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坐禪의 精髓 

 

1. 坐禪의 精髓

경전(상응부-33)에 의하면 말(馬)에는 우수한 말, 좋은 말, 빈약한 말, 나쁜 말 등 네 종류의 말이 있다고 합니다.

가장 우수한 말은 騎手의 뜻대로 채찍의 그림자를 보기도 전에, 천천히 빨리, 또는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달립니다. 그 다음의 우수한 말은 채찍이 그의 피부에 닿기 바로 직전에 가서야 가장 우수한 말처럼 달립니다. 세번째의 말은 그의 몸에 고통을 느낄 때 비로소 달립니다. 네번째의 말은 고통이 골수에 사무치고 나서야 비로소 달립니다.

이 이야기를 들을 때, 수행자들 대부분은 가장 좋은 말이 되고자 할 것입니다. 만일, 가장 좋은 말이 되기가 불가능하다면 그 다음의 우수한 말이 되고자 합니다. 좌선을 하고 앉아 있을 때, 수행자는 자기가 가장 우수한 말인지, 가장 열등한 말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坐禪 修行에 대한 오해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坐禪 修行의 목적이 가장 우수한 말이 되도록 자기 자신을 훈련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수행자는 계속적으로 큰 문제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훌륭한 아버지는 훌륭한 아버지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훌륭한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훌륭한 아버지가 아닙니다. 자신이 훌륭한 남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훌륭한 남편이 아닙니다. 그가 언제나 오로지 한마음[一片丹心]으로 훌륭한 남편이 되기 위해서 노력한다면, 가장 나쁜 남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남편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좌선을 잘한다” 또는 “나는 좌선을 못한다” 라고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좌선은 결코 자랑이나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방법으로 좌선 수행을 하고 있다면 자기가 가장 우수한 말인지 아니면 가장 열등한 말인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언제나 좌선과 좌선하는 마음으로 살아 가고 있느냐 없느냐 하는 곳에 담겨져 있습니다.

자기 아이들이 불치의 병으로 고통 당하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잠을 잘 수도 없습니다. 가장 편안한 장소인 안방에 누워 있어도 정신적인 고뇌로 인하여 휴식을 취할 수 없습니다. 오르락내리락 들락날락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실제로 수행자의 정신적 고통을 덜어주는 최상의 방법은 혼돈된 마음상태와 나쁜 자세로라도 우선 坐禪의 자세로 앉는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어려운 상황에서 앉아 있어 본 체험이 없다면 그 사람은 참선 수행자라고 얘기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어떤 행위도 자기의 고통을 가라앉히지 못할 때, 고되고 오랜 훈련을 통해 얻은 좌선 자세에서, 자기의 몸과 마음은, 좋든지 싫든지 간에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위대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자신의 문제의 한 가운데 앉아 있을 때에 무엇이 자기 자신에게 ? 자기 자신의 문제에 대하여? 보다 眞實한 것입니까?

자기 자신이 여기, 바로 지금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절대적 사실을 그대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행자가 좌선 수행을 통해서 깨우쳐야 할 부분이며 禪의 精髓입니다.

2. 아무 것도 없습니다

좌선을 하는 목적은 단지 이러한 수행을 영원히 지속하는 것뿐입니다. 이 수행은 시작이 있기 이전부터 끝이 없는 미래까지[無始無終] 계속될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 인간에게는 이 수행말고는 다른 수행은 없습니다. 이러한 방식의 인생이 아니고는 다른 방식의 인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禪 수행은 자기 자신이 알든 모르든 우리들 참된 성품의 직접적 표현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들이 하는 것은 무엇이나 우리의 참된 성품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수행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것을 결코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살아있는 한 우리는 언제나 무엇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행자가 ‘나는 이것을 하고 있다’라거나, ‘나는 이것을 해야만 한다’라거나 ‘나는 무엇인가 특별한 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 실제로는 그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이상 무엇인가를 원하지 않을 때, 또는 무엇인가 특별한 일을 하고자 하지 않을 때 정녕 우리는 무엇인가를 하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아무 생각없이[無念] 할 때 정녕 무엇인가를 하는 것입니다. 좌선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그 무엇인가를 위해서가 결코 아닙니다. 어떤 특별한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수행자의 내면적 욕구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자가 무엇인가를 위해서 좌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 그것은 올바른 수행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단순한 수행을 매일 매일 계속한다면 수행자는 분명히 훌륭한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얻기 전에는 그것은 매우 훌륭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얻고 난 뒤에는 그것은 아무런 특별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수행자 자신일 뿐이고 특별한 그 무엇이 아닙니다.

아기를 갖지 못한 어머니에게는 아기는 매우 특별한 것이며 일종의 神秘입니다. 그러나 아기를 가진 어머니에게는 아기를 갖는 것은 어떤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이것이 禪입니다. 그래서 이 수행을 계속 한다면 점점 더 수행자는 아무 것도 특별하지 않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엇인가를 얻게 될 것입니다. ‘우주적 본성’ ‘불성’ ‘본래면목’ 또는 ‘깨달음’과 같은……하지만 그 이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또 그것은 분명 그 무엇입니다.

3. 오늘의 Key Word

연속되는 유쾌한 상황과 불쾌한 상황들 속에서의 지속적인 좌선 수행을 통해 수행자는 禪의 精髓를 깨닫게 될 것이고, 그 진정한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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