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임제록
示衆 [Ⅴ]
11. 3구(三句)
무엇이 참부처이며 참법이며 참도인지 가르쳐 주십시오.
"부처란 마음이 청정한 것이고, 법이란 마음이 밝은 것이며, 도란 어디에나
걸림없는 깨끗한 빛이다. 이 셋은 하나로서 모두가 빈 이름일 뿐 사실 있는 것이
아니다. 도를 올바르게 닦는 사람이라면 생각생각 마음에 틈새가 없다. 달마스님께서도
인도에서 오신 뒤 오직 남에게 속지 않은 사람을 찾았을 뿐이다. 뒤에 이조 혜가스님을
만났는데 혜가스님은 한마디 말끝에 딱 깨닫고 이제껏 해왔던 공부가 헛된 것이었음을
비로소 알았던 것이다.
지금의 내 경계는 조사나 부처와 다르지 않다. 만약 첫째 구절에서 깨달으면 조사와
부처의 스승이 되고, 둘째 구절에서 깨달으면 인간과 천상계에 스승이 되며, 셋째
구절에서 깨달으면 자기조차도 구제하지 못한 것이다."
12. 조사서래의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만약 뜻이 있다면 자기조차도 구제하지 못한다."
뜻이 없다 하신다면 이조께서 어떻게 법을 얻었습니까?
"얻은 것이 얻지 않은 것이다."
얻지 않은 것이라 한다면, 얻지 않는다 하는 그 뜻이 무엇입니까?
"그대들이 어디에서나 치달려 구하는 마음을 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애닯다 장부여! 머리를 가지고 머리를 찾는구나'하였다.
그대들이 말끝에서 스스로 회광반조(回光返照)하여 더 이상 다른 데서 찾지 않고
이 몸과 마음이 조사나 부처와 다르지 않음을 알아서 당장에 아무 일 없게 되면 바야흐로
법을 얻었다고 한다. 나는 오늘 부득이한 형편으로 이처럼 너저분한 잔소리를 뇌까리지만
너희는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보기에는 이처럼 많은 도리는 사실 없는 것이다.
쓰고자 하면 곧 쓰지 않아 쉬는 것만 못하느니라.
제방에서는 6도 만행을 불법이라고 말들 하지만 나는 이것을
장엄하고 불사를 짓는 일일뿐 불법은 아니라고 말한다. 나아가 재계(齋戒)를 잘 지키며
가득 찬 기름 그릇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갈 정도가 된다*해도 도를 보는 안목이
밝지 못하면 모두가 빚을 지지 않을 수 없으니 밥값을 치를 날이 있을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도에 들어와 이치를 통하지 못하면 몸을 바꾸어 신도의 시주를 갚아야 하니,
장자가 81살이 되자 그의 나무에 버섯이 나지 않았다고 하였다.*
* 엄격하게 수행할
것을 비유함.「대반열반경」고귀덕왕품(高貴德王品)에 나오는 이야기.
* 중인도 한 장자집의 나무에 버섯이 났는데, 그 버섯은 그의 시주를 받았던 스님이
몸을 바꿔 빚 갚은 것이었다.
나아가 외로운 산봉우리에서 홀로 살며, 아침[卯時] 한때만 공양을 하고, 오래 눕지 않고 앉아서만 정진하며, 하루 여섯 때로 도를 닦는다 하여도 모두가 업 짓는 사람들이다. 또, 머리·눈·골수·뇌와 나라·성곽·아내·자식과 코끼리·말·일곱 가지 값진 보배들을 모조리 다 희사한다 해도 이런 견해는 모두가 몸과 마음을 괴롭히기 때문에 괴로운 과보를 다시 부르니 아무 일 없느니만 못하다. 나아가 10지만심(十地滿心) 보살이 이 도인들의 자취를 찾는다 하여도 마침내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하늘신이 기뻐하고 지신(地神)이 그의 발을 받들며 시방 부처님들도 모두 칭찬하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지금 법문을 듣는 이 도인이 작용하는 곳에는 아무자취도 없기 때문이다."
13. 대통지승불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이 10겁 동안 도량에 앉아 있었으나
불법이 나타나지 않아서 불도를 이루지 못하였다고 하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스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대통(大通)이란 자기 자신이 어디서나 만법이 그 성품과 모양이 없음을 통달하는
것을 말한다. 지승(智勝)이라 하는 것은 어디서나 아무법도 얻을 것이 없음을 의심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불(佛)이라 하는 것은 청정하고 밝은 마음이 시방법계를 사무쳐
비추는 것을 이름한다. 10겁 동안 도량에 앉았다고 하는 것은 10바라밀을 닦은 것이다.
불법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부처는 본래 나지 않고 법은 본래 없어지지
않는 것인데 거기서 무엇이 나타나겠는가. 불도를 이루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부처가
다시 부처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옛사람이 이르기를 '부처님은 항상 세간에
계시면서도 세간법에 물들지 않는다'고 하였다.
납자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갖가지 법이 나고 마음이 없어지면 갖가지 법이 없어지니 한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이건 출세간이건 부처도 없고 법도 없어서 나타난 적도
없고 없어진 적도 없다. 설혹 있다 하더라도 모두가 명칭과 말 개념과 문장일 뿐이니,
어린아이를 달래고 병에 따라 약을 쓰는 것과 같다. 명칭과 개념으로 표현되기는
하나 그 명칭과 개념은 그 자체가 명칭과 개념이 아니고 도리어 그대들 눈앞에 소소영령하게
비추어 느끼고 듣고 알며 반조해 보는 그것이 모든 것에 명칭과 개념을 붙이는 것이다.
대덕들이여! 무간지옥에 떨어질 다섯 가지 업을 지어야 바야흐로 해탈하게 된다.(정명경
제자품에 이르기를, "오역죄의 모양으로서 해탈을 얻는다."고 하였다)
14. 5무간지옥업
무엇이 무간지옥에 떨어질 다섯 가지 업(業)입니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해치며,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내고 화합승단(和合增團)을
깨뜨리며, 경전과 불상을 불사르는 것 등이 무간지옥에 떨어질 다섯 가지 업이다."
무엇이 아버지입니까?
"무명(無明)이 아버지이니, 그대들 한 생각 마음이 꺼졌다 일어났다 하는 곳을
찾을 수 없어 마치 허공에 메아리 울리듯 하고 어디를 가나 아무 일 없는 것을 아버지를
죽인다고 한다."
무엇이 어머니입니까?
"탐내고 사랑함이 어머니이니, 그대들 한 생각 마음이 욕계에 들어가 그 탐내고
사랑함을 찾아보아도 오직 모든 법이 빈 모양임을 볼뿐이어서 어디에나 집착하지
않음을 어머니를 해친다고 한다."
무엇이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내는 것입니까?
"그대들이 청정한 법계에서 한 생각 마음에 알음알이를 내지 않아 어디나 칠흑처럼
캄캄한 것을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내는 것이라 한다."
무엇이 화합승단을 깨뜨리는 것입니까?
"그대들의 한 생각 마음이 번뇌에 매였음을 정확히 알아 허공처럼 의지할 데
없음을 화합승단을 깨뜨리는 것이라 한다."
무엇이 경전과 불상을 불사르는 것입니까?
"인연이 비고 마음과 법이 비었음을 보아서 결정코 한 생각[一念]이 되어 초연히
아무 일 없으면 그것을 경전과 불상을 불사르는 것이라 한다."
납자들이여! 만약 이렇게 알 수 있다면 저 범이니 성이니 하는 이름에 구애되지 않는다.
그대들 한 생각 마음이 빈주먹 손가락에다가 무엇인가 있다는 생각을 내어 6근, 6진의 법에서 공연히 괴이한 짓만을 하며 스스로를 대단치 않게 여기고 퇴굴심을 내어 '나는 범부요 저 분은 성인이다'라고 한다. 이 머리 깎은 바보들아, 무엇이 그리 다급하여 사자 가죽을 쓰고 여우 울음소리를 내느냐. 대장부 사나이가 장부의 기개를 펴지 못하고 자기 집안의 보물은 믿으려 하지 않으면서 바깥으로만 찾아 저 옛사람들이 만든 부질없는 명칭과 개념을 이리저리 점(占)치면서 확연히 통달하지를 못한다. 그러므로 경계를 만나는대로 반연하고 6진에 부딪치는 대로 집착하여 닿는 곳마다 미혹이 일어나 스스로 안정하지를 못한다.
납자들이여! 내 말을 곧이듣지 말라. 왜냐하면 내 말은
아무 근거가 없어서 그때그때 임시로 허공에다 그림을 그리는 격이며 생긴 모습대로
채색한다고 한 비유와 같은 것이다.
부처를 완전한 경지[究竟]라고 여기지 말라. 나에게는 그것이 마치 뒷간의 변기와
같다. 또한 보살과 나한은 모두가 목에 씌우는 칼과 족쇄같이 사람을 결박하는 물건들이다.
그러므로 운수는 긴칼을 비껴 들고 고오타마 붓다를 죽이려 하였고, 앙굴리마라는
단도를 가지고 세존을 해치려한 것이다.
납자들이여! 얻을 부처란 없는 것이다. 나아가 3승(三乘), 5성(五性)과 원돈교(圓頓敎)의
자취는 모두 그때그때 병에 따라 약을 주는 것이지 실제로 무엇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설혹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가까운 개념들로 설명하기 위해 설정한 문자로
안배(按排)하여 그렇게 쓰는 것이다.
어떤 중들은 여기에다 힘을 쏟아 출세간법을 구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이다. 누군가 부처를 구한다면 그 사람은 부처를 잃고, 도를 구한다면
도를 잃으며, 조사를 구한다면 조사를 잃는다.
대덕들이여! 착각하지 말라. 나는 그대들이 경론을 이해했느냐를 보는 것도 아니고
그대들이 국왕·대신인 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그대들의 폭포수처럼 유창한
말솜씨를 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대들의 총명함과 지혜로움을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그대들의 진정한 안목만을 바랄 뿐이다. 백부(部) 경·론을 이해한다
하여도 한낱 일없는 스님네만 못한 것이다. 그대들이 그것을 이해하면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여 아수라 같은 승부심과 인아상(人我相)의 무명이 지옥 갈 업을 기를 것이다.
마치 선성(善星) 비구가 12분교(十二分敎)를 알면서도 산채로 지옥에 떨어져 대지(大地)도
용납치 않은 것과 같으니, 일 없이 쉬느니만 못하다. 배고프면 밥 먹고 잠 오면 자면
되니 어리석은 사람은 나를 보고 웃겠지만 지혜로운 이라면 알 것이다.
납자들아! 문자에서 찾지 말라. 마음을 움직이면 피로하고 찬 기운을 들이마시면 좋을 것이 없으니, 한 생각에 연기무생(緣起無生)을 깨달아 3승의 방편 보살들을 뛰어넘느니만 못하다. 그럭저럭 날만 보내지 말라. 내가 지난날 견처(見處)가 없었을 때는 도무지 캄캄하여 허송세월을 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속은 타고 마음은 황망하여 분주히 도를 찾아다니다가 뒤에 힘을 얻고 나서야 오늘에 도 닦는 여러분과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이다. 도 닦는 여러분들에게 권하니 옷과 밥을 생각지 말라. 세상은 쉬이 지나가고 선지식은 3천년에 한번 피는 우담바라 꽃같이 만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아라.
그대들 제방에서는 임제 늙은이가 있다는 말을 듣고 나타나서
말문이 막히게 하려고 어려운 질문을 한다. 그러다가 나에게서 나의 완전한 활용을
직접 당하고서는 눈만 둥그렇게 뜨고 입도 뻥긋 못하며 멍청하여 어떻게 대답할지를
모른다. 그러면 나는 '큰 코끼리가 밟는 곳은 나귀따위가 갈 곳이 아니다'라고 말해준다.
그대들 제방에서는 어깨를 으쓱대고 가슴팍을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나는 선을 알고
도를 안다'고 하지만 두 사람이건 세 사람이건 여기에 이르러서는 어쩌지 못한다.
애닯도다! 그대들은 이러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가는 곳마다 입술을 나불대면서 여염집
선남선녀들을 속이고 있으니 쇠몽둥이를 얻어맞을 날이 있을 것이다. 이들은 출가한
사람이 아니며 모조리 아수라 세계에 빠지게 된다.
지극한 이치는 논쟁으로 그 도를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큰소리로 싸워서 외도를 꺾는
것도 아니다. 불조(佛祖)가 면면이 이어오는 것에도 무슨 별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설혹 부처님 말씀의 가르침이 있다 하더라도 3승(三乘), 5성(五性)과 인천(人天)의
인과 등 교화 방편에 떨어진다. 그러나 원돈교에서는 그렇지 않으니 선재동자가 53
선지식을 다 구하여 찾아다닌 것이 아니다.
대덕들이여! 마음을 잘못 쓰지 말라. 마치 큰 바다가 죽은
시체를 그냥 두지 않듯 그렇게 한짐 잔뜩 짊어지고 천하를 돌아다니며 스스로 견해의
장애를 일으켜 마음을 막는구나.
해 뜨고 구름 한 점 없으니 맑은 하늘에 온통 햇빛이 비치고 눈 속에 티가 없으니
허공에 헛꽃이 없다.
납자들이여! 그대들이 법답게 되기를 바란다면 다만 의심을
내지 말아라. 펼치면 온 법계를 싸고도 남으며 거두면 터럭만큼도 있지 못하니 뚜렷하고
호젓이 밝아 한번도 모자란 적이 없었다. 눈으로도 볼 수 없고 귀로도 듣지 못하니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겠느냐? 옛사람이 이르기를 '한 물건이라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라고
하였으니 그대들은 다만 스스로를 잘 보아라. 더 무엇이 있느냐? 설명한다 해도 끝이
없으니 각자가 힘써 노력하라.
그럼 편히 쉬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