Ⅷ

입불이법문품(入不二法門品)

 
9. 입불이법문품(入不二法門品)

그때 유마거사는 수많은 보살들을 향하여 말하기를 "여러분, 보살은 어떻게 하여 상대(相對)의 차별을 초월한 절대 평등의 경지[不二法門]에 드는지 저마다 생각하는 대로 이야기해 주십시오." 그러자 대중 속에 법자재(法自在)라는 보살이 말하기를 "여러분, 생(生)하는 것과 멸(滅)하는 것은 서로 대립(對立)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존재하는 것[法]은 본래 생하는 것이 아니므로 여기에 멸하는 일도 없습니다. 이 진리를 깨달은 편안함[無生法忍]을 얻는 것이 곧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덕수(德守)보살이 말하였다.
"인간이라고 하는 개체(個體) 그 자체[我]와 그것에 소속하는 것[我所]은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인간이라고 하는 개체 그 자체가 있음으로 해서 그에 소속하는 것이 있으므로 만약 이 주체가 없으면, 그때 이에 소속하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체득하는 것이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불순(不순)보살이 말하였다.
"감수하는 것[受]과 감수하지 않는 것[不受]과는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만약 존재하는 것을 감수하지 않으면 그때는 사물을 감지(感知)할 수가 없으며, 감지할 수가 없으므로 사물을 취하는 일도 버리는 일도 없으며, 만드는 일도 제거하는 일도 없습니다. 이같이 체득하는 것이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덕정(德頂)보살이 말하였다.
"더러운 것[垢]과 맑은 것[淨]은 서로 대립해 있습니다. 그러나 더러운 것 자체의 본성[實性]을 보아도 거기에는 더러움의 모양은 없고, 맑은 것 그 자체의 본성을 보아도 거기에는 맑음의 모양[淨相]이 없습니다. 깨달음의 모양[滅相]은 이와 같습니다. 이같이 체득하는 것이 절대평등의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숙(善宿)보살이 말하였다.
"마음이 움직이는 것[動]과 대상을 찾아서 그 모양을 파악하는 것[念]과는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곧 모양을 안으로 파악하는 일도 없을 것이며, 안으로 모양을 파악하는 일이 없으면 곧 사량(思量)이 없는 것이므로 이에 잘 통달한 것이 절대평등의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안(善眼)보살이 말하였다.
"하나의 모양[一相]을 가진 것과 아무런 모양도 갖지 않는 것[無相]은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만약 모양이 있는 것[一相]을 없는 것[無相]이라고 알고, 또 모양이 없는 것[無相]에도 얽매이지 않고서 평등을 체득하는 것, 이것이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묘비(妙臂)보살이 말하였다.
"보살의 마음과 자기의 깨달음만을 생각하는 성자[聲聞]의 마음은 서로 대립하고 있지만, 마음의 모양[心相]은 공하고 꼭두각시와 같은 것이라고 분명하게 알 때, 보살의 마음도 없고 성자[聲聞]의 마음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불사(弗沙)보살은 말하였다.
"선(善)과 불선(不善)은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선도 불선도 일으키지 않고 평등하고 진실한 공의 도리[無相際]를 알아서 능히 이를 깨달았을 때 이것이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자(獅子)보살은 말하였다.
"죄악과 복덕(福德)은 서로 대립하고 있으나, 만약 죄악 그 자체의 본성이 복덕과 다름이 없음을 요달하고, 금강(金剛)과 같은 진실한 지혜에 의하여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 속박을 받지 않고 해방되는 일도 없으면, 이것이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자의(獅子意)보살은 말하였다.
"번뇌가 있는 것[有漏]과 없는 것[無漏]은 서로 대립하고 있으나, 만약 모든 것이 평등하다고 알면, 그때 번뇌라든가 번뇌가 없다고 하는 생각은 일지 않을 것이며, 그러한 생각에 집착하는 일도 없을 것이며, 생각이 없는 상태에도 머물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해(淨解)보살이 말하였다.
"인연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有爲]과 인연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은 것[無爲]은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체를 떠났을 때는 마음은 커다란 허공과 같이 맑은 지혜는 장애를 받지 않습니다. 이것이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연(那羅延)보살은 말하였다.
"세간(世間)과 세속을 떠난 세계[出世間]는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간의 본성 자체가 공함을 깨닫는 것이 그대로 세속을 떠난 깨끗한 세계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는 들고 나는 일이 없으며, 넘치고 흩어지는 일도 없습니다. 이것이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의(善意)보살은 말하였다.
"생사(生死)와 깨달음[涅槃]은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생사 그 자체의 본성을 이해하면 생사는 이미 없는 것입니다. 결박하는 것도 없고 그로부터 벗어날 필요도 없습니다. 또 고뇌로 인하여 몸을 태울 일이 없으므로 그것을 없앨 필요도 없습니다. 이같이 깨닫는 것이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견(現見)보살은 말하였다.
"다함[盡]과 다하지 아니함[不盡]이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법으로는 끝내 다하거나 다하지 않거나 모두 다함없는 모양이요, 다함없는 모양은 곧 공이며, 공에는 다함과 다하지 않는다 할 것이 없나니, 이같이 깨닫는 것이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수(普守)보살이 말하였다.
"나와 나 없는 것이 서로 대립하고 있어서, 나도 얻을 수 없거든 나 아닌 것을 어떻게 얻으리요, 나의 참 성품을 본 이는 둘이란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하리니, 이것이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뇌천(雷天)보살은 말하였다.
"지혜[明]와 어리석음[無明]은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에 어두운 어리석음[無明]의 본성은 곧 지혜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지혜를 지혜로써 집착해서는 아니 됩니다. 일체를 떠나고, 그 안에서 평등하여 상대하는 두 가지 것이 없는 것, 이것이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희견(喜見)보살은 말하였다.
"물질적 형상[色]과 그 형상이 공(空)한 것은 서로 대립하고 있으나 물질적 형상은 그대로가 공한 것으로서 물질적 형상이 멸하였으므로 공(空)인 것은 아닙니다. 물질적인 형상의 본성이 본래 공한 것입니다. 이같이 감각[受]·표상[想]·의지[行]도 그대로가 공인 것입니다. 의식[識]과 마음[心]이 공한 것도 서로 대립해 있으나, 마음 그대로가 공한 것이지 마음이 멸했기 때문에 공한 것은 아닙니다. 마음의 본성이 본래 공한 것입니다. 이같이 체득하는 것이 절대평등의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명상(明相)보살은 말하였다.
"네 가지 원소[地·水·火·風]가 다른 것과 공의 원소[空種]가 다른 것과는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네가지 원소의 본성 그대로가 공(空)의 본성인 것입니다. 이들 원소의 과거·미래가 공의 원소임과 같이 현재도 공의 원소인 것입니다. 만약 이같이 저마다의 원소의 본성을 알 수가 있으면, 이것이야말로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묘의(妙意)보살은 말하였다.
"눈과 그 작용의 대상인 형상[色]은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만약 눈의 본성을 알면, 형상에 탐착하지 않을 것이며, 성을 내거나 어리석을 일이 없을 것이며, 이것을 조용한 깨달음의 경지[寂滅]라고 이름합니다. 이같이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신체와 감촉, 마음[意]과 마음의 대상이 되는 것[法] 등이 서로 대립하고 있으나 만약 마음의 본성을 알면 마음의 대상에 대해서 탐착하는 일도, 성내는 일도, 어리석을 일도 없을 것이므로 이것을 조용한 깨달음의 경지[寂滅]라고 이름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안주(安住)하는 것을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진의(無盡意)보살은 말하였다.
"보시(布施)와 공덕을 일체지(一切智)에로 회향(廻向)하는 것은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시의 본성은 그대로 공덕을 일체지에로 회향하는 본성인 것입니다. 이같이 계를 지키는 것[持戒]과 인욕과 정진, 마음속으로 조용히 내관하는 것[禪定], 완전한 지혜를 활용하는 것[智慧] 등도 공덕을 일체지에로 회향하는 것과 서로 대립해 있습니다. 그러나 계를 지키는 것과 내지 완전한 지혜를 활용하는 것의 본성은 그대로 그 공덕을 일체지에로 회향하는 것의 본성인 것입니다. 그 안에서 이 진실한 도리[一相]를 깨닫는 것이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심혜(深慧)보살은 말하였다.
"공(空)인 것과 차별의 모양을 떠나 있는 것[無相]과 바라며 구하는 뜻이 없는 것[無作]은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은 그대로 차별의 모양을 떠나 있으며, 차별의 모양을 떠나 있는 것은 그대로 바라고 구하는 뜻이 없는 것입니다. 만약 공이며, 차별의 모양을 떠나고, 바라고 구하는 뜻이 없으면 곧 마음[心]과 뜻[意]과 식(識)이 없고, 깨달음에도 이끄는 하나의 문[一解脫門]에 있어서 깨달음에 나아가는 세 가지 문[三解脫門], 이를 체득하는 것이 곧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적근(寂根)보살은 말하였다.
"부처님[佛]과 부처님의 가르침[法]과 그 가르침을 봉행하는 승단[衆]은 서로 대립하고 있으나, 부처님은 곧 가르침[法]이며 가르침은 곧 그것을 봉행하는 승단인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보배[三寶]는 어느 것이나 모두가 영원불변한 절대적인 진실[無爲]의 나타남[相]으로서 허공과 같은 것입니다. 또 모든 것도 이와 같아서 이것을 잘 행하는 것이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심무애(心無碍)보살은 말하였다.
"신체와 신체가 멸하는 것[滅身]은 서로 대립하고 있지만, 신체가 있는 것은 그대로 신체가 멸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체의 진실한 본성[實相]을 보는 사람은 신체도 신체가 멸하는 것도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체와 신체의 멸과는 상대되는 것이 아니며, 분별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을 알고 놀라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 것이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선(上善)보살은 말하였다.
"몸과 입과 마음[意]과 그 행위[業]는 서로 대립하고 있으나 이 세 가지 행위에는 어느 것에도 행위[業]로서의 모양[作相]이 없습니다. 몸에 행위로서의 모양이 없는 것은 그대로 입에 행위로서의 모양이 없는 것이며, 입에 행위로서의 모양이 없는 것은 그대로 마음에 행위로서의 모양이 없는 것입니다. 이들 세 가지 행위로서의 모양이 없는 것은 그대로 모든 것[一切法]에 행위로서의 모양이 없는 것입니다. 이같이 능히 행위가 없는 것[無作]을 아는 지혜에 따르는 것이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전(福田)보살은 말하였다.
"선행(善行=福行)과 악행(惡行=罪行)과 보다 뛰어난 선행[不動行]은 서로 대립하고 있으나 이들 세 가지 행위의 본성[實性]은 그대로 공한 것입니다. 공이므로 거기에는 선행도 악행도 없습니다. 이 세 가지 행위에 아무런 일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화엄(華嚴)보살은 말하였다.
"주체적인 자아[我]의 존재로부터 거기에 나와 타자(他者)의 구별을 낳고 이 두 가지가 서로 대립해 있지만 이 자아의 진실한 모습을 공이라고 보는 사람은 타자와 나라고 하는 두 가지분별[二法]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만약 이 두 가지 것에 집착[住]하지 않으면 나와 타자라고 식별하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덕장(德藏)보살은 말하였다.
"집착하는 것[有所得相]은 대립입니다. 만약 공하다고 깨달아 집착하지 않으면[無所得]취사 선택은 없습니다. 취사선택이 없는 것이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월상(月上)보살은 말하였다.
"어둠과 밝음은 서로 대립해 있으나 어둠도 없고 밝음도 없으면 대립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컨대 모든 마음의 작용이 다해 버린 적정한 경지[滅受想定]에 들면 어둠도 없고 밝음도 없는 것과 같이, 모든 존재의 모양도 그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서 평등할 수 있는 것이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인수(寶印手)보살은 말하였다.
"궁극의 깨달음[涅槃]을 바라는 것과 세간(世間)을 바라지 않는 것과는 둘이지만, 만약 이 깨달음을 바라지 않고 세간을 싫어하지 않으면 곧 이 두 개의 대립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속박[煩惱]이 있으므로 해방(깨달음)이 있는 것이며, 만약 본래부터 속박이 없으면 해방을 구하는 사람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속박도 없고 해방도 없으면 곧 바라는 일도 싫어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정왕(珠頂王)보살은 말하였다.
"바른 길과 삿된 길은 서로 대립해 있습니다. 그러나 바른 길에 머문 사람은 이것은 삿되고 저 것은 옳다고 분별하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를 떠나는 것이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낙실(樂實)보살은 말하였다.
"진실[實]과 허위[不實]는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을 보는 사람은 진실까지도 보지 않습니다. 하물며 허위를 보겠습니까. 왜냐하면, 진실은 육안(肉眼)으로 보는 것이 아니며, 지혜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나, 그러면서도 이 지혜의 눈에는 본다고 하는 것도 보지 않는다고 하는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수많은 보살들이 제각기 설하였다.

그러고 문수사리에게 다시 물었다.
"어떻게 하여 보살은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들 수 있습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기를 "저의 생각으로는 모든 것에 있어서 말이 없고, 설(說)함도 없으며, 가리키는 일도, 인지(認知)하는 일도 없으며, 모든 질문과 대답을 떠나는 것이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문수사리는 유마거사에게, "저희들은 저마다 자기의 생각을 말하였습니다. 당신께서 이야기하십시오. 어떻게 하여 보살은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드는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러나 유마거사는 묵연(默然)하여 아무런 말이 없었다.
문수사리는 감탄하여 말하였다. "훌륭하도다. 참으로 훌륭하도다. 문자(文字)도 언어(言語)도 전혀 없도다. 이것이야말로 절대 평등한 경지에 진실로 드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드는 장(章)이 설해졌을 때, 이 곳에 모인 사람들 중 5천의 보살들 전부가 절대 평등한 경지에 들고 진리를 깨달은 편안함[無生法忍]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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