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사후세계- 22

 


<주간컬럼/2004-09-05>

Q : 누구나 죽는 죽음이 두려운 것은 왜 입니까. 어떻게 하면 죽음을 무섭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고 죽음 이후는 어떤 형벌과 즐거움이 있으며 저승은 어떤 그림입니까. 죽은 후 빛을 따라 어디를 가게 되고 이와 유사한 경험으로 한 소식을 한 것처럼 말하는 경우가 흔한데 왜 그런지 궁금합니다.

A : 죽음은 회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입니다. 성현과 왕후장상도 죽음만은 어쩌지 못하였습니다. 인간사에서 필연적인 죽음이 무섭고 두려운 것은 육신에 길들어진 의식의 잔재인 습기 때문입니다. 무한우주시간에 백년도 지니지 못하고 무너질 육신에 의지하여 허망한 속세를 탐하느라 너무도 당연한 생사이치를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에 늙음과 병고 죽음이 무섭고 저승이 두렵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죽음과 저승은 미지의 세계가 아니라 인간은 누구나 전생에 죽음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사바세상이 덧없음을 깨쳐 알지 못한 속물중생의 죽음은 더없이 두렵고 고통스럽습니다. 영원할 것 같은 속세상의 욕망을 좇다가 어느 날 느닷없이 죽음에 이르면 단절과 배신감 속절없는 두려움이 육신을 압박하여 찢어지는 공포를 자아냅니다. 탐욕중생은 천명이 다하는 지점에 이르면 원망과 분노에 휩싸여 이성마저 상실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일찍이 중생놀음을 그치고 생사 없는 도리를 증득하였다면 자연의 한토막인 죽음의 공포에서 놓여날 것입니다.

뜬구름 같은 부귀영화를 좇다 서산그림자처럼 홀연히 다가오는 죽음은 일생동안 주인노릇하며 기고만장하던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과의 이별이지만 업보는 혹독합니다. 마지막 한 번의 날숨으로 이생과 결별하는 찰나에 과거 현재 미래가 한꺼번에 드러나는 업경대로 말미암아 자지러지는 두려움은 의식이 인지하는 감정적인 고통과는 비교 불가입니다. 체온이 식어가는 것에 비례하여 자율기능이 상실되는 영혼의 절규가 유, 무위법계를 진동하지만 아무도 듣는 이가 없습니다. 속물중생일 때는 도무지 알지 못하였던 자신의 주인공인 영혼이 겪어야 할 저승길은 생사경계인 찰나에서부터 사지가 찢기고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고통이며 생명에너지가 소진되는 시간까지의 경악스런 공포는 억겁세월입니다.

탐욕과 집착 어리석음으로 인한 업장은 한 덩어리가 아니라 몸을 형성하는 수십억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진 흔적이고 저승형벌은 단 한 개 세포도 놓치는 법이 없습니다. 전생업장을 걸머진 영혼이 건너는 사후세상 역시 8만4천의 지옥경계를 넘으며 차츰 업장이 가벼워지는 것에 비례하여 고통의 강도는 더욱 선명해집니다. 죗값을 치룬 만큼 죄상이 가벼워지는 이승과는 반대로 업장이 가벼워질수록 고통은 더 선명하면서 한생의 마디를 짓고 좀더 높은 근기의 몸을 받습니다. 중생업장과 얽힌 영혼이 생사윤회가 끝나는 등각지에 들기 전의 경계는 고요와 희망, 한없이 아름답고 편안한 마치 천국같은 세계가 띄엄띄엄 나타납니다. 수없이 그림이 바뀌는 저승의 한 장면은 이승의 한 평생으로서 생사를 반복하며 업장을 녹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화산이 폭발하듯 단생에 업장을 소멸시키는 대근기도 있습니다. 사후세계를 건너는 마지막 즈음에서 드러나는 극락세계에 이끌리면 사바세상을 지배하는 제석천왕의 근기에 해당하는 중생으로 다시 몸을 받습니다. 사바중생이 갈망하는 천국도 두 단계입니다. 업장이 소멸되어지는 극한의 고통에서 훌쩍 벗어난 경계에서 마주친 아름답고 편안한 천국은 첫번째로서 이 천국은 기나긴 업장소멸의 고통에서 벗어난 상대적인 천국입니다. 중생일 때 오매불망 원하던 천국마저 거부한 결과는 틈새 없이 천지사방이 공포뿐인 염라대왕세상을 만납니다. 그다음 마주치는 두번째 천국은 몰록 누가 가져다 바치듯 형언할 수 없는 기기묘묘함과 안락함의 세계이지만 이것도 사바세상을 다녀왔던 영혼이 치러야할 끝이 아닙니다. 생사 없는 해탈열반세계의 입문절차는 가없는 천국마저 단호히 거부한 당돌함과 무념무상마저 용납하지 않는 사천왕 관문을 통과한 후 나타나는 내면의 찬란한 광명속에서 비로소 자성(自性)인 소울음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이 할 일을 모두마친 자유로운 영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생의 몸을 바꾸지 않은 선명한 인식으로 8시간동안 무수한 저승관문을 통과한 희유한 내 경험에 비추어 사후세계를 피력하지만 이 세상 언어로는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업보중생의 영혼, 즉 영가는 생체에너지가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에 사후세계는 자율적인 행로가 불가능합니다. 이생에 지은 업장의 처소가 사후세계이고 내생에 축생의 몸을 받으면 온 몸을 던진 보시로 다시 공덕을 쌓아 근기를 높여야만 합니다. 인간몸 받은 이생에 신, 구, 의 삼업을 잘 다스리면 생사윤회가 없는 해탈열반의 무량대복이 주어지는 것은 오로지 불보살의 원력뿐입니다. 원래없는 선, 악의 분별감옥에 빠진 서양의 구원종교는 미신이자 환상으로 덧칠된 소설일 뿐인데 거기서 무슨 힘을 얻어 저 무섭고 힘든 사후세계를 다 건널 수 있단 말입니까? 또, 세간의 사후세계이야기는 영혼이 어둠을 통과할 때 빛이 나타난다거나 누가 인도한다는 것이 정설처럼 회자되지만 사바중생의 저승길은 부처 보살은 물론 하늘의 그 누구도 소용 닿지 않는 괴괴하고 막막한 절대공포의 무위세상뿐입니다. 업보중생의 저승길은 철저한 단절과 적막함, 가없는 고통과 공포로 업장을 재단하는 명부전뿐이기에 업보중생의 내생을 결정하는 명왕의 역사는 나도 알지 못합니다. 일체중생은 누구나 득할 수 있는 깨우침과 해탈열반은 원래 나의 고향이었던 지수화풍으로의 회귀이기에 저승길도 사후세계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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