 놓게 됩니다. 현재는 촌음도 기다리지 않고 과거로 돌아가 버리니 현재란 실재하지 않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점찍을 당처가 없는 엄연한 사실에 비춘다면 점심(點心)은 나무를 헤아려 숲을 보려는 속물중생의 계산법에 지나지 않습니다.
불가에서 금과옥조로 삼는 금강경은 일체 형상은 영원하지 않고 허망하니 속지 말고 상(像)으로 보지 말라는 구구단보다 더 쉬운 경전일 뿐인데 무엇 때문에 논(論)과 소(疏)라는 군더더기를 붙인단 말입니까. 상(相)으로 보면 무진보배로 장엄한 불상(佛像)도 두고두고 화근이 됩니다. 남전이 절지키는 소임에만 충실하였으면 공덕이 될 것을 너무도 쉽고 간단한 금강경에 군더더기를 덧붙여 해탈세계를 어지럽혔으니 남전보원이 애꿎은 고양이만 도륙 낼 일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덕산선감이 떡장수 노파를 만났기에 그 정도였지 만약 힘꽤나 쓰는 떠꺼머리 나무꾼에게 금강경 소초를 주절거렸다면 귀싸대기에 불이 났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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