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선사의 一日不作 一日不食
이 글은 본 우곡선원이 참선공부 설법교재로 백장회해선사 어록을 주해한 것이다. 백장회해선사(720∼814)는 마조도일의 직계로서 그의 고상하고 절도 있는 불도는 만대의 귀감이 될 만하다. 세수 90에도 울력에는 항상 앞장서기에 후학들이 농사연장을 숨기고 쉬기를 청하니 내가 아무런 덕도 없는데 어찌 남들만 수고롭게 할 수 있겠는가 하면서 "一日不作 一日不食"이라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어떤 사람이 백장에게 묻기를 대승으로 깨침에 들어가는 돈오법이란 어떤 것입니까? 라고 묻자 그대는 우선 모든 반연을 그치고 만사를 휴식하여라. 그리고 선(善)한 것과 선(善)하지 않는 것 등 세간의 일체를 다 내버려 두어라. 그리하여 그런 것들에 대하여 조금도 연연해하지 말고 미련을 두지도 말아라. 그대의 몸과 마음까지도 내버려 두어 자유롭게 하여라. 이런 때가 되면 비로소 몸은 목석과 같이 움직이지 않게 되고, 입은 일체의 분별을 가리지 않게 되며, 마음은 일체의 분별사식이 없어진다. 그리하여 마음은 허공과 같이 확연해져 지혜의 태양이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 이것은 마치 구름이 걷히고 나면 태양이 밝게 드러나는 것과 같다. 마치 탐욕과 진애와 애착 등 일체의 반연을 그쳐 더럽다 청정하다는 생각을 없애고 나면 설령 오욕과 팔풍을 마주하더라도 보고 들으며 깨치고 아는[見聞覺知] 일체의 정신적인 작용에 있어서 속박을 받지 않는 것과 같다. 또한 모든 대상경계를 대하더라도 그것에 미혹하지 않고 신통과 묘용을 구비하게 되어 해탈한 사람과 같다.
일체경계에 대하여 마음이 조금도 고요하거나 어지러움이 없어 안으로 거두어 들이지도 않고 밖으로 흩어지지도 않으며, 일체의 소리와 색에 대해서도 걸림이 없으면 이를 일컬어 도인이라 한다. 또한 일체의 선과 악과 더러움과 청정함, 세간의 유위적인 복과 지혜에 구속되지 않으면 그것을 부처의 지혜라 한다. 또한 옳고 그름과 깨끗하고 추악함과 옳은 도리와 그른 도리 등의 모든 알음알이를 벗어나 다시는 가는 곳마다 얽매임이 없으면 그것을 초발심 보살이 곧 부처의 지위에 올랐다고 말한다. 일체의 제법은 본래부터 스스로 공(空)하다는 것도 말하지 않고, 스스로 색(色)이라는 것도 말하지 않는다. 또한 옳다 그르다 더럽다 청정하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일체제법은 무심하여 사람들을 구속함이 없는데도 다만 사람들이 스스로 허망하게 분별심에 얽혀 갖가지 알음알이와 소견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만약 더럽다 청정하다는 분별심이 없어지고, 마음이 구속에도 머물지 않고 해탈에도 머물지 않으며, 일체의 유위와 무위의 알음알이도 없어진 평등심으로 생과 사를 대한다면 그 마음이 자유자재하여 필경에 허깨비와 환(幻)과 같은 5온과 18계 등의 모든 세계의 뒤섞임으로부터 아득하게 벗어난다. 그리고 모든 것에 의지하지 않고, 어느 것에도 구속되지 않아 가고 머무름에 자유롭게 되어 생과 사를 왕래함에 걸림이 없어 마치 자기 집의 문을 여닫는 것과 같이 된다. 만약 갖가지 괴로움과 즐거움으로 인하여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을 마주치게 되어도 그로부터 물러서는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하고, 명예와 의식을 생각하지 말아야 하며, 일체의 공덕과 이익을 탐내지 말아야 하고, 세간법에 마음을 두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또한 비록 친애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그것을 괴로움이다 즐거움이다 하는 뜻을 내지 말아야 하고, 거친 음식으로 목숨을 이어가며, 옷은 더위와 추위를 막을 정도만 하고, 항상 바보 같고, 귀머거리와 같이 하여 길이 수행해 나아가야 비로소 깨달음에 가까워질 수 있다. 생과 사에 있어서는 널리 배우고 많은 것을 알아 복을 구하고 지혜를 찾더라도 궁극적으로 진리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리어 알음알이 경계에서 오는 분별의 바람으로 인하여 생사의 바다 속에 깊이 휩쓸려버리고 만다.
부처는 달리 구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 것이다. 그리하여 구하려 하면 도리에 어긋나고 만다. 이와 같이 구함이 없는 도리를 구하려 하면 곧 그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다고 하여 구함이 없는 것에 집착하게 되면 도리어 구하는 것과 같아지고 만다. 이처럼 진리는 실도 아니고 허도 아니다. 그러므로 일생 동안 마음을 목석과 같이 하여 5음과 18계와 오욕과 팔풍에 들뜨거나 휩쓸리지 않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생사의 굴레를 끊어 가고 머무름에 자유자재하여 모든 유위의 경계에 얽매이지 않게 된다. 이리하여 나아가서 걸림없는 자유로운 몸으로는 중생과 화광동진하여 이익을 줄 수가 있다. 또한 걸림없는 마음으로는 모든 것에 대응하면서도 걸림없는 지혜로 중생의 일체 속박을 풀고 병에 따라 약을 처방해 줄 수가 있다.
” 어떤 사람이 묻기를 "지금 계를 받아 몸과 마음이 청정해지면 모든 선(善)을 갖추어 해탈할 수가 있습니까?” 백장이 말하기를, 조금은 그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마음의 해탈[心解脫]은 얻지 못하고 일체의 해탈도 얻지 못한다.” 그러자 다시 묻기를 "그러면 마음의 해탈이란 무엇입니까?” "부처도 구함이 없고 알음알이도 구함이 없어 더럽다 청정하다는 생각을 다 버려야 한다. 또한 다시는 그것을 지키려는 생각도 없어야 하며 그것을 다 버렸다는 생각에도 머물지 않아야 한다. 또한 지옥의 결박이라 해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극락의 즐거움이라 해도 즐거워하지 말아야 한다. 이리하여 일체법에 구속되는 바가 없어야 비로소 진해탈이라 한다. 그러므로 몸과 마음과 일체에 걸림이 없어야 진정으로 해탈이라 말할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대는 작은 계행이나 선행으로 곧 해탈을 얻는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설령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계와 정과 혜의 법문을 지녔다 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털끝만치도 해탈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힘써 노력하라. 귀 먹고 눈이 어두우며 머리가 하얗고 얼굴이 쭈글쭈글할 때까지 미루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늙어서 괴로움이 몸을 덮쳐서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마음은 두려움에 떨어 달리 의지할 바가 없어지고 만다. 이러한 시절이 되면 팔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게 되어 설사 복과 지혜가 있고 다문했다 하더라도 도무지 아무런 소용이 되지 않는다. 마음의 눈이 열리지 않고 오직 경계의 대상에 마음이 쏠려 반조할 줄도 몰라 다시는 도(道)를 볼 수가 없다. 그리하여 일생 동안 지은 악업이 한꺼번에 눈앞에 펼쳐진다. 혹 반가운 모습으로 혹은 두려운 모습으로 6도(道)와 5온(蘊)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이 모두 집이나 배나 수레로 보이며, 광명이 찬란하게 빛나 마음이 온통 그것들에 탐착된다. 그리하여 나타난 것이 모두 좋은 모습으로 보이고 나타난 그것을 따라 거듭 생을 받는다. 이와 같은 것은 모두 경계에 끄달린 것으로서 자유가 없다. 이런 사람은 내생에 용이 될지 짐승이 될지 양민이 될지 천민이 될지 알 수가 없다.” 수좌가 다시 묻기를 "그럼 어찌하면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습니까?”백장선사가 이르기를 "오욕과 팔풍을 마주해서도 마음에 취하거나 버리는 것이 없어야 한다. 그러면 더러움과 청정함이 모두 없어져 태양과 달이 허공에 걸려 있는 것처럼 무엇에도 걸림없이 비추는 것과 같다. 또한 마음이 목석과 같고 큰 코끼리가 물을 거슬러 건너가듯이 다시는 걸림이 없다. 이와 같은 사람은 천당이나 지옥에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