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

근기(根機)


16. 근기(根機)

선지식들아, 만약 매우 깊은 법의 세계에 들고자 하고 반야삼매에 들고자 하는 사람은 바르게 반야바라밀의 행을 닦을 것이며 오로지 금강반야바라밀경 한권만 지니고 읽으면 곧 자성을 보아 반야삼매에 들어가느니라.
이 사람의 공덕이 한량없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경에서 분명히 찬탄하였으니, 능히 다 갖추어 설명하지 못하느니라.
이것은 최상승법으로서 큰 지혜와 높은 근기의 사람을 위하여 설한 것이다. 만약 근기와 지혜가 작은 사람이 이 법을 들으면 마음에 믿음이 나지 않나니, 무엇 때문인가?
비유하면 마치 큰 용이 큰 비를 내리는 것과 같다. 염부제에 비가 내리면 풀잎이 떠다니듯 하고, 만약 큰비가 큰 바다에 내리면 불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 것과 같으니라.
대승의 사람은 금강경 설하는 것을 들으면 마음이 열려 깨치고 안다. 그러므로 본래 성품이 스스로 반야의 지혜를 지니고 있어서 스스로 지혜로써 보고 비추어서 문자를 빌리지 않음을 알라.
비유컨데, 그 빗물이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님과 같다. 원래 용왕이 강과 바다 가운데서 이 물을 몸으로 이끌어 모든 중생과 모든 초목과 모든 유정·무정을 다 윤택하게 하고, 그 모든 물의 여러 흐름이 다시 큰 바다에 들어가고 바다는 모든 물을 받아들여 한 몸으로 합쳐지는 것과 같나니, 중생의 본래 성품인 반야의 지혜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善知識 若欲入甚深法界 入般若三昧者 直修般若波羅蜜行 但持金剛般若波羅蜜經一卷 卽得見性 入般若三昧 當知此人功德 無量 經中 分明讚嘆 不能具說 此是最上乘法 爲大智上根人說 小根智人 若聞此法 心不生信 何以故 譬如大龍 若下大雨 雨於閻浮提 如漂草葉 若下大雨 雨於大海 不增不減 若大乘者 聞說金剛經 心開悟解 故知本性 自有般若之智 自用智惠觀照 不假文字 譬如其雨水不從天有 元是龍王 於江海中 將身引此水 令一切衆生 一切草木 一切有情無情 悉皆蒙潤 諸水衆流 却入大海 海納衆水 合爲一體 衆生本性 般若之智 亦復如是

근기가 작은 사람은 단박에 깨치는 이 가르침을 들으면, 마치 근성이 작은 대지의 초목이 큰 비를 맞고 모두 다 저절로 거꾸러져서 자라지 못함과 같나니, 작은 근기의 사람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반야의 지혜가 있는 점은 큰 지혜를 가진 사람과 또한 차별이 없거늘, 무슨 까닭으로 법을 듣고도 곧 깨치지 못하는가?
삿된 소견의 장애가 무겁고 번뇌의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마치 큰 구름이 해를 가려, 바람이 불지 않으면 해가 능히 나타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반야의 지혜도 또한 크고 작음이 없으나 모든 중생이 스스로 미혹한 마음이 있어서 밖으로 닦아 부처를 찾으므로 자기의 성품을 깨닫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이같이 근기가 작은 사람일지라도 단박에 깨치는 가르침을 듣고 밖으로 닦는 것을 믿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마음에서 자기의 본성으로 하여금 항상 바른 견해를 일으키면 번뇌·진로의 중생이 모두 다 당장에 깨치느니라. 마치 큰 바다가 모든 물의 흐름을 받아들여서 작은 물과 큰물이 합하여 한 몸이 되는 것과 같으니라.
곧 자성을 보면 안팎에 머물지 아니하며 오고감에 자유로워 집착하는 마음을 능히 없애어 통달하여 거리낌이 없나니, 마음으로 이 행을 닦으면 곧 반야바라밀경과 더불어 본래 차별이 없느니라.

小根之人 聞說此頓敎 猶如大地草木根性自小者 若被大雨一沃 悉皆自倒 不能增長 小根之人 亦復如是 有般若之智 與大智之人 亦無差別 因何聞法卽不悟 緣邪見障重 煩惱根深 猶如大雲 蓋覆於日 不得風吹 日無能現 般若之智 亦無大小 爲一切衆生 自有迷心 外修覓佛 未悟自性 卽是小根人 聞其頓敎 不信外修 但於自心 令自本性 常起正見 煩惱塵勞衆生 當時盡悟 猶如大海納於 水合爲一體 衆流 小水大 卽是見性 內外不住 來去自由 能除執心 通達無碍 心修此行 卽與般若波羅蜜經 本無差別

* 반야삼매(般若三昧)… 식심견성하면 반야삼매라고 육조는 말했다.

17. 견성(見性)

모든 경서 및 문자와 소승과 대승과 십이부의 경전이 다 사람으로 말미암아 있게 되었나니, 지혜의 성품에 연유한 까닭으로 능히 세운 것이니라. 만약 내가 없다면 지혜있는 사람과 모든 만법이 본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법이 본래 사람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것이요, 일체 경서가 사람으로 말미암아 '있음'을 말한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사람 가운데는 어리석은 이도 있고 지혜로운 이도 있기 때문에, 어리석으면 작은 사람이 되고 지혜로우면 큰 사람이 되느니라.
미혹한 사람은 지혜있는 이에게 묻고 지혜있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을 위하여 법을 설하고 어리석은 이로 하여금 깨쳐서 알아 마음이 열리게 한다.
미혹한 사람이 만약 깨쳐서 마음이 열리면 큰 지혜 가진 사람과 더불어 차별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알라, 깨치지 못하면 부처가 곧 중생이요 한생각 깨치면 중생이 곧 부처니라. 그러므로 알라, 모든 만법이 다 자기의 몸과 마음 가운데 있느니라. 그럼에도 어찌 자기의 마음을 좇아서 진여의 본성을 단박에 나타내지 못하는가? 보살계경에 말씀하기를 "나의 본래 근원인 자성이 청정하다"고 하였다. 마음을 알아 자성을 보면 스스로 부처의 도를 성취하나니, 당장 활연히 깨쳐서 본래의 마음을 도로 찾느니라.

一切經書及文字 小大二乘 十二部經 皆因人置 因智惠性故 故能建立 我若 無 智人 一切萬法 本無不有 故知萬法 本因人興 一切經書因人說有 緣在人中有 愚有智 愚 爲小故 智爲大人 迷人問於智者 智人 與愚人說法 令使愚者 悟解心開 迷人 若悟心開 與大智人無別 故知不悟 卽佛是衆生 一念若悟 卽衆生是佛 故知一切萬法 盡在自身心中 何不從於自心 頓現眞如本性 菩薩戒經 云 我本源自性 淸淨 識心見性 自成佛道 卽時豁然 還得本心

* 오즉시불(悟卽是佛: 깨치면 곧 부처)… 누차 언급한 바이지만, 육조의 깨달음은 불지(佛地)뿐이요, 십지·등각은 깨달은 경지가 아니다.

18. 돈오(頓悟)

선지식들아, 나는 오조 홍인화상의 회하에서 한 번 듣자 그 말끝에 크게 깨쳐 진여의 본래 성품을 단박에 보았느니라. 이러므로 이 가르침의 법을 뒷세상에 유행시켜 도를 배우는 이로 하여금 보리를 단박 깨쳐서 각기 스스로 마음을 보아 자기의 성품을 단박 깨치게 하는 것이다.
만약 능히 스스로 깨치지 못하는 이는 모름지기 큰 선지식을 찾아서 지도를 받아 자성을 볼 것이니라.
어떤 것을 큰 선지식이라고 하는가?
최상법이 바른 길을 곧게 가리키는 것임을 아는 것이 큰 선지식이며 큰 인연이다. 이는 이른바 교화하고 지도하여 부처를 보게 하는 것이니, 모든 착한 법이 다 선지식으로 말미암아 능히 일어나느니라.
그러므로 삼세의 모든 부처와 십이부의 경전들이 사람의 성품 가운데 본래부터 스스로 갖추어져 있다고 말할지라도, 능히 자성을 깨치지 못하면 모름지기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서 자성을 볼지니라.
만약 스스로 깨친 이라면 밖으로 선지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밖으로 선지식을 구하여 해탈 얻기를 바란다면 옳지 않다. 자기 마음속의 선지식을 알면 곧 해탈을 얻느니라.
만약 자기의 마음이 삿되고 미혹하여 망념으로 전도되면 밖의 선지식이 가르쳐 준다 하여도 스스로 깨치지 못할 것이니, 마땅히 반야의 관조를 일으키라. 잠깐 사이에 망념이 다 없어질 것이니 이것이 곧 자기의 참 선지식이라, 한번 깨침에 곧 부처를 아느니라.

善知識 我於忍和尙處 一聞 言下 大悟 頓見眞如本性 是故將此敎法 流行 後代 令學道者 頓悟菩提 各自觀心 令自本性 頓悟 若不能自悟者 須覓 大善知識示導 見性 何名大善知識 解最上乘法 直示正路 是大善知識 是大因緣 所謂化導令得 見佛 一切善法 皆因大善知識能發起 故三世諸佛 十二部經 云在人性中 本自具有 不能自性悟 須得善知識示導 見性 若自悟者 不假外善知識 若取外求善知識 望得解脫 無有是處 識自心內善知識 卽得解脫 若自心 邪迷 妄念顚倒 外善知識 卽有敎授 不得自悟 當起般若觀照 刹那間 妄念 俱滅 卽是自眞正善知識 一悟卽知佛也

자성의 마음자리가 지혜로써 관조하여 안팎이 사무쳐 밝으면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알고, 만약 본래 마음을 알면 이것이 곧 해탈이며, 이미 해탈을 얻으면 이것이 곧 반야삼매며, 반야삼매를 깨치면 이것이 곧 무념이니라.
어떤 것을 무념이라고 하는가?
무념법이란 모든 법을 보되 그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곳에 두루하되 그 모든 곳에 집착치 않고 항상 자기의 성품을 깨끗이 하여 여섯 도적들로 하여금 여섯문으로 달려나가게 하나 육진 속을 떠나지도 않고 물들지도 않아서 오고감에 자유로운 것이다. 이것이 곧 반야삼매이며 자재해탈이니 무념행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온갖 사물을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항상 생각이 끊어지도록 하지 말라. 이는 곧 법에 묶임이니 곧 변견이라고 하느니라.
무념법을 깨친 이는 만법에 다 통달하고, 무념법을 깨친 이는 모든 부처의 경계를 보며, 무념의 돈법을 깨친 이는 부처의 지위에 이르느니라.

自性心地 以智惠觀照 內外明徹 識自本心 若識本心 卽是解脫 旣得解脫 卽是 般若三昧 悟般若三昧 卽是無念 何名無念 無念法者 見一切法 不著一切法 遍一切處 不著一切處 常淨自性 使六賊 從六門走出 於六塵中 不離不染 來去自由 卽是般若三昧 自在解脫 名無念行 莫百物不思 常令念絶 卽是法縛 卽名邊見 悟無念法者 萬法盡通 悟無念法者 見諸佛境界 悟無念頓法者 至佛位地

* 돈견본성(頓見本性: 본래 성품을 단박에 봄)… 내외명철하면 이것이 곧 식심(識心: 마음을 앎)·해탈·무념이고, 무념은 곧 불지라 하였다. 내외명철은 묘각이며, 식심은 견성(見性: 성품을 봄)이므로, 견성하면 묘각해탈이요, 불지무념이다. 그러므로 견성하면 곧 성불인 것이다.
'곧 불성을 보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卽見佛性하야 得阿褥多羅三 三菩提니라 - 涅槃經 二]'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불성을 보느니라[必得阿褥多羅三 三菩提하야 得見佛性이니라 - 涅槃經 二十]'
*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무상정각 곧 성불이니, 위의 글들은 성불과 견성이 동일한 내용임을 말한다.
'지위가 십지인 보살이라 하여도 오히려 불성을 밝게 보지 못하느니라[菩薩이 位階十地하여도 尙未明了知見佛性이니라 - 涅槃經 八]'
'모든 부처님은 정·혜를 함께 함으로써 불성을 밝게 보느니라[諸佛世尊은 定慧等故로 明見佛性이니라 - 涅槃經 二十八].'
'보살의 지위가 다하여 미세한 망념을 멀리 떠남으로써 심성을 보나니, 구경각이라고 이름하느니라[菩薩地盡하야 以遠離微細念故로 得見心性이니 名究竟覺이니라 - 起信論].'
'십지의 성인들이 법문을 설하기를 구름 일 듯하고 비오 듯 하여도, 견성은 비단으로 눈을 가리운 것과 같으니라[十地聖人이 說法은 如雲如雨하야도 見性은 如隔羅穀이니라 - 雲門 傳燈錄 十九].'
'견성하면 곧 부처가 되느니라[見性하면 卽成如來니라 - 宗鏡錄 四十四].
* 이상과 같이 부처님과 조사들이 한결같이 견성이 곧 성불이라고 하였으니, 육조스님 말씀과 같다. 그리고 교가(敎家)의 권위인 현수(賢首)도 그의 <기신론의기(起信論義記)>에서 구경불지(究竟佛地)만이 견성이라고 하였으니, '견성이 곧 성불'임은 선(禪)·교(敎)를 통한 근본 철칙이다.

19. 멸죄(滅罪)

선지식들아, 뒷세상에 나의 법을 얻는 이는 항상 나의 법신이 너희의 좌우를 떠나지 않음을 보리라.
선지식들아, 이 돈교의 법문을 가지고 같이 보고 같이 행하여 발원을 세워 받아 지니되 부처님 섬기듯이 함으로써, 종신토록 받아 지녀 물러나지 않는 사람은 성인의 지위에 들어가고자 하느니라.
그러나 전하고 받을 때에는 모름지기 옛부터 말없이 법을 부촉하여 큰 서원을 세워서 보리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곧 모름지기 분부한 것이니라.
만약 견해가 같지 않거나 뜻과 원이 없다면 곳곳마다 망령되이 선전하여 저 앞사람을 손상케 하지 말라. 마침내 이익이 없느니라.
만약 만나는 사람이 알지 못하여 이 법문을 업신여기면 백겁만겁 천생토록 부처의 종자를 끊게 되리라.

善知識 後代 得吾法者 常見吾法身 不離汝左右 善知識 將此頓敎法門 同見同行 發願受持 如事佛故 終身受持而不退者 欲入聖位 然須傳受時 從上已來 묵然而付於法 發大誓願 不退菩提 卽須分付 若不同見解 無有志願 在在處處 勿妄宣傳 損彼前人 究竟無益 若愚人不解 만此法門 百劫萬劫千生 斷佛種性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나의 '모양 없는 게송'을 들으라. 너희 미혹한 사람들의 죄를 없앨 것이니 또한 '죄를 없애는 게송(滅罪頌)'이라고 하느니라."
게송에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은 복(福)을 닦고 도(道)는 닦지 않으면서
복 닦음이 곧 도라고 말한다.
보시 공양하는 복은 끝이 없으나
마음 속 삼업은 원래대로 남아 있도다.
만약 복을 닦아 죄를 없애고자 하여도
뒷세상에 복은 얻으나 어찌 죄가 따르지 않으리오.
마음 속에서 죄의 반연을 없앨 줄 안다면
저마다 자기 성품 속의 참된 참회니라.
대승의 참된 참회를 깨치면
삿됨을 없애고 바름을 행하여 죄 없어지리.
도를 배우는 사람이 능히 스스로 보면
곧 깨친 사람과 더불어 같도다.
오조께서 이 단박 깨치는 가르침을 전하심은
배우는 사람이 같은 한 몸 되기를 바라서이다.
만약 장차 본래의 몸을 찾고자 한다면
삼독의 나쁜 인연을 마음 속에서 씻어 버려라.
힘써 도를 닦아 유유히 지내지 말라.
어느덧 헛되이 지나 한세상 끝나리니
만약 대승의 단박 깨치는 법을 만났거든
정성들여 합장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구하라.

대사께서 법을 설하여 마치시니, 위사군과 관료와 스님들과 도교인과 속인들의 찬탄하는 말이 끊이지 않고 '예전에 듣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大師言 善知識 聽吾說無相頌 令汝迷者罪滅 亦名滅罪頌 頌曰
    愚人修福不修道 謂言修福而是道
    布施供養福無邊 心中三業元來在
    若將修福欲滅罪 後世得福罪無造
    若解向心除罪緣 各自性中眞懺悔
    若悟大乘眞懺悔 除邪行正造無罪
    學道之人能自觀 卽與悟人同一例
    大師令傳此頓敎 願學之人同一體
    若欲當來覓本身 三毒惡緣心中洗
    努力修道莫悠悠 忽然虛度一世休
    若遇大乘頓敎法 虔誠合掌志心求
大師說法了 韋使君官僚 僧衆道俗 讚言無盡 昔所未聞

* 동견동행(同見同行: 같이 보고 같이 행함)…같은 아래 글에서 '만약 견해가 같지 않으면[若不同見解]'이라고 함과 같이 '견해가 같음'을 말한다.
* 대승돈교(大乘頓敎)…삼승(三乘) 가운데의 대승이 아니요, 최상최존(最上最尊)의 표현이며, 최상최존의 돈오교법(頓悟敎法)을 말한 것이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