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禪수행과 경계

 

참선수행의 본질은 깨달음으로 인생을 가장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기술한 제 경계는 전대미문의 체험에 입각하여 최상의 해탈법을 시현하는 우곡선원 참선수행 경책을 정리한 것입니다. 참선수행과 경계를 적시하는 것은 대다수 정신수행자들이 형상과 습인의 화현을 깨달음으로 인식하는 잘못을 바로잡는데 그 뜻이 있습니다.

1. 參禪과 21세기

21세기의 참선은 종교를 초월한 정신세계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禪이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진정한 삶은 지식과 부, 명예와 권력이 아니라는 사실을 올바로 인식한 현실귀의 현상입니다. 禪은 교법과 함께 불교수행방편입니다. 여래, 조사의 골수라 일컬어질 선법(禪法)은 일정한 틀이 없으나 禪의 본성은 자유와 영생으로 인도하는 지침서이자 제3의 종교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禪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고조되는 반면에 잘못된 호흡법과 가치관, 마음가짐 등, 선수행의 오류는 참선의 본질을 흐리게 합니다. 참선수행은 문자에 의존한 교리적 관행을 뛰어넘은 이심전심이기에 근기에 따라 뜻을 달리 헤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생에 사람으로 태어날 보장을 받을 곳이 없는 것이 우리 인생임을 자각한다면 터무니없는 마음공부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성인의 길

고요는 중도(中道)의 초석입니다. 중생은 망상분별로 흔들리는 의식의 소유자이자 곧 범부입니다. 성인은 흔들리지 않는 마음가짐을 갖춘 자이며 유유자적한 운명을 일구어낸 용기 있는 개척자입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무위법계인 실상계에서 건너온 전역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생은 시비분별로 고요에 이르지 못하며, 그 원인은 전생에 내려놓지 못한 탐심과 집착 때문입니다. 고요는 망상분별의 원수이기에 고요를 방해하는 반연들은 성인의 길을 방해합니다. 좌선 중일 때는 환상으로, 일상에서는 행복을 저해하는 악운으로 다가서는 것이 반연입니다. 석가부처님도 오랜 고행 후 정각을 이루는 과정에서는 갖가지 저항과 유혹이 난무하는 반연의 숲을 헤쳐 나간 이력이 있습니다. 성인의 길에는 숙세 간에 지은 반연들이 별스런 모습으로 들고 일어나 정도(正道) 앞에서 죽어 나자빠져야 합니다.

3. 참선수행의 길

참선수행은 해탈의 삶을 구축하기 위함입니다. 수행을 지어 가는 방법에 있어서 간경, 염불, 기도, 주력 등에 집중하는 것도 한 방편이기는 합니다. 그것 중에 좌선으로 자아를 참구한다는 것은 다사다난한 운명으로부터 여여해 지기 위한 실천수행의 첩경입니다. 특정한 대상에 의존하지 않고 호흡으로 육신을 통제한 고요로서 육식(六識)을 정화하는 좌선수행은 제 경계현상들이 간단없이 드러나 보입니다. 제 현상들이 발동하는 양태는 근기에 따라 차등이 있습니다. 수증(修增)으로 차츰 반연을 끊어내는 점수도 있으며 일거에 경계를 무너트리는 대폭발 즉, 돈오돈수도 있습니다. 또, 일생을 다 바쳐 불교수행에 몰두하여도 여여(如如)한 입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4. 체험의 실상

1) 좌선과 육신의 포획
禪수행은 일상에서 흔들리지 않는 맑고 고요한 마음이 되고자 함입니다. 해탈지혜는 고요가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좌선과 호흡은 육신의 포획을 통하여 날뛰는 마음을 길들이고 평정을 되찾고자 하는 기능적인 수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좌선과 호흡은 차츰 닦아 나아가는 수행방법으로는 가장 무난합니다. 생명력의 원초인 호흡을 통하여 정신과 육신을 통제하는 좌선수행은 정법인연과 부단한 노력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대폭발로 인하여 일시에 운명이 바뀌는 대각과 그 이후에 닥치는 단절의 고통보다는 차츰 지어감이 대가없이 무심지혜를 증득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편이 참선수행법입니다. 대폭발의 경우는 목숨이 경각에 걸린 무의식 상태에서 유, 무위법계를 섭렵하는 참담한 현장을 거쳐야 합니다. 이런 현상은 배우고 익혀 꾸준히 고요를 추구함으로 말미암아 드러나 보일 수 있는 갖가지 훈습(薰習)들이 일시에 한 무대에 뛰어올라 시연하는 업연(業緣)의 결전장입니다.

2) 습인의 창궐
좌선 또는 육신을 통하여 고요한 마음을 가리려 할 때 드러나는 제 형상은 숙세에 축적된 훈습(薰習)의 인자들입니다. 고요와 더불어 주변 타력에너지가 난동하고 갖가지 환상들은 과거 현재 생에 본인이 지은 업식종자로서 제 형상들은 참담한 고통을 유발합니다. 공포를 유발시키는 습인은 다양한 형태로서 언뜻 스치기도 하며 반복하여 지속적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하근기일 때 나타나는 현상들은 대체로 무슨 부처, 보살 또는 평소에 추종하거나 구하는 익숙한 모습들입니다. 흔히 영적체험을 깨달음으로 인식하는 하열한 근기들에게는 습인의 환시에 불과한 여러 모습들을 절대자나 경배의 대상을 친견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조복합니다.

무념무상으로 가는 참선공부 길에는 온갖 형상과 난관들이 중첩하지만 그것이 환이든 삶의 장애이든 대상이 있을 때는 경미한 경계입니다. 참다운 선지식인연이 닿아 있지 않는 경우는 대부분 이 단계에서 자신의 의식을 사로잡는 대상과 타협하거나 종속관계를 유지하여 안정을 도모하려 합니다. 색신이나 음성을 견성으로 믿거나 수기를 받은 것으로 착각하여 자신의 깨달음으로 장엄합니다. 특히 단식이나 기도 중에 색신이나 음성, 환상 또는 어둠의 터널에서 벗어나는 등의 경험을 해탈경계로 말하는 것은 환상을 주빈으로 맞아들이는 의례에 불과합니다. 석가세존께서도 오랫동안 고행 중일 때는 난관으로 인하여 깨달음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육신과 정신을 가다듬은 보편적인 생활로 돌아온 후 비로소 분별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3) 홀로그램 현상
육신과 정신을 가라앉혀 통제하는 초기단계에서 고요가 깊어지면 드러나는 현상들은 홀로그램처럼 더욱 입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다가와 험악한 모습으로 위협을 하여 정(靜)을 깨트리려 하는가 하면 때로는 특별한 극락정토가 있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의 아늑한 환경을 펼쳐 보입니다.

홀로그램현상 중에는 지금 이 순간을 인정하면 중생계에서는 가장 안락한 미래가 보장되는 황홀한 운명의 예시(例示)까지 합니다. 선과 악, 유·무의 경계에서 피조시킨 관념들은 수행이 깊어갈수록 더욱 입체적이고 사실적인 모습으로 다가와 고요를 파괴하려 합니다. 이때의 제 경계는 몸서리 쳐질 정도로 사실적입니다. 그러나 소가 닭 쳐다보듯이 하여 제 현상에 끄달림을 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제 현상에 작은 관심이라도 보이면 상으로 비추인 극락이라는 상대세계에 주착하는 또다른 중생으로 떨어집니다. 이런 수준의 경계를 경험하면 신흥 사이비종교 교주감은 될 것입니다.

상대세계를 탐착하지 않는 선수행자일수록 심신(心身)변화가 극명합니다. 첫째, 육근이 기민하게 반응합니다. 둘째, 시공간에 따라 머리끝이 하늘에 매달린 느낌과 밝은 빛이 머리를 가득 채워 신체의 일부가 인식되지 않는 것은 물론 셋째, 잠재능력 향상으로 기감이 예민하고 예지능력도 탁월해 집니다. 이러한 변화는 축기(蓄氣)로서 육식(六識) 경로가 원활해지기 위한 에너지 집중화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나타나면 확인하고 동시에 놓아버려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제 형상이나 힘을 붙잡거나 받아들이면 그 경계에 묶이는 것은 물론 상기병을 유발시킵니다. 상기병은 하늘에 매달려 세상을 거꾸로 내려다보는 의식의 소유자가 됩니다. 이런 부류들은 자기만의 특별한 아방궁을 설정한 상 높은 도인행세로 혹세무민을 시도합니다. 이러한 경계에 머물면 이생을 다할 때 까지 자정능력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심신의 부조화로 인한 혹독한 고통을 면치 못합니다.

4) 도(道)가 석자면 마(魔)가 석자
이 말뜻은 홀로 앉은 모습인 좌선으로 고요를 익히는 수행의 초기 단계를 벗어나 실생활에서 부닥쳐오는 삶의 현장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좌선 또는 일상에서 드러나는 외부경계는 무엇이든 자신이 지은 반연임을 직시해야 합니다. 좌선이 깊어지면 업식도 분명해집니다. 더불어 일상생활 속에서도 예감하지 못하던 갖가지 장애가 나타나 정진을 가로막고 시달림을 당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대끼는 현실을 극기하는 힘으로 경계를 타파하지 못하면 선정에 들지 못합니다. 고요에 이르기 위해서는 고난은 필연이며 그러므로 원인을 알고 인연을 헤아리는 눈이 밝아집니다. 지혜의 불꽃을 밝히는 용트림은 업연으로부터의 해방과 정확히 비례합니다. 석가세존께서도 정각을 이루는 과정에서 갖가지 유혹과 협박을 겪은 사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5) 육근의 해방
강철은 불에 거듭 달궈낸 무쇠이듯이 예(禮)에 입각하여 좌선 중에 일어나는 갖가지 환영으로부터 물러서지 않는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면 차츰 내공이 생겨 흔들림 없는 일상을 살게 됩니다. 이때부터 놓고 비우고 버린 것의 본성인 분별이 줄어들어 생체 에너지 보존이 가능한 이익 되는 삶을 구축하기 시작합니다. 식(識)이 맑았다 흐렸다 하는 경계가 분명해집니다. 천지를 회통할 것 같은 힘과 용기가 불끈불끈 솟아나고 몸속에서 지렁이가 기듯 폐쇄된 모세혈관이 재생되는 감미로운 현상이 일어납니다. 외부적으로는 휴화산이 폭발하듯 두피에 열꽃이 피며, 피부에 얼룩이 배어 나오기도 합니다. 이것은 생체에너지를 몰아 쓸 줄 아는 일념의 동적 반증이며 도(道)의 길을 확 포장하여 재정비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종교행위 및 방편도 놓고 대자연에 기대어 마음을 쉬는 것이 비결입니다. 육식이 해방되어지면 스스로 기혈을 순환시키며 이때부터 마음을 쓰고 거두는 즉, 기(氣)를 운용하는 능력이 발호합니다. 중도(中道), 정도(正道)는 범부와 성인의 길도 아닙니다. 행주좌와 어묵동 중에 흐트러지지 않는 무심(無心)입니다.

6) 무심의 등잔을 밝혀라
참선수행은 무심(無心)의 등잔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씨를 지피는 것입니다. 태양을 우러러 한 점 흔들림 없는 눈빛, 즉 실상관법으로 삼계(三界)를 자유자재하는 것입니다. 무심의 등잔이 놓여 질 땅은 간접경험으로 진리의 실상을 공유하는 야단법석의 장이며, 저자거리의 삶입니다. 실사구시(實事求是)는 사바세상을 등지거나 버리지 않습니다.

7) 행동하는 禪으로
선정(禪定)은 무너지지 않는 자산입니다. 옛 부처와 염라대왕도 선정에 든 자를 어쩌지 못하며 역대조사도 그를 헤아리지 못합니다. 미래에 올 눈 밝은 자(者)에게 거꾸러질 화(禍)를 자초하지 않을 수 있다면 청정한 율(律)로서 총림(叢林)을 이루고 인천(人天)의 스승을 길러내는 시대적 소명을 다합니다. 그리하여 여여(如如)한 생노병사(生老病死)로 회귀합니다.

5. 참 禪 경책

아침에 일어나면 마당 쓸고 하루를 준비하듯 심신을 갈고 닦아 자비헌신하지 못한다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며, 돌아앉은 고요를 탐하는 참선수행은 바로 무기(無記)이며 마구니를 불러들이는 몸짓입니다. 용과 호랑이를 조복시키듯 만법(萬法)을 구족(具足)하여 불국정토를 건설하려는 제불조사의 원력에 동참하는 것이 지고한 禪수행이며 영원한 자유로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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