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과 출가- 30

 


<주간컬럼/2004-11-07>

Q : 분별상이 없는 사람은 이 풍진세상을 어떻게 바라봅니까. 참선수행에 분별하지 마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분별이야 말로 수행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말하는데 佛性이 있고 없고를 따지는 거나 빅뱅 등 우주를 설명하는 것도 분별에서 나온 것 아닙니까? 분별하지 않고 이 세상을 어떻게 살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A : 분별상이 떨어진 사람은 소가 닭 쳐다보듯이 세상을 대합니다. 소는 여물통을 넘보는 닭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인식하되 이해타산의 대상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무덤덤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법으로 존재하는 사물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겉모습을 사유 추론하고 굳이 有無大小로 나누는 것이 무명 중생입니다. 성품을 보면 번민과 고통이 사라진다는 불교 가르침은 분별하여 탐하고 집착하는 小我를 죽이고 대우주와 하나였던 自性 즉, 眞我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우주의 관점에서 삼라만상은 더하고 나눌 수 없는 가없는 자연의 인연화합물이고 고유한 빛입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헛됨을 탐닉하는 속된 중생의 훈습이 근본인 자성을 뒤덮어 생성소멸하는 일체만유를 나누고 덧붙이느라 중심을 못 잡고 팔풍에 휘둘리는 것입니다.

인간이 時 · 空間을 토막 내어 소유할 수 없듯이 부증불감(不增不減)인 우주의 섭리를 편의적으로 분별하기 때문에 속박을 당하고 나[我]라는 소욕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능가경에서 모든 대상은 분별심에서 나온 것으로서 불상이나 법 · 비법도 분별에 지나지 않으며, 분별을 버리지 못하고 허망한 것에 끌리면 열반을 얻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분별을 버리려면 집착하는 소견을 내지 않는 것이 근본이며, 분별로는 진여를 깨달을 수 없고, 분별을 끊고 인식의 주체와 대립을 초월할 때 무분별의 지혜인 평등성지와 보살의 원만각지를 얻는 것입니다. 분별이 끊어진 無我는 곧 眞我이며 그는 야망의 시대를 등지지 않습니다.

Q : 자성은 출가를 해야만 볼 수 있습니까? 승려가 되는 방법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출가를 하면 지금처럼 불교를 소극적인 관찰로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접할 수 있을 것 같아 출가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습니다. 한국에는 많은 종단이 있는데 어떤 종단이 출가에 유익한지 고견을 구합니다.

A : 自性은 절집의 무진보배가 아닙니다. 깨닫는데 출가든 재가든 겉모습과 머리카락 길이와는 아무상관 없습니다. 가출수행의 근본은 자성을 회복하는 최후의 보루가 아니라 잠시 속세의 반연으로부터 놓여나 마음의 힘을 기르려는 고육책입니다. 천륜과 인륜을 저버린 가출을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출가로 위장하는 것도 죄업이려니와 아무 공덕 없이 깨달음을 구하는 것은 언감생심입니다. 만일 출가를 현실도피수단으로 삼거나 그 몰골로 세속을 탐하면 중노릇이 무간지옥으로 떨어지는 직통코스입니다. 처처가 道이고 佛인줄 자각하지 못하는 하열한 주제를 삭발염의로 포장한다고 속세로부터 초월되는 것은 아닙니다. 희비애락과 이해득실이 난무하는 저자거리에 살면서도 때 묻지 않는 순수와 정의, 그리고 자비희사의 실천이 진정한 출가이며 바로 出出世입니다.

초조인 석가부처님은 무슨 종단 출신이거나 삭발염의한 승려가 아닙니다. 6년 가출고행은 실패였으며 일상으로 복귀하여 성도한 후 진리를 실사구시한 보편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더구나 말법시 삭발비구와는 아무상관 없는 관계라고 선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佛法의 기원은 보편타당한 모습이듯 종단은 깨우침의 요람이 아니라 佛道의 방향을 묻고 심신수행을 하려는 애달픈 학인들의 임의단체입니다. 부산사람은 서울이 북쪽이라고 할 것이며 인천사람들은 서울이 동쪽이라고 말하지만 이미 서울에 도달한 사람은 서울 방향 같은 것은 관심 밖입니다. 출가가 어떤 환상이나 또 다른 기회실현을 위한 현실도피가 아닌지 정직하게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불법의 대의를 위한 출가라면 큰 오산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수지증득하여 재보시 회향할 수 있는 도량은 절집만이 아니라 지천으로 널려 있는 이 사바세상입니다. 개인의 욕망과 명리로부터 초연하고, 죽음보다 더 두려운 고독을 극기하지 못한다면 부처지혜는 망상이고 불도를 빙자한 家出이 욕된 삶의 표본이 될 것입니다. 가출로 뜻을 이루겠다는 각오가 섯다면 인연 닿는 사찰에 가출의사를 밝히면 뜻하는 길이 모색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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