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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와 人間佛事- 15
<주간컬럼/2004-07-18>
Q :
화두를 들어야 깨치는 것처럼
말하는데 화두를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가 수행하던 그 당시도
간화선이 있었습니까?
A :
진실과 선행, 지혜가 부처입니다.
오늘날 선가에서 만병통치약이나 되는 것쯤으로
여기는 화두 그 자체가 고질병인데 왜 화두를
참선과 연관시킵니까. 참 禪은 一如도 변견입니다.
화두라는 타파할 대상을 일삼아 마음속에 껴안고는
결코 불지에 들 수 없습니다.
죽은 화두문자에 얽매인 부처는
없습니다. 과거 미래는 물론 현재심마저도
불가득이어야만 묘(妙)가 생겨납니다. 서기
1200년대 대혜 종고선사가 1700공안을 유포한
것은 불교가 시대에 잠식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궁여지책일 겁니다. 어지러운 강아지에게 뼈다귀
하나를 물려놓으면 그저 그만인 것처럼,, 화두를
제대로 잡아 아직 상기가 안 되었다면 더 비천한
근기입니다. 뼈다귀를 물지 않은 강아지라야
집지키는 소임을 다할 수 있습니다. 무념무상은
결코 공짜가 아닙니다.
불도는 폐일언하고 석가부처님의
삶과 인생철학에 나를 비추어 무명을 덜어
냄으로서 해탈지혜가 생겨나는 법을 믿어 의심치
않는데 있습니다. 이타의 삶을 살겠다는 야무진
각오와 실천행이 왕도입니다. 무위도식하며
원래 없는 망상분별 없앤다고 죽은 언어와
계율에 얽혀 황금보다 더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인간이 어떻게 깨닫습니까. 시간낭비가 가장
큰 죄업입니다. 대자유인은 무늬가 아니라
정화되고 집중화된 심신에너지를 중단 없이
배양하고 나누는 능력자이며, 그는 조사의
공안은커녕 부처도 알지 못합니다.
Q :
어떤 사람을 도인이라고
합니까. 출가 경륜이 오래고 설법과 염불 잘하고,
절을 많이 짓고 추종자가 많으면 도인입니까.
천도제 등 복을 기원하는 일을 불교수행으로
삼는 삭발도인들이 부지기수인데 왜 법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A : 길흉화복을 점치고 복비는
불교는 석가부처님 가르침과는 무관하며, 정도수행이
곧 무너지지 않을 복밭을 일구는 大事입니다.
그리고 이타행을 하는 보살이 바로 도인입니다.
안목이 밝고 자비로운 사람을 굳이 도인이라고
한다면 마땅히 참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빈 절 키우는 불사는 자원
낭비이고 자연훼손이며, 폭포 같은 설법도
무상도리가 아니면 마구니 소리입니다. 옷이야
더우면 벗고 추우면 껴입는 물건일 뿐 도통하는데
겉모습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삭발염의는
단 3분이면 되지만 하이칼라는 많은 정성을
쏟아야 합니다.
불교는 어리석음도 죄업으로
여깁니다. 사부대중이 넘쳐나 할 수 없을 때
절 지붕 늘리는 佛事를 하는 것입니다. 가출자들의
사사로운 영업장이며 아방궁 꾸미는 것을 불사로
여기는 것은 무지와 맹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佛祖 이전부터 절 없어 부처 못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人間佛事가 진정한 불사며 고불고조의
뜻입니다. 하열한 근기를 끌어 모아 절 키우고
머리 숫자 늘리는 것을 법력으로 여기는 시대가
말법시대며 바로 지금입니다. 佛法은 백수의
왕이 되는 이치이거늘 존상에 연연하는 나약한
무리에게 眞法은 해당사항이 아니며, 평상심이
道이듯 참 도인은 별스런 모습과 언사를 오히려
부끄럽게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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