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問曰 今於心中作 若爲修行
答曰 但於一切事上 覺了無心 卽是修行 更不別有修行 故知無心 一切寂滅 卽無心也
弟子於是 忽然大悟 始知心外無物 物外無心 擧止動用皆得自在 斷諸疑網 更無 碍 卽起作禮而銘無心
乃爲頌曰
心神向寂 無色無形
覩之不見 聽之無聲
似暗非暗 如明不明
捨之不滅 取之無生
大卽廓周法界
小卽毛竭不停
煩惱混之不濁 涅槃澄之不淸
眞如本無分別 能辯有情無情
收之一切不立 散之普遍含靈
神妙非知所測 正覺絶於修行
滅則不見其壞 生則不見其成
大道寂號無相 萬像窈號無名
如斯運用自在 總是無心之精
"그렇지만 지금의 마음속에 짓는 것이 있으니, 어찌
수행해야 합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無心을 깨닫기만 하면 그것이 바로 수행이지 따로 수행을
둘 것이 없다. 그러므로 마음이 없으면 일체가 적멸하여 그대로가 無心이다."
제자가 여기서 홀연히 크게 깨쳐, 마음밖에 물건 없고 물건밖에 마음 없음을 비로소 알았다. 모든 행동에 자재를 얻어 의심의 그물을 끊고, 다시 걸림이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일어나서 절을 하고 無心을 마음에 새기고는 노래로 읊었다.
신령한 마음 아주 고요하여
빛깔도 없고 형체도 없나니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소리 없어라
어두운 듯하나 어둡지 않고
밝은 듯하나 밝지도 않아
버려도 없어지지 않고
가져도 생기지 않네.
크기로는 법계를 감싸고
작기로는 털끝도 용납치 않나니
번뇌로 뒤섞어도 흐려지지 않고
열반으로 맑혀도 맑아지지 않네.
진여는 본래 분별이 없으나
유정과 무정을 가려내니
거두어 들이면 아무 것도 설자리 없고
흩어 놓으면 모든 중생에 두루하여
그 신묘함은 앎으로 헤아릴 바 아니며
정각에는 수행이 끊겼네.
없어져도 그 무너짐을 보지 못하고
생겨나도 그 이뤄짐을 보지 못하니
대도는 고요함이여! 모양이 없고
만상은 그윽함이여! 이름 없어라
이처럼 자재한 운용이 모두가
그대로 無心의 정묘함이로다.
[9]
和尙又告曰 諸般若中 以無心般若而爲最上 故維摩經云 以無心意無受行
而悉 伏外道 又法鼓經云 若知無心可得 法卽不可得 罪福亦不可得 生死涅槃亦不可得
乃至一切盡不可得 不可得亦不可得 乃爲頌曰
昔日迷時爲有心
今時悟罷了無心
雖復無心能照用
照用常寂卽如如
重曰
無心 無照亦無用
無照無用卽無爲
此是如來眞法界
不同菩薩與酸支
言無心者 卽無妄相心也
대사께서 다시 일러주셨다.
"여러 가지 반야 중에 無心 반야가 으뜸이다. 그러므로 <유마경>에서는
'심의도 없고 수행도 없으나 외도를 모두 꺾어버린다'고 하였다. 또 <법고경>에서는
'만일 얻을 마음이 없음을 알면 법도 얻을 것이 없으며, 죄도 복도 얻을 것이 없으며,
생사도 열반도 얻을 것이 없다. 나아가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으니, 얻을 것 없다는
그것마저도 얻을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노래로 말씀하셨다.
지난날 미혹할 때는 마음이 있더니
이제 깨닫고 나니 無心이어라.
無心이긴 하나 비추고 쓰나니
항상 고요한 비춤과 쓰임은 그대로 如如하여라.
다시 노래로 말씀하셨다
無心하여 비춤도 없고 쓰임도 없나니
비춤 없고 쓰임 없는 그것이 無爲로다.
이것이 여래의 진실된 법계라.
보살, 벽지불과는 같지 않도다.
여기서 무심이란 망상없는 마음을 말한다.
[10]
又問 何名爲太上
答曰 太者大也 上者 高也 窮高之妙理故云太上也 又太者通泰之位也 三界之天 雖有延康之壽
福盡 是故終輪廻六趣 未足爲太 十住菩薩 雖出離生死 而妙理未極 亦未爲太 十住修心
亡有入無 又無其無有雙遣 不忘中道 亦未爲太 又忘中道 三處都盡 位皆妙覺 菩薩雖遺三處
不能無其所妙亦未爲太 又忘其妙 則佛道至極 則無所存 無存思則無思慮 兼妄 心智永息
覺照俱盡 寂然無爲 此名爲太也 太是理極之義 上是無等等也 故云 太上 卽是佛如來之別名也
또 물었다
"무엇을 태상이라고 합니까?"
"태는 크다는 뜻, 상은 높다는 뜻이다. 가장 높고 묘한 이치를 태상이라고 한다.
달리 말하자면 태는 크게 통달한 지위를 말한다. 삼계의 하늘들이 수복 강녕을 누리나
복이 다함으로써 결국 육취에 윤회하게 되니 크다 할 수는 없다.
십주1) 보살도 생사는 벗어났지만, 묘한 이치를 다하지는 못했으므로
역시 크다 할 수 없다. 십주 수심도 有를 없애고 無에 들어가, 有無를 동시에 떨쳐버리는
것마저 없긴 하나, 중도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그 역시 크다 할 수 없다. 나아가 중도를
잊어 세 곳이 모두 다해야만 묘각의 지위인데, 보살이 세 곳을 다 떨어버리기는 했으나
묘하다는 당처를 없애지는 못했으므로 역시 크다 할 수 없다.
그 묘함을 잊으면 지극한 불도라도 설자리가 없고, 생각을 용납하지 않으면 생각
없다는 것마저도 함께 잊어서, 심(心)과 지(智)가 영원히 쉬고 각(覺)과 조(照)가
동시에 다하여 적연 무위하니 이것을 크다고 하는 것이다.
태(太)는 이치가 극에 다다랐다는 뜻이며, 상은 견줄바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태상이라 하는 것이니 이는 바로 부처 여래의 다른 이름이다.
1) 십주(十住) : 십지(十地)의 다른 말로 보살의 수행 계위(階位) 52위중 제11위에서 제20위까지를 일컫는 말로 10신위(信位)를 지나서 진제(眞諦)의 경지, 곧 불타(佛他)에 안주할 수 있게 됐다는 뜻으로 십주(十住)라 한다.
① 발심주(發心住) : 마음을 올바로 가짐
② 치지주(治地住) : 마음을 가다듬음
③ 수행주(修行住) : 올바로 생활함
④ 생귀주(生貴住) : 새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
⑤ 방편구족주(方便俱足住) : 모든 좋은 방법을 다 쓰도록 힘씀
⑥ 정심주(正心住) : 지혜로운 마음을 가지도록 함
⑦ 불퇴주(不退住) : 뒷걸음질 치지 않도록 노력함
⑧ 동진주(童眞住) : 순수하고자 함
⑨ 법왕자주(法王子住) : 진리의 상속자가 되고자 함
⑩ 관정주(灌頂住) : 항상 지혜의 물을 머리에 들이 붓 듯함
(辛巳年
末 牛谷禪院 註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