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

 

序  說
 

辛巳年(2001) 初 牛谷禪院에서 약 8개월에 걸쳐 본 돈오문(頓悟文)을 해제하였으며 그 과정에 원문과 우리말의 오낙(誤落)을 바로잡았다.

돈오입도요문론은 마조 도일(馬祖 道一)스님의 법제자인 대주 혜해(大株 慧海)스님이 직접 기록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혜해스님의 전기는 명확하게 기록된 것이 없고 다만[조당집(祖堂集)] 권14,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6 등에 단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를 종합해 보면 마조스님을 6년간 모시고 살았다는 사실이 그의 생존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다.

혜해스님은 복건성(福建省)사람으로 성은 주[朱]씨이며 절강성(浙江省)의 대운사 도지(道智)스님 앞으로 출가하였다. 그후 강서(江西)의 마조 도일스님을 찾아가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월주 대운사에서 왔습니다"
"여기 와서 무엇을 구하려고 하는가"
"불법(佛法)을 구하러 왔습니다."
"자기 집의 보배창고는 돌아보지 않고 집을 떠나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무엇을 구하려 하는가, 나에게는 한 물건도 없는데 어떤 불법을 구하려 하는가?"
그러자 혜해스님이 절을 하고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혜해 자신의 보배창고 입니까"
"지금 나에게 묻고 있는 것이 너의 보배창고이다. 일체가 구족하여 조금도 모자람이 없고 사용이 자재한데 어찌하여 밖에서 구하려 하는가"
이 말 끝에 혜해스님은 크게 깨쳐서 자신의 본래 마음을 알았다. 대주 혜해스님은 뛸 듯이 기뻐서 절을 올리고 그 자리에서 6년 동안 마조스님을 시봉하였다.

6년 동안 마조스님을 시봉하던 중 그의 은사인 도지스님이 연로하여 대운사로 다시 돌아와서 은사를 봉양하였다. 그후 산문에서 종적을 감추고 이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을 저술하였다. 이 책을 조카 상좌인 현안이 몰래 마조스님에게 보이니 "월주(越州)에 큰 구슬이 있으니 둥글고 밝은 광명이 비추어 자유자재로와 걸림이 없구나"라고 감탄하였다.

마조스님의 법통은 백장(百丈)스님에게로 내려갔다고 하는 것이 선가의 정설로 되어 있다. 그러나 마조스님 비문과 1700여명의 화상 법문이 실려 있는 경덕전등록, 조당집에서는 대주스님의 법문이 가장 많이 실려있고 제 28권에도 대주스님의 긴 법어가 따로 실려 있는 점으로 봐서 마조스님 수제자(首第子)는 대주 혜해스님 임을 알 수 있다. 당시는 백장(百丈), 남전(南泉), 법상(法常) 등이 천하에 선풍을 날리던 시대였다.

선가(禪家)의 역사적 사실로 미루어 돈오입도요문론은 대주스님의 육필 저술이고 또, 선가의 대조사인 마조스님이 극찬한 책이므로 이 책을 통하여 선종(禪宗)의 정통사상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註, 牛谷禪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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