業으로부터 자유- 1

 

“악업 때문에 가난한 건가요?”

진정한 깨달음은 물질 소유와 무관
 

<법보신문 컬럼/2004-03-31/749호>

Q : 많은 사람들이 업(業)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살아가는 현재 모습이 업의 결과라면 물질적으로 넉넉한 서구인들은 선업(善業)으로 충만하고, 가난한 제3 세계는 악업(惡業)이 가득하다는 말인지요. 전생과 현생의 업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면 어떻게 하면 행복한 인생이 될 수 있습니까?

A : 부자나라는 분명 그럴만한 복력의 토대가 있어 일마다 좋은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며, 그것은 선업의 한 단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가난한 나라는 선업의 동기부여가 부족한 결과로서 공동의 업장이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업장은 전생이력으로서 현생의 질을 결정하는 원력이며, 깨달음은 물질의 유·무소유와는 무관합니다.

"오늘 내가 빈천하거든 베풀지 않았음을 알며, 자식이 나를 돌보지 않거든 내 부모를 내가 편히 모시지 않았음을 알라. 남의 고통 외면하고 악착스레 재물을 모아 자식에게 물려주려거든 그 재물이 일시에 재가 되어 허망할 때 있을 것임을 각오하라.

상대는 내 거울이니 그를 통해 자기 자신을 보아라. 빈천자 보이거든 나 또한 그와 같이 될 것을 알고 보시하며, 부자를 만났거든 베풀어야 그와 같이 될 것임을 알라. 가진 자 보고 질투하지 마라 부자는 베풀어서 그렇고, 없는 자 보고 비웃지 마라 베풀지 않으면 너 또한 그렇게 되리라. 현세의 고통을 내가 지어 내가 받는 것 뿌리지 않고 어찌 거두랴."라는 선가의 어록처럼 현재는 지난 삶의 거울입니다. 참선공부는 좋은 국토, 좋은 부모, 좋은 스승 인연 만나 선업을 쌓은 공덕으로 해탈지혜를 얻고 스스로 행복한 운명을 창조하는 법도를 익히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Q : 명예와 돈을 떠난 인간의 삶은 상상하기조차 어렵습니다. 부처는 현실 밖에 있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부끄럽지 않은 삶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경제가 어수선합니다. 그러므로 개개인의 가슴마다에는 절망이 가득합니다. 이럴 때 부처는 무엇을 먹고 사나요?

A : 부처는 치우침이 없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여러 난관들은 정도에서 벗어난 다수가 빚어낸 산물입니다. 탐심. 진심. 치심을 버린 대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사회가 된다면 삶의 질은 급격히 좋아질 것입니다. 애써 닦아 이룬 평정심은 자신의 행복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호혜를 베푸는 최선의 에너지입니다.

낙(樂)은 고(苦)를 머금은 인생의 꽃입니다. 고통도 상대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지금 당장은 힘들고 어렵더라도 탓을 버릴 때 희망과 낙이 다가올 것입니다. 부처의 식단은 뼈저린 성찰과 진 참회뿐입니다.

Q : 저는 그 동안 단전호흡 등을 위주로 하여 나름대로 수행을 해 왔으나 큰 진전을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단전호흡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 무심법(無心法)을 모르는 단전호흡은 술(術)이기 때문에 반짝하다가 곧 죽을 맛이 됩니다. 숨을 들어 마시고 얼마를 내쉬는 등의 기법을 익혀 심신이 좋아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참 도인은 들숨 날숨에 대한 인식조차도 없습니다. 숨을 들여 마신다는 것은 바로 탐이고, 취하는 것이며, 고인 것은 반드시 썩습니다. 신생아는 날숨으로부터 자체생명력을 가동시키며 무명 중생은 들숨 한숨으로 이생을 마감합니다.

단전호흡은 흡기이전 상태로의 회귀이며, 호흡에 대한 인식을 버리기 위한 것이 진정한 단전호흡입니다. 알고 보면 이 몸, 이 우주 전체가 바로 단전입니다. 단전을 달리 떼어서 보는 것은 일시적 방편이지 신체의 특정부위에 단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음이며 근기가 낮기 때문입니다. 우주 삼라만상과 통해지려면 먼저 집착의 수레인 들숨은 버려야 합니다. 정도(正道)는 놓고 비우고 버리는데 있습니다.
 


의견보기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