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이란?- 21

 


<주간컬럼/2004-08-29>

Q : 불교에서는 사람에게 法이 있다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누구로부터 법을 받는다는 등, 법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법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A : 천지만물이 法의 체성이지만 불교의 법은 無心입니다. 무심은 사바중생이 개오하여 생사 없는 이치를 터득한 정신력을 말하며, 이는 마왕도 어쩌지 못하는 힘입니다. 법력은 누구로부터가 아니라 영겁 이전인 존재의 근본 이치를 깨달아 증득한 순수에너지입니다. 모든 불교수행은 근본 에너지인 무심법을 터득하는 방편으로서 이러한 법에는 높고 낮음도 출, 재가도 따로 없습니다. 노란부처를 앞세워 앉아 얻어먹는 거지 떼에게는 온당한 佛法이 깃들 수 없습니다. 功德은 논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日不作 -日不食'을 실천한 백장선사만큼은 되어야 합니다.

불교 가르침인 법을 실사구시하는 관세음보살 등이 모두 재가자의 모습인 것은 법력이 특정한 모습이나 종교관행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치우침이 없는 보편적인 일상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경전을 익혀 먹물 내뱉는 것을 법으로 여기거나, 기도나 환상을 좇는 공부는 오백생을 닦아도 법력을 갖춘 보살이 될 수 없습니다. 법성은 천지에 가득하지만 중생은 원래부터 무아(無我)인 것을 아(我)로 고집하고, 부정(不淨)을 정(淨)으로, 무상(無常)을 상(常)으로 여기기 때문에 진실한 법의 성품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법력이라는 무심은 나와 너로서가 아니라 우주가 벌어지기 이전의 에너지원이기 때문에 이해와 구원으로는 체득할 수 없습니다. 태초는 부처 중생도 없지만 유· 무 고저장단, 선악 등의 분별로 인한 상대세계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一氣일 때와 같은 역량이 바로 불교의 법력입니다. 불교는 근본에 입각한 삶의 경험을 집대성한 고등종교로서 누구나 무심인연만 닿으면 생사번뇌를 초월하고 세상을 구원하는 법력을 체득할 수 있습니다. 반하여 절대자나 유일신 등을 신봉하는 종속된 종교논리로는 생사윤회를 뛰어넘는 법력 근처에도 닿지 못합니다.

Q : 불교는 수행 그자체가 아니라 법과 같은 사람이 되어져야 한다는 말씀이며, 석가모니부처님을 법왕이라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법은 어디서 누구로부터 얻을 수 있으며 나누어 가질 수도 있습니까?

A : 법은 누구로부터가 아니라 시절인연을 통하여 불과를 갖게 됩니다. 구하여 얻은 법이라면 그저 구하여 얻은 법일 뿐입니다. 법연은 영원의 불씨로서 부지불식간이지만 점수를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지극한 수행은 무심인연이 닿기 위한 간절한 노력과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마음이 열려있습니다. 욕망과 집착, 환상이 열린 마음의 종심(從心)을 차지하도록 수수방관한 결과로 아직도 중생인 것입니다. 중생은 깎아 세운 부처와 안타까운 무늬는 믿어도 無心이 진실한 불상임을 알지 못합니다. 무심인연은 원하고 구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지극할 때 바람처럼 닿습니다. 학식이나 권세, 작위나 상에 의지해서는 진실한 法의 性品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자리이타의 보살행만이 법기를 조성할 수 있기에 正法을 담으려면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지극하고 또 지극하여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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