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
부사의품(不思議品)
6. 부사의품(不思議品)
그때 사리불은 유마거사의 방에 앉을 자리가 없는 것을
보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여러 보살과 수많은 부처님의 제자들은 도대체 어디에
앉을 것인가'를 생각하자 유마거사는 사리불의 그러한 마음을 관찰하고 사리불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진리를 구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 것입니까 아니면 앉을 자리를
걱정하기 위한 것입니까."라고 말하자 사리불은 "저는 진리를 구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앉을 자리 때문에 온 것은 아닙니다."
그러자 유마거사는 사리불이여,
진리를 구하는 사람은 신명(身命)도 돌아보지 않는데 하물며 앉을 자리에 집착하겠는가.
또 진리를 구하는 사람은 물질적 형상[色]이나 감각[受], 표상[想], 의지[行], 마음[識]을
구하지 않으며, 의지하는 곳[入], 마음의 업[業=界], 윤회하는 미[迷]한 세계도 구하지
않습니다. 그대의 말과 같이 진리를 구하는 사람은 부처에게 집착하여 구하는 것이
아니며, 부처의 가르침에 집착하여 구하는 것도 아니며, 승단[僧]에 집착하여 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진리를 구하는 사람은 괴로움을 알고자 구하고, 집착을 끊고자 구하며,
깨달음을 추구하고, 깨달음의 길을 닦고자 진리에 귀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리에는 무의미한 희론(戱論)은 없습니다. 만약 나는 당연히 괴로움을 알고 집착을
끊고 깨달음의 경계에 이르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닦지 않으면 아니 된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무의미한 희론이며, 진리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의 말과 같이
진리를 적멸(寂滅)이라고도 합니다. 만약 생멸(生滅)을 하면 이는 생멸하는 것을
구하고 있는 것이지 진리를 구하는 것은 아니외다. 진리를 무염(無染)이라고도 하지만,
만일 진리 내지는 깨달음[涅槃]에 얽매이면 그것은 오염된 집착이지 진리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대상의 세계[行處]에 있는 것이 아님에도 만약 진리를 대상으로서
취급하면 이는 곧 대상이지 진리를 구하는 것은 아니외다. 진리는 취사(取捨)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진리를 얻거나 버린다고 하면 이는 곧 취사하는 것이지 진리를
구하는 것은 아니외다. 진리는 곳[當處]이 없습니다. 만약 그러한 곳을 고집하면
그것은 곳에 집착한 것이지 진리를 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는 고정된 형상[無相]이 없습니다. 만약 형상으로서
이를 식별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형상을 구하는 것이지 진리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에 있어서는 곳[住所]이 없습니다. 만약 진리에 머물고자 한다면 이는 진리에
머물고자 하는 것이지 진리를 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는 보고, 듣고, 지각(知覺)하며,
의식(意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보고, 듣고, 지각하며, 의식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보고, 듣고, 지각하며, 의식하는 것이지 진리를 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는
인연에 의하여 만들어지지 않습니다[無存]. 만약 만들고자 하면 이는 만들어지는
것[有存]을 구하는 것이지 진리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리불이여, 그러므로 만약 진리를 구하는 자는 마땅히 모든 사물에서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오백의 천상의 신들은 모든 사물에 있어서 진리를 바르게 볼
수 있게[法眼淨]되었다.
또, 유마거사께서 문수에게 묻기를, "당신은 무수무량(無數無量)한
부처님의 나라를 돌아서 왔습니다. 어느 부처님의 나라에 말할 수 없이 훌륭한 공덕이
이루어진 사자좌(獅子座)가 있습니까." 문수사리는, "동쪽으로 항하(恒河)의
모래알과 같이 수많은 나라들을 서른 다섯이나 지난 곳에 세계가 있고 수미상(須彌相)이라
이름합니다. 그 부처님은 수비등왕이라 이름하고, 지금도 계십니다. 이 부처님의
신장은 8만4천 유순(由旬)이며, 그 사자좌의 높이도 8만4천 유순으로 세계 제1의
장엄입니다." 그러자 유마거사는 초능력을 발휘하여 그 나라 부처님의 높이가
3만2천 유순이나 되는 장엄한 사자좌를 유마거사의 방에 설치하였다. 이러한 것은
여러 보살과 부처님의 제자들, 제석천·범천·사천왕 등이 일찍이 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 방은 순식간에 넓어져 3만2천 유순의 사자좌를 수용하고도 아직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바이샤아리시나 이 세계[閻浮提]를 포함한 네 개의 대륙[四天下]이 좁아진
것도 아니었다. 어디를 보아도 전과 똑 같았다.
유마거사는 문수사리에게 "보살과 부처님의 제자들을 이끌어 사자좌에 올라앉으십시오.
그러나 이 사자좌에 합당한 몸을 갖추어야 합니다." 초능력을 지닌 보살은 곧
스스로의 몸을 4만2천 유순이 되는 모습으로 바꾸어 사자좌에
앉았다. 그러나 새로 뜻을 낸[初心] 보살이나 부처님의 제자들은 아무도 올라가지
못하였다. 그때 유마거사는 사리불에게도 사자좌에 오르도록 권하였다. 사리불은
"이 자리는 높고 넓어 저는 오를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하자 유마거사는
사리불이여, 수미등왕 여래(須彌燈王 如來)를 예배하면 앉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새로이 뜻을 낸 보살과 부처님의 제자들이 곧 수미등왕 여래를 예배하자
모두 사자좌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사리불이 "거사님, 이러한 것은 예전에
없던 희귀한 일입니다. 이렇게 작은 방에 이같이 높고 넓은 사자좌를 수용하여도
바이샤아리 시에 장애가 되지 않고, 또 이 세계의 마을과 거리와 그리고 네 개의
대륙·모든 하늘·용·귀신의 궁전이 좁아지거나 답답해지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유마거사가 답하기를 "사리불이여, 바로 그와 같습니다.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얻는 깨달음[解脫]을 불가사의(不可思議)라고 이름합니다. 만약 보살이 깨달음에 들면, 광대한 수미산을 겨자씨 안에 집어넣어도 그 겨자씨에는 증감(增減)이 없습니다. 수미산의 전망도 전과 같고, 사천왕이나 도리천은 자신이 어디에 들어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다만 장차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사람만이 수미산이 겨자씨 안에 든 것을 알뿐입니다. 이것을 불가사의한 깨달음의 경계[不可思議解脫法門]에 든다고 합니다. 또 네 개의 대해(大海)의 물을 하나의 털구멍에 넣어도 물고기와 자라·악어 그 밖의 물에 사는 생물을 괴롭히는 일이 없으며, 그 대해의 모습도 전과 같습니다. 용·귀신·아수라들도 자신이 어디에 들어 있는지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여 이들을 괴롭히지도 않습니다. 또, 불가사의의 깨달음에 든 보살이 삼천대천 세계를 끊어 쥐고 마치 도공(陶工)이 흙덩이를 오른 손바닥에 부쳐 항하의 모래알과 같이 수많은 세계 밖으로 던져 버린다 해도 그 안에 사는 중생은 자기가 어디로 갔는지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도 사람들은 가고 온 생각을 갖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세계의 본래 모습은 전과 같습니다. 혹은 중생이 길이길이 이승에 머물기를 바라고 제도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보살은 곧 7일을 1겁(劫)으로 늘려 그로 하여금 1겁으로 생각하게 하고, 혹은 중생이 길이길이 이승에 머물기를 원하지 않고, 제도할 자가 있으면 보살은 곧 1겁을 7일로 좁혀서 그로 하여금 7일이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또, 불가사의의 깨달음에 든 보살은 장엄된 모든 부처님
나라를 한 나라에 모아 중생에게 보여 줍니다. 또 보살은 한 부처님 나라의 중생을
오른 손바닥에 올려놓고 시방으로 날아가서 모든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본래의
장소를 옮기는 것은 아닙니다. 또 시방의 세계에 있는 태양·달·성좌(星座)를 하나의
털구멍 안에 나타나게 하여 널리 보여 줍니다. 또, 보살은 시방세계의 모든 바람을
남김 없이 입안에 빨아 들여도 몸을 상하는 일이 없으며, 수많은 수목(樹木)이 넘어지거나
꺾이는 일이 없습니다. 또 시방세계의 때가 다하여[劫盡] 불타 없어질 때, 모든 불을
뱃속에 넣습니다. 그러나 불은 본래와 같이 해하는 일이 없습니다. 또 아래를 향하여
항하의 모래알과 같이 수많은 부처님의 세계를 지나 하나의 부처님 나라를 취하고,
그것을 들어 위를 향하여 항하의 모래알과 같이 수많은 부처님의 세계를 지나 그
부처님 나라를 그 곳에 두는 것이 바늘 끝으로 한 잎의 대추 잎을 들어올리는 것과
같지만 어지럽히는 일이 없습니다. 불가사의의 깨달음에 든 보살은 초능력으로 부처님의
모습을 나타낼 수가 있습니다. 혹은 자기만의 깨달음에 정진하는 성자[聲聞]의 모습을
나타내고, 혹은 깨달음의 기쁨에 홀로 잠겨 있는 부처[벽支佛]의 모습을 나타내고,
혹은 제석천의 모습을, 혹은 범천의 모습을, 혹은 세주천(世主天)의 모습을, 혹은
전륜성왕(轉輪聖王)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또 시방세계의 모든 중생이 내는 고음(高音)·중음·저음
등을 부처님의 소리로 바꾸어 무상하고, 괴로움에 들고, 공에 들고, 변하지 않는
주체가 없음[無我]을 말하는 소리가 되게 합니다. 그리하여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설한 온갖 가르침을 그 안에서 널리 들을 수 있게 합니다.
사리불이여, 나는 지금 보살의 불가사의한 깨달음의 힘에 관하여 간략하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만약 자세하게 더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영원한 세월을 다하여도 이 오묘한 이치를
다 설할 수 없습니다."
이때 가섭(迦葉)은 보살의 불가사의한 깨달음의 경계[法門]에 대한 말씀을 듣고 미증유(未曾有)하다고 찬탄하였다. 그리고 사리불에게 말하기를, "예를 들면, 어느 사람이 장님 앞에서 여러 가지 색상을 그려 보여 주어도 그에게는 보이지 않음과 같이, 자기만의 깨달음에 정진하는 모든 성자는 이 불가사의한 깨달음의 경계를 들어도 이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가 이를 듣고 최고의 부처님의 깨달음[阿욕多羅三먁三菩提]을 얻고자 하는 뜻을 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찌하여 이 마음[根]을 길이길이 끊고서, 이 대승에 있어서 이미 썩은 종자[敗種]와 같아져 버렸습니까. 자기만의 깨달음에 정진하는 성자는 누구나 이 불가사의한 깨달음의 경계를 들으면 반드시 큰 소리로 울고, 그 소리는 삼천대천세계를 진동할 것이며, 모든 구도자는 반드시 기쁨에 넘쳐 이 가르침을 받들 것입니다. 만약 구도자로서 불가사의한 깨달음의 법문을 믿고 아는 사람이 있으면 모든 악마의 무리도 이를 어찌할 수 없을 것입니다."대가섭이 이같이 설하였을 때 3만2천의 천상의 신들은 모두가 높은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내었다.
그때 유마거사께서 대가섭과 그 동료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시방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계에서 마왕이 된 자는 대부분 불가사의의 깨달음에 든 보살들입니다. 그들은 방편의 힘으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마왕이 되어서 나타난 것입니다. 또 시방에는 무량한 보살이 있고, 혹은 사람이 있어서, 그[魔王]를 따라 손발이나 귀·코·머리·눈·뇌수(腦髓)·피·살·가죽·뼈를 구걸하고, 마을·거리·아내와 자식·하인과 코끼리·말수레·가마·금은·유리·차거(차車)·마노(瑪瑙)·산호·호박·진주·조개·의복·음식 등을 구걸합니다. 이 같은 사람이야말로 불가사의한 깨달음에 든 보살입니다. 그들은 훌륭한 방편으로 이 구도자를 시험하고, 그로 하여금 마음을 견고(堅固)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불가사의한 깨달음의 경계에 머문 보살에게는 위엄과 덕의 힘이 갖추어져 있으므로 온갖 중생에게 이 같은 곤란한 일을 강요할 수가 있지만, 범부는 비열하기 때문에 힘이 생겨나지 않으므로 이같이 구도자에게 강요를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용이나 코끼리에게 차이거나 밟힌 당나귀는 견딜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불가사의한 깨달음의 경계에 든 보살의 지혜 방편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