Ⅶ

불도품(佛道品)

 
8. 불도품(佛道品)

그때 문수사리가 유마거사에게 "보살은 어떻게 해서 부처의 행을 다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유마거사는 "만약 보살이 죄의 과보를 받아 미(迷)한 세계[非道]에 간다면 곧 부처의 깨달음에 달한 것입니다."
"불보살이 어떻게 하여 죄의 과보를 받아서 미(迷)한 세계에 갑니까."
"만약 보살은 다섯 가지 무거운 죄[五無間]를 범하여도 성을 내는 일이 없습니다. 지옥에 떨어지면서도 죄로 인하여 오염되는 일이 없으며, 축생(畜生)에 떨어져도 어리석음[無明]이나 교만한 마음 등의 과오가 없으며, 아귀(餓鬼)에 떨어져도 공덕을 갖추고 있으며, 청정한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나 물질을 초월한 세계에 이르러도 이것을 가장 뛰어난 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탐욕을 표면에 나타내어도 온갖 번뇌에 물드는 일이 없으며 진심(瞋心)을 표면에 나타내어도 성내는 마음은 없으며, 어리석음을 표면에 나타내어도 지혜로써 그 마음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재물을 아끼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안과 밖의 모든 것을 보시하며, 신체나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으며, 계율을 범한 것 같이 보이면서도 마음은 편안하고 바르게 계를 지켜 아무리 작은 죄에도 강한 두려움을 가지며, 성난 것 같으면서도 항상 너그럽게 인내하며, 게으른 것 같아도 마음을 다하여 공덕을 닦으며, 마음이 혼란한 것 같으면서도 마음은 언제나 조용하게 안정되어 있고, 어리석은 것 같으면서도 세속의 학식이나 깨달음의 지혜[世間出世間慧]에 통달해 있습니다.

아첨하거나 거짓을 밖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 같이 보이면서도 훌륭한 방편을 강구하여 경전의 뜻에 따르고, 교만하고 뽐내는 것과 같이 보이면서도 중생에게 있어서는 흡사 교량과 같으며, 온갖 번뇌를 나타내고 있지만 마음은 항상 청정합니다. 악(惡)의 속으로 들어가도 부처님의 지혜에 따르고 다른 가르침에는 따르지 않으며, 자기 혼자만 깨달음에 정진하는 성자의 사이에 섞여도 중생을 위하여 아직까지 듣지 못한 가르침을 설하며, 스스로 깨달아 깨달음을 홀로 즐기는 부처들 사이에 끼어도 광대한 자비를 완성하여 중생을 교화합니다. 가난으로 고생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도 보배를 낳는 손으로써 공덕은 다하는 일이 없으며, 불구자 사이에 끼어도 뛰어난 온갖 신체적 특징을 갖추어 그 몸을 장엄하고, 비천한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도 부처가 될 소질[佛種性]을 가진 자의 안에 태어나서 온갖 공덕을 갖추고, 몸이 쇠약하고 추한 사람들 사이에 섞여도 나아라야아나(那羅延=金剛力士)와 같이 힘센 몸을 얻어 모든 중생이 부러워 즐겁게 바라보는 대상이 되며, 늙고 병든 사람들 사이에 끼여도 길이 병의 뿌리를 끊고 죽음의 공포를 초월합니다.

재물이 있는 것을 감추지 않지만 항상 무상(無常)을 내관(內觀)하여 결코 탐착(貪着)하지 않으며, 아내와 첩과 창녀(娼女)가 있는 것을 감추지 않아도 항상 오관의 정욕의 진흙탕을 멀리 떠나 있고, 입이 무겁고 둔한 것같이 보이면서도 변재(辯才)를 완성하고 능히 기억하여 잊는 일이 없으며, 이교도(異敎徒)의 무리 속에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부처님의 가르침[正濟]에 의하여 모든 중생을 구하며, 온갖 길[道]에 남김 없이 드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그 인연을 끊고, 깨달음[涅槃]의 경지에 드는 것을 나타내면서도 생사를 끊어 없애지는 않습니다. 문수사리, 보살이 능히 이같이 죄의 과보를 받아 미 한 세계[非道]에 갈 수가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깨달음에 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마거사는 이렇게 말하고 문수사리에게 묻기를 "무엇을 여래의 씨[如來種]라고 합니까."라고 하자 문수사리는 답하기를, "이 몸을 씨라고 합니다. 진리에 어두운 어리석음[無明]과 집착도 씨입니다. 탐욕과 진심과 어리석음을 종자로 합니다. 도리에 어긋나는 네 가지 과오[四顚倒]와 다섯 가지 번뇌와 대상을 파악하는 여섯 개의 기관[六入]과 마음이 구하는 일곱 가지 안주(安住)하는 곳[七識處]과 여덟 가지 과오[八邪法]와 아홉 가지 고뇌[九惱處]와 열가지 악행[十不善道]까지도 모두 씨앗이며, 중요한 것을 취해서 말한다면 예순 두 가지 그릇된 생각[六十二見]이나 모든 번뇌가 모두 부처의 씨앗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생멸의 변화를 초월하여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실[無爲]을 보고, 깨달음의 경계[正位]에 든 사람은 다시 최고의 깨달음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고원에서는 연꽃이 자라지 않지만 더럽고 습한 진흙땅에서는 잘 자랍니다. 그와 같이 영구히 변하지 않는 진실[無爲法]을 보고 깨달음의 경계에 든 사람은 종내 다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으키지 않으며, 번뇌의 진흙 속에 중생이 있어 능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으킵니다. 또 공중에 씨를 뿌리면 싹이 틀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비옥한 땅[糞壤地]에서는 잘 자라는 것과 같이 영구히 변하지 않는 깨달음의 경계에 든 사람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으키는 일이 없습니다. 수미산과 같이 영원한 주체에 대한 집착[我見]을 일으켜도 더욱 최고의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모든 번뇌가 부처의 깨달음을 싹트게 하는 씨앗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대해(大海)의 깊은 밑바닥에 들어가지 않으면 값을 알 수 없을 만큼 비싼 보물을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번뇌의 대해에 들지 않으면 일체를 아는 지혜의 보물을 얻을 수 없습니다."

가섭(迦葉)이 탄식하며 말하였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명쾌하게 그대로입니다. 번뇌에 쌓인 중생은 부처의 씨앗입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이제 다시는 최고의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내는 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설사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는 다섯 가지 중죄를 범한 사람도 더욱 발심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으킬 수가 있음에도 지금 저희들에게는 길이 그 마음을 낼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성의 불구자는 오관의 정욕을 만족시킬 수 없음과 같이 자기만의 깨달음에 정진하여 온갖 번뇌가 없어진 성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있어서는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러한 서원을 세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수사리여 어리석은 범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넓혀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보답합니다. 그러나 자기만의 깨달음에 정진하는 자에게는 그런 씨앗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범부는 가르침을 들으면 능히 최고의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無上道心]을 내어서 부처님[佛]과 부처님의 가르침[法]과 그 가르침을 봉행하는 교단을 진심으로 신봉하지만 자기만의 깨달음에 정진하는 성자는 설사 생애가 끝나도록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지혜의 힘, 두려움을 모르는 자신을 관해서 이야기를 들어도 최고의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영구히 일으키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때 이 자리에 참석한 보현색신(普賢色身)이라고 불리는 보살이 유마거사에게 물었다.
"유마거사님, 그대의 양친과 처자·친척·권속·마름(사무관)·벗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남녀의 하인과 심부름하는 아이들·코끼리와 말·수레 따위는 모두 어디에 있습니까."
이에 유마거사는 게송으로 답하기를,
지혜[智度]는 보살의 어머니이며 방편으로 아버지를 삼고
일체 중생을 이끄는 스승도 이로써 태어났네
법의 기쁨으로 아내를 삼고
자비심으로 딸을 삼고 성실을 아들 삼아
구경(究竟)의 공은 나의 집일세
번뇌는 나의 제자요 뜻을 따르게 하며
수많은 수행의 길[道理]은 벗[善知識]으로써 깨달음에 이르게 하네
지혜의 완성[波羅密]은 법의 반려(伴侶)이며
깨달음에 이르는 네 가지 방법[四攝]은 기녀(伎女)일세
노래는 법의 말씀이라 이를 음악 삼고
기억의 동산에 번뇌가 없는 숲을 무성하게 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지혜를 돕는 일곱 가지 수행[七覺]의 꽃을 피워
깨달음과 지혜의 열매를 거두네
여덟 가지 내관으로 탐욕을 버린 경계[八解脫]는 목욕하는 못이 되고 삼매는 가득 차
일곱 가지 맑은 꽃을 피워 거기서 목욕하는 이는 무구(無垢)한 사람일세
신통(神通)으로 코끼리와 말을 삼고 대승(大乘)의 수레를 빌어
한 마음[一心]으로 제어(制御)해 가며 여덟 가지 바른 길[八正道]에 노니네
뛰어난 신체를 특이하게 장엄하고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모습이 되어
몸에 두른 참괴(慙愧)의 옷, 깊은 뜻은 꽃다발일세
일곱 가지 재보[七財]를 지니고 가르침을 받아 혜택을 베풀며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여 커다란 깨달음으로 회향하네
사선(四禪)이야말로 편안한 침상(寢床)이며
정명(淨名)을 따라 생활하고
많은 가르침을 들음으로써 지혜를 증진하고 이로써 깨달음을 위한 음악으로 삼네
먹는 것은 오직 단 이슬[甘露]뿐이며 깨달음[解脫]만을 맛보아 마시고
맑은 마음에 목욕하고 계율을 향 삼아 바르며
번뇌의 도둑을 정복하고 그 용감함은 비할 곳 없어
네가지 악마를 항복 받아 도장에 승리의 깃발을 세우네
생과 멸이 없음을 알면서도 남에게 가리키기 위하여 새삼스레 이승에 생을 받고
온갖 국토에 남김 없이 나타남은 마치 태양이 비추지 않은 곳이 없음과 같네
시방의 무량억(無量億) 여래(如來)를 공양해도
그 모든 부처와 나의 몸을 분별하는 생각은 없네
모든 부처님의 나라와 중생의 공(空)함을 알아도 항상 정토(淨土)의 행을 닦아 중생을 교화하네
모든 중생의 모습과 소리와 위의(威儀)를, 두려움 모르는 보살은 일시에 능히 남김 없이 나타내고
온갖 악마의 소행을 알아 그를 따라가서 방편으로써 선(善)으로 이끌고 뜻에 따라 모든 것을 성취하네
자신의 몸에 늙음과 병과 죽음을 나타냄으로써 모든 중생을 성취하여 꼭두각시와 같음을 가르치고 능히 깨닫게 하네
어느 때는 겁(劫)이 다하도록 불 속에 하늘과 땅이 타는 것을 보여 멸하지 않는다고 하는 생각을 끊게 하고 무상함을 알게 하네
무수억(無數億)의 중생이 함께 와서 보살을 청하면 일시에 그들의 집에 이르러 부처의 길에 나아가도록 교화하네
일체의 속서(俗書)와 주술·기예(技藝)등에 남김 없이 통달하여 중생에게 혜택을 베푸네
모든 세간의 도를 닦아 그 모든 세간에서 출가하여 이로써 사람의 미혹을 품고 삿된 소견에 떨어지지 않게 하네
어느 때는 해·달·하늘, 그리고 범천(梵天)의 세계의 이름이 되고, 혹은 땅이 되고 물이 되며, 혹은 바람이 되고 불이 되네
겁 동안에 병이 있으면 온갖 약초(藥草)가 되어 이것을 복용한 자는 독과 병을 물리치네
겁 동안에 기근(饑饉)이 있으면 몸을 바쳐 음식이 되고, 먼저 그 기갈(飢渴)을 구한 다음 가르침을 설하네
겁 동안에 전쟁이 일어나면 그를 위하여 자비심을 일으켜 저 모든 중생을 교화하여 싸움이 없는 땅에 살게 하네
만약 커다란 싸움터가 있으면 병력을 균등하게 하고 보살은 위세(威勢)를 나타내고 항복 받아 화평하게 하네
모든 국토 안에 있는 온갖 지옥까지도 찾아가 그 곳에 이르러 힘써 그곳의 고뇌를 구제하네
모든 국토 안에서 모든 축생들이 서로 물고 뜯으면 그 곳에 태어나 그들 모두에게 이익을 주네
오욕의 몸을 받고는 있어도 마음은 선(禪)을 닦아 안온하며, 악마가 찾아와 교란하려 해도 아무런 힘을 미치지 못하네
불 속에 연꽃을 피우는 것은 희유한 일일세
욕정이 있으면서 선을 닦는 것도 희유(稀有)하기 그와 같네
어느 때는 창녀가 되어 온갖 호색한(好色漢)을 유혹하고 욕정을 갈고랑이로 해서 끌어들여 다음에 불도(佛道)에 들게 하네
어느 때는 읍장(邑長)이 되고, 혹은 상인(商人)을 이끌며 국사(國師)와 대신이 되어 중생을 복되게 하네
빈한한 자에게 나타나 무진장한 창고가 되고 이를 계기로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내게 하네
자만심이 강한 자에게는 대역사(大力士)로 나타나 그의 교만한 마음을 굴복시켜 위없는 길에 머물게 하며
두려움에 떠는 무리에게도 그들 앞에 있어 위안이 되어 주고, 두려움이 없는 마음을 준 다음 도심(道心)으로 이끌어 들이네
어느 때는 음욕(淫欲)을 떠나 신통력을 가진 선인(仙人)이 되고
모든 중생을 이끌어 계율과 의욕과 유화(柔和)함에 머물게 하네
공양을 구하는 자를 보면 그를 위하여 몸을 아끼지 않는 중(仲)이 되고
그 마음을 기쁘게 하여 도심(道心)에 나아가도록 하네
사람이 구하는 것을 기다려 불도에 이끌어 들이고
뛰어난 방편으로 풍족한 마음을 갖게 하네
이와 같이 도는 무량하여 그 행은 끝이 없으며
지혜는 또한 무한하여 무수한 중생을 해탈케 하네
설사 일체의 부처가 무량억겁(無量億劫)에 걸쳐 그 공덕을 찬탄한다 해도 결코 다할 수 없네
누가 능히 이 같은 법을 듣고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랴
다만 저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 그리고 비열한 사람을 제외하고서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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