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산 비구니 도력과 비구
이 글은 경기도 안양 한ㅇ음선원 대o스님과의 대면과정에서 일어난 애잔한 비구니 도통사연이다. 1998년 늦여름 비구 몇 명과 안양 삼성산 삼막사를 탐방하고 내려오는 길에 동네 중심에 우뚝 솟은 황금색 원형 지붕을 든본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저 누렇게 빛나는 돔 건물이 뭐냐고 물었더니 한ㅇ음선원 안양본원이라는 것이다.
그즈음 대o스님 명성을 익히 듣고 있던 참이다. 잠실운동장에 수천불자를 모아놓고 법회를 주관하는 비구니도인스님이 주석한다기에 지나친 길을 되돌아 한ㅇ음선원으로 들어갔다. 내가 대o스님에 관심을 둔 것은 “도”라는 책 때문이었다. “도”는 구도역정기로서 주인공인 대o스님을 크게 득도한 유일한 비구니로 묘사되어 있었다. 책 내용을 살펴보니 득도 근처도 못간 판타지 소설이었지만 당시 세상눈은 나와 많이 달랐던 모양이다.
유교의 시조이자 철학자인 공자도 “나는 득도하지 못하였다”라고 하였다. 불교의 존재목적이 그렇듯 일체중생은 자신이 알든 모르든 삶의 최종 종착지는 사생육도를 끝내는 득도(得道)에 있다. 먹물로 도(道)의 본질을 비틀고 가공한 “도” 작가를 수소문하여 찾아 갔었다. 그는 경기도 오산 시골마을 초입에 집필실을 갖추어 놓고 자신이 도인행세를 하고 있었다. 대o스님 “도”스토리를 추궁하였더니 대o스님으로부터 ㅇ천만 돈을 받고 글을 써준 거라고 실토하였다. 당신이 작가라면 대o스님의 “도”는 꾸며낸 소설이라고 했어야지 실존하는 중을 득도한 사람으로 꾸며 세상을 속인 것을 문책한 후 다시는 이런 글을 쓰지 말라고 경고한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o음선원 종무실에 들어가니 우리 일행을 맞이하는 주지태도가 그냥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일행 중 모 사찰 주지가 점잖은 어투로 대o스님 만나러 왔다고 하였는데도 친견사유를 되묻자 비구니가 종알거린다고 면박을 주었다. 절집 관행은 잘 모르지만 그 정도면 면담요청을 받아 줄듯한데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연이어 다른 비구가 공부 때문에 왔다고 면담요청을 하자 비구니는 또 강아지처럼 쪼르륵 어딜 나가더니 한참 후 돌아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3명의 비구가 번갈아 가며 면담을 청하였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거부였고 비구들을 무슨 화적떼 대하듯 하였다. 대o스님 도력이 높다는 명성 때문에 그런지 비구들로부터 시달림을 받았다는 분위기가 역력하였다.
무슨 상감마마 알현요청도 아니고 이런 해괴한 장면을 지켜보는 재미도 꽤 쏠쏠하였지만 나까지 무시당한다는 기분이 슬슬 들었다. 차례로 대o큰스님 친견요청을 단칼에 거절당한 비구 3명은 씩씩거렸지만 그렇다고 뒤집어엎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불교는 무차별법인데 이런 딱한 상황을 목도하니 선지식이라는 큰스님 만나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그 간절한 부처공부는 어떻게 묻나 싶었다. 강아지처럼 들락날락하든 주지도 더 이상 방법이 없는지 우두커니 서있기에 내가 “단군의 자손끼리 뭐가 그리 복잡 하느냐”고 대o스님께 그대로 전하라고 묵직하게 일렀다. 그러자 또 어딜 쪼르르 달려가더니 그제야 같이 가자는 것이다. 별관 2층 계단으로 올라가니 헬스장이 나타나고 긴 복도 끝에 대o스님 방이 있었다. 검은색안경을 끼고 당당히 앉은 품새가 당시 불교신문지상에서 자주 보던 모습이기에 친숙하였다. 모 불교신문 사주가 대o스님이었기에 당시 신문에 그림이 자주 보였다. 만남 과정이 껄끄러워서 그런지 시큰둥한 표정으로 우리 일행을 살피다가 법문이라는 것이 당시 불교신문에서 자주 접하던 주인공과 세포 이야기였다. 주인공 이야기도 대우주관이 아니라 상대개념이고 몸과 세포이야기는 생물학적으로도 이치에도 전혀 맞지 않아 저러다 큰일 내겠다 싶었다. 신문지상에 시리즈로 게재된 대o스님 주인공과 세포법문은 전문가의 편집을 거친 작품이었음이 금방 판명되었다.
대o큰스님의 주인공과 세포가 갈수록 삼천포로 빠지고 곧 현해탄에 익사할 지경이기에 그가 목을 축이는 틈에 간략히 개념정립을 해주었다. 명색이 득도한 도인스님으로 명성이 자자한데 논리가 박약하면 세인들이 불교를 어떻게 볼까 걱정되어 일깨워 주었다. 처음에는 아량 넓게 “아 예 그러네요.”하면서 오류를 인정하고 고맙다고 하였다. 두 번 세 번째까지의 법문수정을 정중히 받아들였다. 사태가 그렇게 흘러가면 법문을 그만 걷어 치워야지 타성이 붙어서인지 갈수록 목소리가 커졌다. 검은색 안경너머로 나를 힐끔힐끔 보면서 굳이 지지 않으려고 엉터리법문을 토해내는 기상은 생사경계가 없는 당당한 선지식도 정도를 지향하는 불제자도 아니었다. 주인공과 세포는 사라지고 자기는 강원도 오대산에서 기도를 하여 도를 깨쳤다면서 인정해주기를 바랐지만 나한테는 어림없는 수작이었다. 빌어구하는 기도로 깨닫는 득도는 석가부처님 이전에도 이후에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법문을 몇 차례 지적당할 때는 공손하던 이 할매가 굳이 뻗대며 열변을 토하다가 가면이 벗겨지고 자신의 속성을 더 감출 수 없다는 것을 눈치 챈 그 순간 갑자기 “거사님만 깨달은 게 아닙니다. 여자도 깨달을 수 있단 말입니다.”라고 벽이 무너지도록 큰 소리를 치는 자태나 목청은 마(魔)가 발작하는 딱 그 포스였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어느 비구를 호칭하며 남자의 그것을 씹어서 개를 준다며 저주하는 내용인즉슨 그가 비구니는 절대 못 깨친다고 공식석상에서 천명을 하였던 모양이다. 비구니는 안 된다는 그 말이 대o큰스님 가슴에 한으로 묻혀 있다가 그만 내 앞에서 화산처럼 폭발하였다. 일찍이 공자처럼 난 못 깨달았다고 솔직하게 천명하였다면 볼썽사나운 추태도 길을 묻는 불제자들이 떼로 현혹당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소설작가를 매수하여 자기 자신을 득도한 비구니로 포장한 추태는 목불인견이었다. 난 비구니 “도”는 언급도 안했는데 자신의 가짜득도에 대한 양심고백이 앙탈을 부리듯 불거져 나왔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노승이라 그런지 사태를 수습하는 국면 전환도 빨랐다.
한동안 듣기 민망한 신세한탄을 하다가 실성한 사람처럼 히죽히죽 웃더니 싹 표정을 바꾸어 “여자는 못 깨닫습니까?”라고 정색하며 묻기에 “다 깨달아도 당신은 안 되겠다”라고 하대하며 툭 던져도 불쾌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백주광명 앞에 헛것이 발동할 수 없듯 나한테 들켜버린 이상 자기 몸을 부리는 대왕이 떼거지로 몰려와도 어림없다. 더 이상 속일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아주 예의 바르고 공손한 삭발보살이 되어 이제 자기가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석가부처님 정법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 이런 큰스님하고 나눌 법담도 없거니와 비록 조복은 하였지만 일거에 운명을 바꿀 득도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여기 한o음선원은 지붕 대가리가 금칠로 뻔쩍거리던데 돈이 많은 것 같다고 하였더니 돈은 좀 있다는 것이다. 그럼 저 비구스님들 객비는 얼마씩 주느냐고 물었더니 두당 00만원을 준다는 것이다. 객비란 승려들이 타 절에 가면 쥐어주는 노잣돈을 일컫는다. 오늘 저 비구스님들이 당신 세포법문을 듣느라고 수고가 많았으니 객비에 동그라미 하나씩을 더 붙여 주라고 하자 첫 말에 “그러겠습니다.”하고는 바로 주지를 불렀다. 주지는 대ㅇ스님이 고래고래 소리칠 때부터 복도구석에 제비새끼처럼 조르륵 엎드려있는 십여 명의 비구니들 중에 제일 앞에 있었으니 대o스님 말이 떨어지자마자 “예”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주지 입장에서는 골 때리는 이 패거리들을 빨리 쫓아 보내야 할 판이니 행동이 잽쌌다.
"도"는 무념무상심의 현학적인 표현이다. 그가 누구든 시주 밥을 얼마나 먹었던 삭발가출은 “도”에 이르고자하는 애달픈 형색일 뿐 무늬로 눈먼 세상을 속였던 과보는 무간지옥을 면치 못한다. 불교 8만4천 경· 율· 론 삼장을 모두 외우고 익혀도 궁극의 “도” 해탈성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무심인연이 닿지 않으면 천지를 관통하는 식견일지라도 불타의 무상묘법 체득은 불가능하기에 역대제불은 엄명으로 설법을 금하였지만 사문화가 된지 오래다. 근자 SNS에 비춰지는 제방의 법회모습을 가끔 접하면 차라리 묵언으로 계율에 충실하면 석가세존의 불교가 이 지경으로 누더기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각설하고 대o스님의 명을 받은 한o음선원 주지와 나와 일행이었던 한 비구가 먼저 종무실로 내려가고, 다리가 아파 멀리 배웅 못한다는 대o스님과 헤어져 차로 돌아 왔더니 비구 안색이 벌레 씹은 듯하였다. “왜 비구니한테 물어 뜯겼느냐”고 했더니 객비에서 동그라미 한 개를 떼였다는 것이다. 조금 전 2층에서의 대o큰스님 약속이 1층에서 비구니로 부터 엎어치기 당한 비구이야기는 한동안 웃음거리를 선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