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에서 울릉도까지 인연

 

이 글은 설악산에서의 인연이 울릉도에서 그쳐버린 어느 사미와의 짧은 인연이야기다. 정명경을 찾아 주유천하하던 당시 한 사미의 타고난 팔자소관을 무시하고 천명을 뒤틀었던 한 토막 인간사가 측은지심과 반연의 불가분 관계에서 가슴앓이를 유발하였던 사연이다.

1997년 강원도 설악산 신흥사에서 납승들과 법담 중 강아지처럼 마당을 오가는 사미의 간절한 마음을 읽은 것이 반연의 발단이었다. 신흥사 객사 마루에서 몇 선승들과 야단법석 과정에 할 일 없이 마당을 서성이며 귀동냥을 하는 젊은 중을 마루로 불렀다. “보아하니 자네는 중노릇을 안 할 건데 왜 승복을 입고 절에 살며 알아듣기 어려운 참선공부에 관심을 두느냐”고 하였다. 얼마 전 군 복무를 마치고 바로 입산하였다는 사미는 이 자리에 동석하고 싶었는데 불러줘서 감사하다는 언사가 반듯하였다. 자네는 중노릇보다 바깥에서 할 일이 더 많을 것 같다고 충고하였더니 단호하게 세간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충남 공주 태생으로 군 입대 전 출가한 이력과 세상살이에 흥미가 없어 중으로 사는데 길이 안 보인다는 솔직함을 그냥 흘려들을 수 없었다.

신흥사는 흥청거리는 관광지라 초기 마음공부에 적합하지 않으니 이웃한 금강산 화암사에 있어보라고 하였더니 의심 없이 그날 오후 바로 화암사로 수행 거처를 옮겼다. 금강산 화암사는 내가 속초에서의 경계 후 화기를 다스리던 최초의 불도량으로 당시는 무척 한적하고 청량하였다. 그로부터 3개월 사미의 수행태도를 지켜보다가 서울로 불러들여 승가대학에 입학을 시켰다. 출가자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중노릇을 가문의 영광이나 벼슬로 여기는 잘못된 풍조로 자기 망하고 불교 망하게 하는 것을 익히 알고 있던 터였다. 부처공부에 학위가 필수항목은 아니지만 불교지식과 교양을 갖추어야 후일 변화를 주도하고 홍법에 이롭기 때문에 취한 불가피한 조처였다.

우곡선원 참선법회는 주경야독이다. 서울 양재동 우곡선원에서 기숙토록 하였기에 매주 두 번의 참선법회는 물론 일상도 소임자들과 다름없었고 안국동 내 자택 사랑방이 우곡선원 별당이자 새벽까지 이어지는 야단법석도량이었다. 휴일이면 어김없이 전국 명산대찰을 찾는 만행으로 신세계를 접하며 이치를 정립하는 고도의 심신수행으로 학승을 훈육한 결과는 일취월장이었다. 승가대학도 2개월 늦게 들어갔지만 1학년을 마치기도 전에 전교에서 주목받는 학승이 되었다. 북한산 보현봉에서 극적인 경계를 체득시킨 신종 중의 출현에 학인들의 시샘과 이목이 집중되는 것이 염려되었지만 세간출입을 금하고 전생습기를 소멸시킬 보임환경을 갖출 수 없었다. 세간에 노출된 사미의 군계일학 면모는 돌풍을 일으켰지만 정작 자신은 승가에 안주할 수 없는 새로운 갈등의 시작이었다.

무심 맛을 모르는 업보중생은 나날이 탐욕과 집착을 더하는 삶이 참 자기인줄 안다. 천년 탐욕과 만년 근심에서 헤어날 수 없는 일체중생은 백년 내로 저승사자에게 붙잡혀 간다는 엄연한 사실을 망각하기에 부질없는 중생노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루살이 같은 미물 몸을 받거나 축생으로 태어나 죽도록 일하고 육신을 통째로 보시당하는 팔자도 전생업장에 따른 과보다. 생사유전 하며 사생육도를 떠도는 가련한 업식을 속전속결로 해소하는 참선수행은 이 사바세상 어디한곳 머무를 수없는 절대고독의 행로이기에 이대로는 억울해서 못살겠다는 분심과 의리와 신심, 당찬 용맹심을 요구한다.

성성 적적한 무심체험이 참선공부의 왕도이고 법을 득하여도 중생훈습이 소멸될 때 까지는 단 한 번의 들숨날숨 간격조차 억겁의 세월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해탈성불에 이르는 정도문이다. 우곡선원은 재가자 중심이고 내가 재가자 모습인 것이 이 학승에게는 넘지 못 할 장벽이었다. 불교가 왜 대승사상 기반이고 초조인 석가부처님이 평범한 재가자 모습이었는지에 대한 올바른 성찰이 없는 무늬불교의 고질병은 하루아침에 고쳐질 것도 아니었다. 학인입장에서는 승속차별이 엄연한 현실에 대한 번민도 클 것이기에 당대 고승대덕들을 소개하여 직접 대면토록 조처하였지만 매번 승가에 대한 실망과 깊은 좌절만 껴안고 돌아왔다.

어느 날 예비군 훈련을 갔다는 중이 함흥차사였다. 한마디 언질도 없이 가출에 가출을 더하는 목적지는 공주로 귀향하였을 것으로 짐작되었기에 찾지 말라고 엄명하였다. 의문과 호기심으로 바깥으로만 쏠리던 시선이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려지는 이 단계는 마치 사춘기와 같아 훈계는 물론 그 어떤 것도 무용하기 때문이다. 학교생활을 저버리고 행적도 없이 사라진 6개월 후 이듬해 양력 정월 초하루 산사의 첫눈을 쓰는 이 중 모습이 새해 KBS 아침뉴스에 클로즈업 되는 것을 보았다. 금강산 화암사는 주변 나무 한그루까지 익숙하기에 화면에 비추인 장소를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선원주지한테 지ㅇ이 화암사에 있다고 알렸고 그날 밤 그는 가출한지 반년 만에 다시 양재동 우곡선원으로 복귀하였지만 그사이 건강이 다 망가져 있었다.

은혜를 저버린 자책과 세상이 한줌 티끌만 같았던 환희지가 소멸된 번민으로 정법후광에서 벗어났던 반년세월이 그에게는 생지옥이었던 것이다. 무심인연으로 기혈이 돌아가는 신세계를 경험한 후 문뜩 혼자서도 될 것 같은 아만을 이겨내지 못하면 신묘하던 힘이 소멸되면서 천지가 꽉 막힌 암흑세상이 된다. 불보살은 속진세상으로 부터 초탈되는 모진인고를 감내하고 의롭고 겸손하며 측은지심으로 실사구시하지 못할 자에게 무심법력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의 바랑에는 침과 뜸 등 치료도구들이 한가득 이었다는 것은 치기로 불연을 등진 후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려고 애썼던 눈물겨운 흔적들이었다.

선원을 떠났던 6개월 동안 홀어머니의 생활기반을 건사시켰다는 것을 공주를 다녀온 선원주지를 통하여 내막을 소상히 알게 되었다. 그간 체득한 힘으로 단기간에 모친의 생활대책을 강구하고 다시 봉암사로 재 출가하여 행자생활을 하였지만 여의치 않았던 것이다. 봉암사는 대중이 많이 살지만 여느 중과는 판이하게 다른 기상을 감출 수 없어 행자생활을 접은 후 TV를 통하여 다시 인연을 잇는 불가사의한 동기가 있었다.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 중을 한마디 질책도 하지 않고 제적 처리된 승가대학에 복학시켰지만 그에게 학업은 거추장스런 형식에 지나지 않았다. 짧은 시간에 무심경계를 맛본 이 중한테 문자로 배우는 부처공부는 유치할 수밖에 없어 학교생활도 건성이었다. 복학 후 강의실을 들었다놨다하는 객기를 담당교수로부터 듣고 혼을 낸 후로 학교 앞 사우나가 강의실이었다. 전생훈습이 발동하는 시기는 애끓는 갈애를 이겨내고 신심을 북돋을 환경이 필요한데 승가대학만으로는 불충분하였다.

만물이 절기의 소산이듯 사람농사도 시운에 맞추는 것이 순리다. 당시는 승속을 불문하고 사바중생의 딱한 처지만 보고 천명을 그르친 오류가 없지 않았다. 자기마음도 어쩌지 못하는 업보중생은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근기를 높여야하지만 측은지심으로만 보았던 것은 실책이었다. 탈 많고 이유 많은 중생제도는 숙업을 녹일 걸맞은 환경이 필수요건인데 속진세간과 일체 타협하지 않았던 결과는 인간불사를 가로막는 난제가 되었다. 거친 세파에 떠밀려 곤경에 처한 속물중생의 딱한 처지를 인연이라는 이유만으로 팔자를 바꿔준 은혜를 경솔히 여기는 경우도 빈번하였지만 신심이 약한 근기가 사부대중에 끼여 소낙비 같은 법력을 맛본 자만으로 불연을 배신한 그림자는 예외 없이 흉측하였다.

4월의 그날 매주 두 번 열리던 참선법회를 마치고 주의를 당부하고 귀가하였던 것이 이 사미와 마지막 인연이었다. 무늬에 걸린 업 때문이라면 몸을 바꾸어 이생에 다시 만난들 어느 하세월에 농사짓고 추수를 기약 하나? 설악산에서 이 사미를 처음보고 “중노릇 안 할 놈이 왜 승복을 입었느냐”고 말하였던 것이 그의 확정된 운명이었다면 그깟 중노릇 걷어치우면 그뿐인 것을 삶의 끝도 아닌 그 먼 뱃길 울릉도까지 갈건 뭔가.

섬 사연

   Ⅰ
선상에 기대인 상념
검푸른 대양
저 너머로
달려 나간 뒤

소용돌이치며
고물을 떠날 수 없는
하얀 물보라
스스로 가지 못할
넋으로 다가오고

   Ⅱ
돌아오지 않은 길
성인봉 아래로
으깨어진 하늘이더니
향 사르고
운무 불러들여
차가운 혼 덮을 때
파르르 떨어 우는
저 꽃 한 송이
애달픈 울릉도 사연

아련한 허공을 껴안고
뒤척이는 山寺에
후두두 밤비는
못다 핀
붉은 동백의 눈물인가

   Ⅲ
고도의 벽
울리는
파도에 기대어
외로움으로
줄인 세월
헤아리는 줄 알았더니

갈매기 나래 타고
흐드러진 겹 동백

기암절벽
홀로 노닐면
그대 뜰에

만경창파
두었음을 알겠구나
.

牛谷 禪詩 『그대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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