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

백정도 도를 이룰 수 있다(屠漢亦得成道)

 

5. 백정도 도를 이룰 수 있다(屠漢亦得成道)

問曰 전陀羅 殺生作業 如何得成佛
答曰 只言見性 不言作業 縱使作業 不同迷人 一切業 抱他不得 從無始曠大劫來 只爲不見性 墮在地獄中 所以作業 輪廻生死 悟得本性 終不作業 若不見性 念佛 免報不得 非論殺生 若見性 疑心頓除 殺害生命 亦奈何他不得 自西天二十七祖 只是遞傳心印 吾今來此土 唯傳頓敎卽心是覺 不言持戒精進苦行 乃至入水火登劍輪 一食長坐不臥 盡是外道有爲之法 若識得施爲運動靈覺之性 汝心 卽諸覺心 前覺後覺 只言傳心 更無別法 若識此心 一字不識 亦是佛 若不識自己靈覺之性 假使身破微塵 成佛 終不可得也 佛者 亦名法身 亦名佛心 此心無形相 無因果 無筋骨 猶如虛空 取不得 不同質界 不同外道 此心 除如來一人能會 其餘衆生迷人 不明了

어떠 이가 묻기를,
"전타라는 살생으로 업을 삼거늘 어떻게 부처를 이루리요?"
이렇게 답하였다.
"성품을 보라고만 말했을 뿐 업 짓는 것은 말하지 않았나니, 설사 업을 짓더라도 미혹한 사람과는 달라서 온갖 업이 그를 구속하지 못한다.

끝없는 옛날부터 오직 성품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졌는지라 그 까닭에 업을 지어 생사에 윤회하거니와 근본 성품을 깨달으면 끝내 업을 짓지 않으리라. 만일 성품을 보지 못하면 염불을 하더라도 과보를 면할 수 없다. 살생이 문제가 아니다. 성품을 보아 의혹을 활짝 없애면 생명을 살해하더라도 그를 어쩌지 못하리라.
인도의 27대 조사들도 오직 마음을 전하셨고 내가 이제 이 땅에 온 것도 오직 돈교(頓敎: 당장 성불하는 법을 보인교)의 마음이 곧 부처라는 법을 보였을 뿐이요, 계행 지키기와 정진과 고행과 나아가서는 불이나 물에 드는 법과 칼산에 오르는 것과 한 끼니 먹고 오래 앉아 눕지 않는 법을 말하지 않았나니, 모두가 외도 유위의 법이다.

만일 분별하고 살아가는 모든 것의 신령스러운 성품을 알면 그대의 마음이 곧 부처님들의 마음이다. 모든 부처님이 오직 마음 전하는 법을 말씀하셨고 다시 딴 법이 없다. 만일 이 마음을 알면 한 글자를 몰라도 부처를 이룬다.
그러나 자기의 신령스러운 성품을 알지 못하면 설사 몸이 부서져 먼지같이 되더라도 성불은 끝내 어렵다. 부처란 법신이라고도 하며 마음 깨달음이라고도 하나니, 이 마음은 형상도 없고 인과도 없으며 힘줄도 뼈도 없어서 마치 허공과 같아 잡을 수 없나니 물질의 세계와 같지 않으며 외도와 같지도 않다.
이 마음은 여래 한 사람만이 아시고 그 밖의 중생과 미혹한 사람은 밝게 알지 못하느니라.

此心 不離四大色身中 若離是心 卽無能運動 是身無知 如草木瓦礫 身是無情 因何運動 若自心 乃至語言施爲運動 見聞覺知 皆是動心動用 動是心動 動卽其用 動用外無心 心外無動 動不是心 心不是動 動本無心 心本無動 動不離心 心不離動 無心離離 無心動動 是心用用 是心動動 卽心用用 卽心動動 不動不用 用體本空 空本無動 動用同心 心本無動 故經云 動而無所動 終日去來而未曾去來 終日見而未曾見 終日笑而未曾笑 終日聞而未曾聞 終日知而未曾知 終日喜而未曾喜 終日行而未曾行 終日住而未曾住

"이 마음은 사대(四大)의 이 몸을 여의지 않았다. 만일 이 마음을 여의면 살아 갈 수도 없다.
이 몸은 앎(知)이 없어 초목이나 기와쪽 같은지라 몸은 감정이 없거늘 어떻게 살아가리요?
마음으로부터 말하고 분별하고 활동하고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니 모두가 마음의 움직임이며 작용의 움직임이다. 움직임이란 마음의 움직임이요. 움직임 그대로가 작용이니 움직임과 작용 이외에는 마음이 없고 마음밖에는 움직임이 없기 때문이다. 움직인다면 마음이 아니요, 마음이라면 움직이지 않나니 움직임이란 본래 마음이 없고 마음이란 본래 움직임이 없기 때문이다. 움직임은 마음을 여의지 않았고 마음은 움직임을 여의지 않았으나 마음에는 여윈다는 것도 여의었다는 것도 없으며, 마음에는 움직인다는 것도 움직였다는 것도 없다.

이는 마음의 작용과 작용인 것이며 마음의 움직임과 움직인 것이니, 마음 그대로가 작용한 것이며, 마음 그대로의 움직임일 뿐이다. 마음은 작용의 바탕이 본래 공한지라 움직임도 아니며 작용도 아니다. 공(空)은 본래 움직임이 없기 때문이다. 움직임과 작용이 다같이 마음이나 마음의 근본은 움직임이 없다. 그러므로 경에 말하기를,
'움직이되 움직이는 바가 없다.'하니 종일토록 가고 오되 가고 온 적이 없고, 종일토록 보되 본적이 없고, 종일토록 웃되 웃은 적이 없고, 종일토록 듣되 들은 바가 없고, 종일토록 알되 안바가 없고, 종일토록 기뻐하되 기뻐한 적이 없고, 종일토록 다니되 다닌 적이 없고, 종일토록 멈추었으되 멈춘 적이 없느니라.

故經云 言語道斷 心行處滅 見聞覺知 本自圓寂 乃至瞋喜痛痒 何異本人 轉轉推尋 痛痒不可得 故經云 惡業 卽得苦報 善業 卽得善報 不但瞋墮地獄 喜卽生天 若知瞋喜性空 但不執着 卽脫業力 若不見性 講得經論 決無依憑 說亦無盡 약標邪正如是 一一不及也
頌曰
心心心 難可尋 寬時 遍法界 窄也不容鍼 我本求心不求佛 了知三界空無物 若欲求佛但求心 只這心心 心是佛 我本求心 心自持 求心不得待心知 佛性 不從心外得 心生便是罪生時
偈曰
吾本來此士 傳法救迷情 一花開五葉 結果自然成

"그러므로 경에 말하기를 '말로써 표현할 길이 끊어졌고 마음으로 따질 자리가 없어졌다'하니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 본래가 원적(圓寂)한지라 성나고 기쁘고 가렵고 아픔이 어찌 본래의 사람과 다르리요? 아무리 찾아도 아픔과 가려움을 찾을 수 없다.

경에 말하기를 '나쁜 업은 곧 괴로운 과보를 받고 착한 업은 곧 좋은 과보를 받는다'하시니 성내면 지옥에 빠지고 기뻐하면 하늘에 태어날 뿐 아니라 성냄과 기뻐함의 성품이 공(空)한 줄 알아서 집착하지 않으면 곧 업력(業力)을 벗어난다. 만일 성품을 보지 못하면 아무리 경을 강설하더라도 결코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 설명하자면 끝이 없기에 간략히 옳고 그름을 이와 같이 표방하였으나 하나도 본뜻에 미치지 못하노라.

게송으로 말하리라.

마음, 마음 마음이라 하지만 찾을 길 없어라,
퍼지면 법계에 두루하고, 움츠리면 바늘 끝도 용납치 못한다.

나는 본래 마음을 찾을 뿐 부처를 구한 적 없나니
삼계(三界)의 모든 것 공(空)하여 아무 것도 없음을 분명히 하노라

부처를 구하려거든 마음만을 구할지니,
이 마음 저 마음 하는 것 그대로가, 부처로다.
내 본래 마음을 구하지만 마음은 스스로 가지고 있나니,
마음을 구하려면 마음이 알아지기를 기다려라.

부처의 성품이란 마음 밖에서 얻는 것 아니니,
마음이 치우칠 때가 곧 죄가 생기는 때이니라.

전법게(傳法偈)

내가 이 땅에 온 것은 법을 전해 중생을 건지려 함이니,
한 송이 꽃에 다섯 잎되어 벌어지니 열매가 저절로 맺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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