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
예배(禮拜)
26. 예배(禮拜)
又禮拜者 常如法也 理體內明 事相外變 理不可捨 事有行藏 會如是義 乃名依法 夫禮者 敬也 拜者 伏也 恭敬眞性 屈伏無明 名爲禮拜 以恭敬故 不敢毁傷 以屈伏故 無令縱逸 若能惡情永滅 善念恒存 雖不現相 常爲禮拜 其相者 則身相也 欲爲令諸世俗 表謙下心 故須屈伏外身 現恭敬相 用之則現 捨之則藏 擧外明內 唯性相 相應也 若復不行理法 有執外相 內則 縱於貪嗔癡 常行惡念 外則空顯身相 假作敬禮 何名禮拜 欺賢?聖 必不免於輪廻
또 예배라 하는 것은 항상 법답게 행하는 것을 말한다. 안으로 밝은 것이 이치의 본질이고, 밖에서 변하는 것이 일의 모습이다. 이치는 버릴 수가 없으나 일이란 나가서 행할 때도 있고 물러나 숨는 때도 있다. 이런 뜻을 이해한다면 법에 의지한다고 할 수 있다. 대저 예(禮)라는 것은 공경하는 뜻이며, 배(拜)라는 것은 굴복한다는 뜻이니, 진성(眞性)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을 예배라고 하는 것이다. 공경하므로 헐뜯기지 않고, 굴복하므로 방종해 질 수 없다. 만약 악한 감정이 영원히 사라지고 착한 생각이 항상 존속된다면 비록 겉모습으로 나타내지 않아도 항상 예배하는 것이다. 모습(相)이란 육신의 행위다. 세속적인 법을 따라 마음을 낮춰 겸손함을 나타내고자 하기 때문에 겉모습을 굴복시켜 공경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씀에 따라 드러나기도 하고 버리면 감춰지기도 하는 것이니, 겉의 예배를 통하여 마음이 밝아지는 것은 오직 성품과 겉모습이 서로 같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이법(理法)을 행하지 않고 겉모습의 예배만을 집착하면 마음대로 탐·진·치에 놀아나서 항상 나쁜 생각을 하고 겉으로 흉내만 내어 거짓으로 공경하는 것이니 어찌 예배라 하겠는가. 성인과 현인을 기만하는 짓이니 반드시 윤회를 면치 못할 것이다."
27. 세욕(洗浴)
又問曰 溫室經云洗浴衆士 得福無量 若有觀心 可相應不
答曰 洗浴衆士者 非說世間有爲之事也 此假諸事 譬喩眞宗 隱說七事 其七事者 一者
淨水 二者 燃火 三者 조豆 四者 楊枝 五者 淨灰 六者 소膏 七者 內衣 用此七法 沐浴莊嚴
能除三毒無明垢穢 其七法者 一者 法戒 洗溫愆非 猶如淨水 去諸塵垢 二者 智慧 觀察內外
猶如燃火 能溫淨水 三者 分別 揀棄諸惡 猶如 豆 能淨이垢 四者 眞實 斷諸妄語 猶如楊枝
能消口氣 五者 正信 決意無慮 猶如淨灰摩身 能酸諸風 六者 調息 伏諸剛强 猶如 膏
通潤皮膚 七者 참愧 悔諸惡業 猶如內衣 遮蔽醜形 以上七事 幷是經中秘密之藏 今人
無能悟解 其溫室者 則身是也 以智慧火 溫淨戒湯 沐浴身中眞如佛性 受持七法 以自莊嚴
當時正士 聰明利智 皆悟聖意 如說修行 功德成就 俱登聖果 今時衆生 愚痴鈍根 莫測斯事
將世間水 洗質碍身 自言依敎 豈非誤也 且眞如佛性 非是凡形 煩惱塵垢 本來無相 豈將碍水
洗無明身 事不相應 云何悟道 常觀此身 本因貪欲 不淨所生 臭穢騈전 內外充塞 若洗此身
求於淨者 猶如洗泥 終無得淨 如此驗之 明知外洗 非佛說也
물었다. "<온실경>에 보면 '여러 스님을 목욕
시켜주면 한없는 복을 받는다'하였는데 오직 관심(觀心)만 해도 마찬가지입니까?"
대답했다. "스님들을 목욕시킨다 하는 것은 세간의 유위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세상의 일을 빌려서 참종지[眞宗]를 비유한 것이며, 일곱 가지 일을
견주어서 말한 것이다. 그 일곱 가지는 첫째 맑은 물이고, 둘째 불을 피우는 것이고,
셋째는 조두(조豆)요, 넷째는 양지(楊枝)요, 다섯째는 깨끗한 재(灰)요, 여섯 째는
우유 기름이며, 일곱 째는 속옷이다. 이 일곱 가지의 법을 사용하여 목욕하고 장엄하면
삼독과 무명의 때를 제거할 수 있다.
일곱가지 법이란 첫째는 법과 계율이다. 잘못된 허물을 따뜻한 물에 씻기를 마치
맑은 물이 더러운 때를 씻듯이 함이다. 둘째는 지혜이니, 내외를 관찰하기를 마치
타는 불이 맑은 물을 따뜻하게 하듯이 함이다. 셋째는 분별이니, 악을 골라 버리기를
마치 콩을 씻어 깨끗함이 때를 없애는 것과 같음이다. 넷째는 진실이니, 온갖 거짓말을
끊는 것이 마치 양치질하여 입 냄새를 없애듯 함이다. 다섯째는 올바른 믿음인데
뜻을 결정하면 딴 생각없는 것이 마치 깨끗한 재로 몸을 문지르면 풍병을 피할 수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며, 여섯째는 호흡을 조절하는 것인데 억센 마음을 누르는
것이 마치 우유로 만든 기름으로 피부를 윤택하게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며, 일곱째는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인데 나쁜 짓을 뉘우치는 것이 마치 속옷이 추한 알몸을 감추어주는
것과 같기 때문인 것이니라.
이상 일곱 가지가 모두 경전 속의 비밀한 가르침인데 요즈음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이니라. 온실이라는 것은 곧 몸이니, 지혜의 불로 깨끗한 계율의 탕을 데워서 몸
속의 진여불성을 목욕시키되 일곱 가지 법으로 스스로를 장엄하라는 것이니라.
당시의 비구들은 총명하고 지혜가 뛰어났으므로 부처님의 뜻을 알아 설하신 대로
수행하고 공덕을 성취하여 모두 다 성인의 지위에 올랐는데 지금의 중생들은 어리석고
우둔하여 이 일을 알지 못하고 세간의 물로 육신을 씻는 것으로 가르침대로 하는
것이라 하니 그 어찌 잘못이 아니겠는가? 또 진여불성은 세속의 모습이 아니고, 번뇌와
마음을 더럽히는 것은 본래 모습이 없는데 어찌 형체가 있는 물로서 무명의 몸을
씻을 수 있겠으며, 사리에 맞지 않으니 어떻게 도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항상 이
육신은 본래 탐욕으로 인하여 부정하게 생겨난 것이라 냄새나고 더러운 것이 뒤섞여
안팎에 가득하다고 관할지니라. 이 몸을 씻어 깨끗하기를 바란다면 마치 진흙을 씻어봐야
깨끗해 질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이것으로 알 수 있듯이 껍데기를 씻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님을 분명히 알지니라."
28. 명염불(明念佛)
達磨答念佛問曰 夫念佛者 當修正念 了義爲正 不了義 爲邪 正念 必得眞樂 邪念 云何達彼 佛者 覺察身心 勿令起惡 念者 憶也 憶持戒行 不忘精勤 了如是義 名爲正念 故知念在於心 不在於言也 因筌求魚 得魚忘筌 因言得意 得意忘言 旣稱念佛之名 須行念佛之體 若念無實體 口誦空名 徒自虛功 有何成益 且如誦之與念 名義縣殊 在口曰誦 在心曰念 故知念從心起 名爲覺行之門 誦在口中 卽是音聲之相 執相求福 終無是乎
달마대사께서 염불에 대한 물음에 답하기를
염불이라는 것은 바른 생각을 닦는 것이다. 분명한 뜻을 바르다하고 그렇지 못한
것을 삿 되다 하는데 바른 생각은 반드시 참된 즐거움을 얻겠지만 삿 된 생각으로
어찌 피안에 도달하리요. 불(佛)이라는 것은 몸과 마음을 깨우치고 살펴서 악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고 념(念)이라는 것은 기억한다는 것이니라. 계행을 기억해 지니며
잊지 않고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이니라. 이런 이치를 알아야 바른 생각이라 한다.
그러므로 생각은 마음에 있는 것이지 말에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라.
통발로 고기를 잡되 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은 잊어버린다. 말로 뜻을 얻지만 뜻을
얻고 나면 말은 잊어버린다. 이미 염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면 염불의 실체를 행해야
한다. 만약 생각에 실체가 없이 입으로 헛되이 명호만을 왼다면 공력만 허비할 뿐
이익이 없다. 또 외우는 것과 염(念)하는 것은 이름과 뜻이 매우 다르다. 입으로
하면 외운다 하고, 마음으로 하면 염한다 한다. 그러므로 염하는 것은 마음에서 일어나므로
깨치는 수행의 문이라 하고, 외우는 것은 입에 속하며 음성의 모습이니, 형상에 집착해서
복을 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
29. 회상귀심(會相歸心)
故經云 凡所有相 皆是虛妄 又云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以此觀之 乃知事相 非眞正也 故知過去諸聖 所修功德 皆非外說 唯只論心 心是衆聖之源 心爲萬惡之主 無上眞樂 由自心生 三界輪廻 亦從心起 心爲出世之門戶 心是解脫之關津 知門戶者 豈慮難成 識關津者 何憂不達
그러므로 경에 말하기를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다'하였다. 또 말하기를 '만약 모양으로 나를 보려 거나 음성으로 나를 찾는다면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니, 끝내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했으니, 이로써 본다면 형상은 진정(眞正)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과거의 여러 성현들이 닦은 공덕은 다른 말씀을 한 것이 아니라 오직 마음을 논하였을 뿐이다. 마음은 여러 성인들의 근원이고, 마음은 모든 악의 주인이기도 하나니, 위없는 참 즐거움도 마음에서 생기고, 삼계를 윤회하게 됨도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마음은 세간을 벗어나는 문턱이요, 마음은 해탈의 나루터이니, 문을 아는 사람이 어찌 이루지 못할 것을 염려하며, 나루터를 아는 사람이 어찌 건너지 못할 것을 근심하겠는가.
30. 망영불상탑묘(妄營佛像塔廟)
竊見今時淺識 唯知立相爲功 廣費財寶 多傷水陸 妄營像塔 虛役人功 積木壘泥 塗靑畵綵 傾心盡力 損己迷他 未解慙愧 何曾覺悟 見有爲則勤勤愛着 說無相則兀兀如迷 且貪世上之小樂 不覺當來之大苦 此之修學 徒自疲勞 背正歸邪 광言獲福
요즘 천박한 사람들을 보니, 오직 형상을 세우는 것으로 공덕을 삼아 많은 재물을 허비한다. 물과 육지의 중생을 상하게 하면서 망령되이 불상과 탑을 세우며, 사람들의 공을 허비하여 나무와 진흙을 쌓아올리고 단청을 하기에 온 힘을 다 기울이니, 자기도 손해 되고 남도 어리석게 하면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니 어찌 깨달을 수 있겠는가. 유위법(有爲法)을 보면 부지런히 애착을 일으키고 무위법(無爲法)을 말해주면 바보처럼 멍청해진다. 세상의 조그마한 쾌락을 탐하다가 닥쳐올 큰 고통을 깨닫지 못하니 이런 공부는 스스로 피로할 뿐이다. 이는 불법의 바른 이치를 등지고 삿된 길로 가는 것이니, 복을 받는다는 것은 속이는 말이다.
31. 결귀관심(結歸觀心)
但能攝心內照 覺觀常明 絶三毒心 永使消亡 閉六賊門 不令侵擾 恒沙功德 種種莊嚴 無量法門 一一成就 超凡證聖 目擊非遙 悟在須臾 何煩皓首 眞門幽秘 寧可具陣 略說觀心 詳其小分
오직 마음을 잘 거두고 안을 비추어 항상 밝게 관찰[覺觀]하여
삼독심을 영원히 녹여 없애고, 육적의 문을 닫아서 다시는 침범 못하게 하면 한없는
공덕과 갖가지의 장엄과 무량한 법문을 낱낱이 성취할 것이다.
범부를 초월하여 성현의 지위에 오르는 것은 눈 깜짝할 사이다. 깨달음은 일순간인데
어찌 번거롭게 머리가 희도록 기다리겠는가. 참된 법문은 깊고 비밀하니 어찌 다
말하겠는가. 마음 관하는 법을 간략히 말하여 조금이나마 상세히 밝히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