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夫至理無言 要假言而顯理 大道無相 爲接鹿而見形 今且假立二人共談無心之論矣

지극한 이치는 말이 없으나 말을 빌려야 그 이치가 드러나고, 큰 도는 모양이 없으나 사물을 통해서 그 형체를 드러낸다. 이제 여기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고 '無心'에 대해서 함께 논해보기로 하자.

[2]

弟子問和尙曰 有心 無心
答曰 無心
問曰 旣云無心 誰能見聞覺知 誰知無心
答曰 還是無心 旣見聞覺知 還是無心能知無心
問曰 旣若無心 卽今無有見聞覺知 云何得有見聞覺知
答曰 我雖無心 能見能聞能覺能知
問曰 旣能見聞覺知 卽是有心 那得稱無
答曰 只是見聞覺知 卽是無心 何處更離見聞覺知 別有無心 我今恐汝不解 一一爲汝解說 令汝得悟眞理 假如見 終日見 由爲無見 見亦無心 聞終日聞 由爲無聞 聞亦無心 覺終日覺 由爲無覺 覺亦無心 知終日知 由爲無知 知亦無心 終日造作 作亦無作 作亦無心 故云 見聞覺知總是無心

제자가 대사께 물었다.
"마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마음이 없다"
"마음이 없다고 하신다면 무엇이 보고 듣고 느끼고 알며, 무엇이 無心인 줄을 압니까?"
"도리어 이는 無心이다. 이미 보고 듣고 느끼고 알지만 도리어 이 無心이 무심임을 능히 안다."
"마음이 없다면 지금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 없어야 할텐데, 어째서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 있게 됩니까?"
"나는 마음이 없으나,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다."
"보고 듣고 느끼고 알 수 있다면 마음이 있는 것인데, 어떻게 없다 할 수 있습니까?"
"그저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그대로가 無心이니,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말고 어디 따로 無心이 있겠느냐. 그대가 이해하지 못할까 하여, 내 낱낱이 설명하여 진리를 깨닫게 하겠다.
가령 보는 것을 예로 들자. 종일토록 보나 그것은 보는 것 없는데서 나오므로 보는 것 역시 無心이다. 듣는 것도 마찬가지로 종일토록 들으나 그것은 듣는 것 없는데서 나오므로 듣는 것 역시 無心이다. 느끼는 것도 종일토록 느끼나 그것은 느낌 없는데서 나오므로 느끼는 것 역시 無心이다. 알아보는 것도 종일토록 무엇을 알아보지만 그것은 앎이 없는데서 나오므로 아는 것 역시 無心이다. 또 종일토록 짓고 만드나 짓는 것이 지음이 없으므로, 지음 역시 無心이다. 그러므로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하는 것이 모두가 無心이라고 하는 것이다."

[3]

問曰 若爲能得知是無心
答曰 汝但仔細推求看 心作何相貌 其心復可得 是心 不是心 爲復在內 爲復在外 爲復在中間 如是三處推求 覓心了不可得 乃至於一切處求覓 亦不可得 當知卽是無心

"어떻게 無心인 줄을 알 수 있습니까?"
"그대가 자세히 추구해보면 된다. 마음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으며, 그 마음이란 것이 과연 얻어질 수 있는 것이던가? 마음인가, 마음이 아닌가?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 아니면 중간에 있는가? 이렇게 세 군데로 따져서 마음을 찾아보나 전혀 얻을 수 없고, 나아가 어디서나 찾아보아도 아무 곳에서도 얻을 수 없으니, 無心인 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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