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馬祖 行錄 

 

1.행록(行錄)

마조(馬祖) 도일(道一: 709∼788)스님은 한주(漢洲) 시방현 출신으로 성은 마(馬)씨이며 그 마을에 있는 나한사(羅漢寺)로 출가하였다. 용모가 기이하며 소걸음으로 걸었고 호랑이 눈빛을 가졌었다. 당(唐) 개원(開院: 713∼742) 연중의 전법원(傳法院)에서 선정을 닦던 중 회양(677∼744)스님이 마조스님의 근기를 알아보고는 물었다.

스님은 좌선(坐禪)하여 무얼 하려오
"부처가 되고자 합니다."
그때 회양스님은 암자 앞에서 벽돌 하나를 집어다 갈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조스님께서 벽돌을 갈아서 무엇을 하시렵니까하고 물었다.
"거울을 만들려 하네."
벽돌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을 만들겠습니까?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지 못한다면 좌선을 한들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수레가 가지 않으면 수레를 쳐야 하는가 소를 쳐야 하는가?"
마조스님이 대꾸가 없자 회양스님은 다시 말씀하였다.

"그대는 앉아서 참선하는 것[坐禪]을 배우느냐, 앉은 부처를 배우느냐. 좌선을 배운다고 하면 선(禪)은 앉거나 눕는데 있지 않으며, 앉은 부처[坐佛]를 배운다고 하면 부처는 어떤 모습도 아니다. 머뭄 없는 법에서는 응당 취하거나 버리지 않아야만 한다. 그대가 앉은 부처를 구한다면 부처를 죽이는 것이며, 앉은 모습에 집착한다면 그 이치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을 듣자 스님은 마치 제호를 마신 듯하여 절하며 다시 물었다.
어떻게 마음을 써야만 모습 없는 삼매[無相三昧]에 부합하겠습니까?
"그대가 심지법문(心地法門)을 배움은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고 내가 법요(法要)를 설함은 저 하늘이 비를 내려 적셔주는 것과도 같다. 그대의 인연이 맞았기 때문에 마침 도를 보게 된 것이다."
도(道)가 모습[色相]이 아니라면 어떻게 볼 수 있겠습니까?
"심지법안(心地法眼)으로 도를 볼 수 있으니 모습 없는 삼매도 그러하다."
거기에 생성과 파괴가 있습니까?
"생성이나 파괴, 모임과 흩어짐으로 도를 보는 자는 도를 보는 것이 아니다. 나의 게송을 듣거라"

심지(心地)는 모든 종자를 머금어 촉촉한 비를 만나면 어김없이 싹튼다
삼매의 꽃은 모습 없는데 무엇이 파괴되고 또 무엇이 이루어지랴
心地含諸種 遇澤悉皆萌
三昧華無相 何壞復何成

마조스님은 이 덕분에 깨우치게 되어 마음이 초연하게 되었으며 10년을 회양스님을 시봉하면서 그 경지가 날로 더하였다. 이에 앞서 육조(六祖: 638∼713)스님이 회양스님에게 말씀하시기를 "인도 반야다라(般若多羅)가 예언하기를 그대의 발아래서 망아지 한 마리가 나와 세상사람을 밟아 버리리라 하셨다"했는데 스님을 두고 한 말씀이었을 것이다. 회양스님의 여섯 제자 중에서 마조스님 만이 심인(心印)을 전수 받았다.

마조스님은 처음 건양의 불적령(佛跡嶺)에서 임천으로 옮겨갔고, 다음으로 남강 공공산에 이르렀으며, 대력(大曆: 766∼779) 연중에 종릉[洪州에 있음]이 있는 개원사(開元寺)에 이름을 걸었다. 그때 대장군[連師] 노사공(路嗣恭)이 가풍을 듣고 경모하여 종지를 직접 전수 받았고 이로부터 사방 납자들이 운집하였다.

회양스님은 마조스님이 강서에서 널리 교화를 펼친다는 소문을 듣고 대중에게 물었다.
"도일(道一)이 대중을 위해 설법을 하느냐?"
이미 대중을 위해 설법합니다.
그러자 회양스님은 도대체 소식을 전해오는 사람이 없구나. 그리고는 한 사람을 그곳으로 보내며, "그가 상당하였을 때 '어떻습니까'하고 묻고 도일스님이 무슨 말을 하거든 기억해 오너라"고 하셨다. 그 스님이 분부대로 가서 물었더니 마조스님은 "난리통 30년에 소금과 장은 줄여 본 적 없다."
그 스님이 돌아와 회양스님에게 말씀드렸더니 회양스님은 "그렇군"하였다.

마조스님의 입실제자(入室弟子) 139명은 각자 한 곳의 선지식이 되어 널리 법을 펼쳤다. 스님은 정원(貞元 4년, 788) 정월 중에 건창 석문산에 올라 숲속을 거닐다가 평탄한 골짜기를 보더니 시자에게 이르기를, 썩어질 내 몸이 다음달에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리라. 이후 돌아와 병세를 보이므로 원주가 문안을 드렸다.
스님께선 요즈음 건강이 어떠하신지요.
"일면불 월면불(日面佛月面佛)이니라." 그해 2월 1일 목욕하고 가부좌한 채 입멸하셨다. 원화(元和: 806∼820) 연중에 대적선사(大寂禪師)라 시호하고 탑을 크게 장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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