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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불은 대우주의 주인공- 33
<주간컬럼/2004-11-28>
Q :
21C의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불교경전에 있는 말들은 비현실적이고 논리의 비약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엄연히 내 것과 네 것으로 구분되어 있고 자신의 권익을 쟁취하기 위하여 필사적인 생존투쟁을 합니다. 더구나 지하자원과 종교문제로 남의 나라를 침범하여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오늘날의 국제질서입니다. 상대방을 누르고 이겨야만 내가 살아남는 비정한 지배논리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에서 불교의 무소유와 자비가르침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 같은데 어떻게 조화를 이룹니까?
A :
불교는 석가세존의 해탈정신과 인생철학을 집대성한 것으로 세파에 휘둘리는 업보중생에게 영원한 자유를 선사하는 지혜의 가르침입니다. 범부중생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윤회전생하며 보고 듣고 맛본 습기를 벗어나지 못한 업보로 분별탐착에서 놓여나지 못합니다. 서구의 앞선 지식인들이 참선에 관심을 갖는 것은 수용과 조화, 대자비행을 통한 평화로운 공존공생의 원리가 불교 가르침에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기 때문입니다. 속세를 뒤적거려 어렵사리 득한 재물과 권세가 무명업장을 양산하는 원인이 되지 않으려면 물질은 중생구제를 위한 인간불사 도구이었음을 깨우칠 때 비로소 출·세간을 섭렵한 대인의 반열에 듭니다. 자비헌신의 공덕으로 위없는 무심지혜를 갖추고 불국정토 구현을 위한 원이 내 삶 앞에 있으면 그 어떤 마장도 범접하지 못합니다. 이 목숨을 비롯하여 내 것이라고 할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사바세계입니다. ‘나’라고 여기는 이 몸뚱어리도 자연에서 빌려온 것이고 지금 가지고 누리는 모든 물질은 잠시 자연으로부터 관리신탁 받은 것뿐입니다. 내 소유일 것이라는 어리석은 착각이 탐욕에 찌든 업을 낳아 저승 명부전에서 회자정리 당할 때 혹독한 지옥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제행이 무상함을 깨쳐 알아야만 헛된 욕망과 부질없는 정리에서 놓여나 반야지혜가 깃들고 자유로운 영혼, 즉 무아실현이 가능합니다.
지금을 첨단 과학시대라고 말합니다. 문명을 창조하여 인류에게 편리한 삶을 누리게 하는 선구자 대부분은 언행이 순수하고 단순한 수도자의 품성인 것은 그의 전생공덕이 이생에 빛을 발하는 현장입니다. 일생동안 천복을 잘 유지하는 사람은 사심이 적고 타고난 소양으로 자기분야에서 무명세상을 밝히는 등불역할에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호수가 맑고 고요하면 달그림자가 선명하듯 행·불행은 물론 극락과 지옥도 스스로 만드는 창조세계입니다. 심성이 혼탁하고 사심에 찌든 아수라로 살 것인지 아니면 이 풍진세상을 희롱하는 대 자유인의 삶을 살 것인지는 순전히 자기 자신의 몫입니다.
세상을 몽땅 다 가졌어도 마음에 아무것도 지닌바 없는 무소유심이 해탈의 삶입니다. 무욕의 빈바가지 하나로 목마르면 물 떠먹고 배고프면 밥 담아 먹으면서 시대적 소임에 매진하는 삶이 최고 경지의 선정삼매이고 상대법에 얽매임이 없는 무아(無我)입니다. 헛된 욕망과 부질없는 정리에 매달려 인생을 탕진하는 어리석음에서 놓여나 대우주를 마음에 가득 담은 무소유의 삶이 최상의 복락이라 할 것입니다. 내 안에 내 것을 두고 갈등과 투쟁을 벌이는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부처는 땡전 한 푼 투자하지 않고 대우주를 몽땅 자기 재산으로 등기해 놓아 더 무엇을 탐할 대상이 소멸된 사람입니다. 모든 인류가 한날한시 한마음으로 대우주를 자기 것으로 등기하면 그날로 갈등과 투쟁 시비가 사라진 영원한 극락세상 유토피아가 펼쳐질 것입니다.
우주생명체가 존재하는 한 인과연기 법칙을 피할 수 없듯 선인선과 악인악과에 의한 과보는 개인과 국가를 가리지 않습니다. 근세 물질문명을 선도하였던 서구의 도그마로 한 나라의 정체성과 생존권을 파괴하고 역사와 문화를 재단하는 행위는 인류사회의 비극임과 동시에 가해자의 명운을 재촉하는 악행입니다. 특히 저 유대민족은 아우슈비츠에서의 업보청산이 아직 부족한 듯 근자 이웃을 짓밟고 세상을 독점하려는 작태는 도를 넘었습니다. 화무십일홍이요 권불십년이듯 인류사에 천년제국도 없었고 세상을 호령하는 강대국도 허공에 선긋기 놀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우주가 몽땅 석가부처님 자산이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숱한 배신자와 외도 사마무리, 사악한 제바달다와 시대를 공유하였습니다. 쌀에 미 골라내듯 인두겁 쓴 금수를 재단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사이듯 대자대비실천과 무소유심 또한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정과 지혜의 힘을 기르는 정법수행이 동업중생을 위한 자비행이고 영원한 주인공으로 대우주를 조화롭게 관리하는 무소유실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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