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대념처경(大念處經)

 

V. 법의 관찰[法隨觀]

V-1. 다섯 가지 장애[五蓋]

“대중들이여, 어떻게 대중이 法에서 法을 관찰[法隨觀]하는가?"

"대중들이여, 여기 대중은 다섯 가지 장애[五蓋]의 법에서 법을 관찰한다. 대중들이여, 어떻게 대중이 다섯 가지 장애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가? 대중들이여, 여기 대중은 자기에게 감각 욕망이 있을 때 ‘내게 감각 욕망이 있다’고 꿰뚫어 알고, 감각 욕망이 없을 때 ‘내게 감각 욕망이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감각 욕망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감각 욕망을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감각 욕망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자기에게 악의가 있을 때 ‘내게 악의가 있다’고 꿰뚫어 알고, 악의가 없을 때 ‘내게 악의가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악의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악의를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 한 악의가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자기에게 해태[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힘]와 혼침이 있을 때 ‘내게 해태와 혼침이 있다’고 꿰뚫어 알고, 해태와 혼침이 없을 때 ‘내게 해태와 혼침이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해태와 혼침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해태와 혼침을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해태와 혼침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자기에게 들뜸과 후회가 있을 때 ‘내게 들뜸과 후회가 있다’고 꿰뚫어 알고, 들뜸과 후회가 없을 때 ‘내게 들뜸 과 후회가 없다’고 꿰뚫어 안다. 대중은 전에 없던 들뜸과 후회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들뜸과 후회를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들뜸과 후회가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자기에게 회의적 의심이 있을 때 ‘내게 의심이 있다’고 꿰뚫어 알고, 의심이 없을 때 ‘내게 의심이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의심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의심을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의심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이와 같이 안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法隨觀]한다. 혹은 밖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한다. 혹은 안팎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한다. 혹은 법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한다. 혹은 법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한다. 혹은 법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한다. 혹은 그는 ‘법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사견에 의지하지 않는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대중들이여, 이와 같이 대중은 다섯 가지 장애의 법에서 법을 관찰한다."

V-2.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

"다시 대중들이여, 여기 대중은 다섯 가지 취착하는 무더기[五取蘊]들의 법에서 법을 관찰[法隨觀]한다. 대중들이여, 어떻게 대중이 다섯 가지 취착하는 무더기들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가? 대중들이여, 여기 대중은 ‘이것이 물질이다.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느낌이다. 이것이 느낌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느낌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인식이다. 이것이 인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인식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상카라[行]들이다. 이것이 상카라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상카라들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알음알이다. 이것이 알음알이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알음알이의 사라짐이다’라고 관찰한다."

"이와 같이 안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法隨觀]한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대중들이여, 이와 같이 대중은 다섯 가지 취착하는 무더기들의 법에서 법을 관찰한다."

V-3. 여섯 가지 감각장소[六處]

"다시 대중들이여, 여기 대중은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六內外處]의 법에서 법을 관찰[法隨觀]한다. 대중들이여, 어떻게 대중이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무는가? 대중들이여, 여기 대중은 눈을 꿰뚫어 안다. 형상을 꿰뚫어 안다. 이 둘을 조건으로[緣] 일어난 족쇄도 꿰뚫어 안다. 전에 없던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족쇄를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족쇄가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귀를 꿰뚫어 안다. 소리를 꿰뚫어 안다. 코를 꿰뚫어 안다. 냄새를 꿰뚫어 안다. 혀를 꿰뚫어 안다. 맛을 꿰뚫어 안다. 몸을 꿰뚫어 안다. 감촉을 꿰뚫어 안다. 마노를 꿰뚫어 안다. 이 둘을 조건으로 일어난 족쇄도 꿰뚫어 안다. 법을 꿰뚫어 안다. 전에 없던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족쇄를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족쇄가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이와 같이 안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法隨觀]한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대중들이여, 이와 같이 대중은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의 법에서 법을 관찰한다."

V-4.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

“다시 대중들이여, 대중은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들의 법에서 법을 관찰한다. 대중들이여, 어떻게 대중이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들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가? 대중들이여, 여기 대중은 자기에게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念覺支]가 있을 때 ‘내게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있다’고 꿰뚫어 알고,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없을 때 ‘내게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어떻게 닦아서 성취하는지 꿰뚫어 안다."

"자기에게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擇法覺支]가 있을 때,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精進覺支]가 있을 때, 희열의 깨달음의 구성요소[喜覺支]가 있을 때, 편안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輕安覺支]가 있을 때, 삼매의 깨달음의 구성요소[定覺支]가 있을 때,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捨覺支]가 있을 때 ‘내게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있다’고 꿰뚫어 알고,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없을 때 ‘내게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없다’고 꿰뚫어 안다. 대중은 전에 없던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어떻게 닦아서 성취하는지 꿰뚫어 안다."

"이와 같이 안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대중들이여, 이와 같이 대중은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들의 법에서 법을 관찰한다."

V-5.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

“다시 대중들이여, 여기 대중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의 법에서 법을 관찰[法隨觀]한다. 대중들이여, 어떻게 대중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가? 여기 대중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지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지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V-5-1.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苦聖諦]

“대중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인가? 태어남도 괴로움이다. 늙음도 괴로움이다. 병고도 괴로움이다. 죽음도 괴로움이다.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도 괴로움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요컨대 다섯 가지 취착하는 무더기[五取蘊]들 자체가 괴로움이다.”

“대중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태어남인가? 이런 저런 중생들의 무리로부터 이런 저런 중생들의 태어남, 출생, 도래함, 생김, 탄생, 오온(五蘊)의 나타남, 감각장소[處]를 획득함을 일컬어 태어남이라 한다.”

“대중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늙음인가? 이런 저런 중생들의 무리 가운데서 이런 저런 중생들의 늙음, 노쇠함, 부서진 [이빨], 희어진 [머리털], 주름진 피부, 수명의 감소, 감각기능[根]의 허약함을 일컬어 늙음이라 한다.”

“대중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죽음인가? 이런 저런 중생들의 무리로부터 이런 저런 중생들의 종말, 제거됨, 부서짐, 사라짐, 사망, 죽음, 서거, 오온의 부서짐, 시체를 안치함, 생명기능[命根]의 끊어짐을 일컬어 죽음이라 한다.”

“대중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근심인가? 대중들이여, 이런 저런 불행을 만나고 이런 저런 괴로운 현상에 맞닿은 사람의 근심, 근심함, 근심스러움, 내면의 근심, 내면의 슬픔을 일컬어 근심이라 한다.”

“대중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탄식인가? 대중들이여, 이런 저런 불행을 만나고 이런 저런 괴로운 법에 맞닿은 사람의 한탄, 비탄, 한탄함, 비탄함, 한탄스러움, 비탄스러움을 일컬어 탄식이라 한다.”

“대중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육체적 고통인가? 대중들이여, 몸의 고통, 몸의 불편함, 몸에 맞닿아 생긴 고통스럽고 불편한 느낌을 일컬어 육체적 고통이라 한다.”

“대중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정신적 고통인가? 대중들이여, 정신적인 불편함, 마음에 맞닿아 생긴 고통스럽고 불편한 느낌을 일컬어 정신적 고통이라 한다.”

“대중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절망인가? 대중들이여, 이런 저런 불행을 만나고 이런 저런 괴로운 법에 맞닿은 사람의 실망, 절망, 실망함, 절망함을 일컬어 절망이라 한다.”

“대중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인가? 대중들이여, 태어나기 마련인 중생들에게 이런 바람이 일어난다. ‘오 참으로 우리에게 태어나는 법이 있지 않기를! 참으로 그 태어남이 우리에게 오지 않기를!’이라고. 그러나 이것은 원함으로서 얻어지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이것도 괴로움이다. 대중들이여, 늙기 마련인 중생들에게, 병들기 마련인 중생들에게, 죽기 마련인 중생들에게, 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을 하기 마련인 중생들에게 이런 바람이 일어난다. ‘오 참으로 우리에게 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하는 법이 있지 않기를! 참으로 그 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이 우리에게 오지 않기를!’이라고. 그러나 이것은 원함으로서 얻어지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이것도 역시 괴로움이다.”

“대중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요컨대 다섯 가지 취착하는 무더기[五取蘊]들 자체가 괴로움인가? 그것은 취착하는 물질의 무더기[色取蘊], 취착하는 느낌의 무더기[受取蘊], 취착하는 인식의 무더기[想取蘊], 취착하는 상카라[行]들의 무더기[行取蘊], 취착하는 알음알이의 무더기[識取蘊]이다. 비구들이여, 요컨대 취착하는 이 다섯 가지 무더기들 자체가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V-5-2.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集聖諦]

“대중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苦集聖諦]인가? 그것은 갈애이니,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환희와 탐욕이 함께 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이다. 즉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慾愛], 존재에 대한 갈애[有愛],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갈애[無有愛]가 그것이다.”

“다시 대중들이여, 이런 갈애는 어디서 일어나서 어디서 자리 잡는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 있으면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는다. 그러면 세상에서 어떤 것이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인가? 눈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는, 코는, 혀는, 몸은, 마노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고 여기서 자리 잡는다. 형상은, 소리는, 냄새는, 맛은, 감촉[마노의 대상인]의 법[法]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고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알음알이는, 귀의 알음알이는, 코의 알음알이는, 혀의 알음알이는, 몸의 알음알이는, 마노의 알음알이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고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감각접촉[觸]은, 귀의 감각접촉은, 코의 감각접촉은, 혀의 감각접촉은, 몸의 감각접촉은, 마노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고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코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마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고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인식은, 귀의 인식은, 코의 인식은, 혀의 인식은, 몸의 인식은, 마노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고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의도는, 귀의 의도는, 코의 의도는, 혀의 의도는, 몸의 의도는, 마노의 의도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고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갈애는, 귀의 갈애는, 코의 갈애는, 혀의 갈애는, 몸의 갈애는, 마노의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고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일으킨 생각[尋]은, 귀의 일으킨 생각은, 코의 일으킨 생각은, 혀의 일으킨 생각은, 몸의 일으킨 생각은,  마노의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고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지속적인 고찰[伺]은, 귀의 지속적인 고찰은, 코의 지속적인 고찰은, 혀의 지속적인 고찰은, 몸의 지속적인 고찰은, 마노의 지속적인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고 여기서 자리 잡는다. 대중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이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V-5-3. 괴로움의 지멸의 성스러운 진리[滅聖諦]

“대중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지멸의 성스러운 진리[苦滅聖諦]인가? 갈애가 남김없이 빛바래어 지멸함, 버림, 놓아버림, 벗어남, 집착 없음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지멸의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다시 대중들이여, 그런 이 갈애는 어디서 없어지고 어디서 지멸되는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 있으면 거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거기서 지멸된다. 그러면 세상에서 어떤 것이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인가? 눈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는 ,코는, 혀는, 몸은, 마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지멸된다. 형상은, 소리는, 냄새는, 맛은, 감촉[마노의 대상인]은, 법[法]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지멸된다. 눈의 알음알이는, 귀의 알음알이는, 코의 알음알이는, 혀의 알음알이는, 몸의 알음알이는, 마노의 알음알이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지멸된다.”

“눈의 감각접촉은, 귀의 감각접촉은, 코의 감각접촉은, 혀의 감각접촉은, 몸의 감각접촉은, 마노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지멸된다. 눈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코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마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지멸된다. 눈의 인식은, 귀의 인식은, 코의 인식은, 혀의 인식은, 몸의 인식은, 마노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지멸된다.”

“눈의 의도는, 귀의 의도는, 코의 의도는, 혀의 의도는, 몸의 의도는, 마노의 의도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지멸된다. 눈의 갈애는, 귀의 갈애는, 코의 갈애는, 혀의 갈애는, 몸의 갈애는, 마노의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지멸된다. 눈의 일으킨 생각은, 귀의 일으킨 생각은, 코의 일으킨 생각은, 혀의 일으킨 생각은, 몸의 일으킨 생각은, 마노의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지멸된다. 눈의 지속적인 고찰은, 귀의 지속적인 고찰은, 코의 지속적인 고찰은, 혀의 지속적인 고찰은, 몸의 지속적인 고찰은, 마노의 지속적인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지멸된다. 대중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지멸의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V-5-4.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道聖諦]

“대중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지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苦滅道聖諦]인가?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支聖道]이니, 즉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正命], 바른 정진[正精進], 바른 마음챙김[正念], 바른 삼매[正定]이다.”

“대중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견해[正見]인가? 대중들이여, 괴로움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지멸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지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에 대한 지혜를 일러 바른 견해라 한다.”

“대중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사유[正思惟]인가? 비구들이여, 출리에 대한 사유, 악의 없음에 대한 사유, 해코지 않음[不害]에 대한 사유를 일러 바른 사유라 한다.”

“대중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말[正語]인가? 대중들이여, 거짓말을 삼가하고 중상모략을 삼가하고 욕설을 삼가하고 잡담을 삼가는 것을 일러 바른 말이라 한다.”

“대중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행위[正業]인가? 대중들이여, 살생을 삼가하고 도둑질을 삼가하고 삿된 음행을 삼가 하는 것을 일러 바른 행위라 한다.”

“대중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생계[正命]인가?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삿된 생계를 제거하고 바른 생계로 생명을 영위한다. 이를 일러 바른 생계라 한다.”

“대중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정진[正精進]인가?  여기 대중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악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일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의욕을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이미 일어난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의욕을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유익한 법[善法]들을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의욕을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이미 일어난 유익한 법들을 지속시키고 사라지지 않게 하고 증장시키고 충만하게 하고 개발하기 위해서 의욕을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이를 일러 바른 정진이라 한다.”

“대중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마음챙김[正念]인가? 여기 대중은 몸에서 몸을 관찰[身隨觀]한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긴다. 느낌들에서, 마음에서, 법에서 법을 관찰[法隨觀]한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며 마음을 챙긴다. 대중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마음챙김이라 한다.”

“대중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삼매[正定]인가?

初禪: 여기 대중은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尋]과 그것의 지속적인 고찰[伺]로 떨쳐버렸음에 희열[喜]과 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에 든다.

二禪: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確信)이 있으며, 마음의 순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없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든다.

三禪: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온하고, 마음을 챙기고 알아차리며[正念正知],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이를 두고 성자들이 ‘평온하게 마음을 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묘사하는 제3선(三禪)에 든다.

四禪: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없앴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인해 마음 챙김이 청정한[捨念淸淨] 제4선(四禪)에 든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삼매(三昧)라 한다.”

“이와 같이 안으로는 법에서 법을 관찰[法隨觀]한다. 혹은 밖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한다. 혹은 안팎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한다. 혹은 법들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한다. 혹은 법들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한다. 혹은 법들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한다. 혹은 그는 ‘법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사견에 의지하지 않는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대중들이여, 이와 같이 대중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법을 관(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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