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노승과 탁마
근자 지구촌에 몰아닥친 코로나역병으로 온통 죽음과의 사투에 매달린 나날이 어언 한해가 지났다. 찬란한 현대문명과 부귀영화도 죽음의 사신 앞에는 한낱 뜬구름이라는 사실을 절감하는 인류의 여망은 창살 없는 코로나감옥에서 부터 하루빨리 벗어나는데 있다. 인간사회를 생지옥으로 만든 대재앙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현실 앞에 경악하지만 격외도리인 참선법이 인류를 구하는 최후의 해법이 될 것임을 잘 알고 심신의 힘을 기르는 불자들도 있다. 생사가 분분한 세간으로부터 벗어나는 참선법의 불가사의한 위력보다 낮은 단계의 심신수련으로 일반화되어 있는 명상수련 효과는 동서양에서 다수의 연구 자료가 발표되고 있다. 첨단의술도 허둥대는 역병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는 이 세상으로부터 초연할 수 있는 길은 참선수행으로 영성의 발전과 그로인하여 차원이 다른 면역기능이 형성된 체질을 갖추는 것이다.
자신과 인류를 구하는 참선법은 세상 그 어떤 가치보다 우위에 있는 불세계의 코어로서 불연이 있으면 누구나 증득할 수 있다. 만일 생사고해를 여의는 참선이 여타 종교를 포함한 기성제도권에 속한 비법이었다면 영악한 속물들이 이 고난의 시기를 틈타 해탈고시 등용문 매표장사를 하였을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자기 자신의 주인공인 영혼을 해방시키는 참선법은 이 속진세상으로 부터 아무런 구속을 받지 않는다.
풍진세파를 이기고 해탈지혜로 영원한 자유를 얻는 참 선법은 본원의 정체성이자 존재 이유이기에 각설하고 모든 불자는 최상승의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 생사를 멸한 대자유인, 그 영원한 생명력의 출발인 견성을 위하여 부정에 부정을 더하는 자기연민 속에서 길을 찾아야 하는 구도자의 삶은 굽이굽이 백척간두이지만 거기서 한발 더 내딛는 강단을 요구한다. 돈오돈수든 돈오점수든 돈오 이후의 습기를 제거하고 무심지혜를 증득하는 과정에 기성 불교문중을 기웃거리며 반면교사를 양산할 수밖에 없는 구도환경이 야속하지만 불성(佛性)은 그 어디든 기댈 곳이 없어 고진감래는 필수코스다. 돈오라는 원석을 가공할 선지식의 지도로 속세와 단절하여 보임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 개오자가 전생습기로 상처투성이가 되는 비극은 면할 수 있으련만 참사람이 없었다.
이 이야기는 활ㅇ 성ㅇ스님과의 탁마인연과 개오(開悟) 그 이후 멈춰버린 안타까운 노승의 구도열정을 피력한 것이다. 1997년경 함양 황석산에 큰스님이 주석한다는 소문에 몇 납자들과 지리산 언저리 산골마을과 어우러진 소박한 모습의 황대선원을 방문하였다. 선원입구에 이르자 지팡이를 짚은 훤칠한 노장이 마치 오래 전부터 기다린 듯 나를 보자말자 “왜 이제 오느냐”가 인사였다. 명성이 자자한 고승의 알듯 모를 듯한 언사에 주위 승려들이 모두 얼떨떨하였지만 내 눈에는 아주 익숙한 사람이라 “왜 일찍 와서 늙은 중이 되었느냐”는 말이 첫 일성이었다.
성ㅇ스님 왈 지금껏 탁마할 사람을 만난 적이 없는데 이제 탁마할 사람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불가의 탁마란 모든 격식과 차별을 버리고 막역한 도반으로 허심탄회하게 법을 논하는 인간관계를 뜻한다. 난 불세계와 연이 닿은 후 불교계를 망라하여 당대 최고 위상의 종교지도자는 거의 대면하였지만 하나같이 싹수가 노랗거나 껍데기였다. 참 해탈진리를 증득한 선각자인연이 절실한 보임시기였지만 인간을 통한 내면세계 조율은 불가능하였다.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스승도 도반도 없이 자성이 드러난 탓으로 죽기보다 더 힘든 갈애를 스스로 다스려야 하는 절박한 처지였었다. 무심지혜를 증득한 선각자의 한마디 말이면 될 의문을 야박한 현실과 부대끼며 모를 깎는 나의 불도는 그 어떤 감정도 없는 목석같은 인간으로 주유천하가 일상이었고 발자국마다 한숨과 눈물이었다.
나의 해탈세계관은 속진세상 가치로부터 벗어난 무심영역만큼이 본인의 해탈세계이고 다시 저자거리로 되돌아 온 보편적인 삶이 자리이타보살행으로 여법할 때 비로소 완전한 유여열반이라고 생각한다. 금생에 이 일을 끝내든 다생 간에 마치든 회향하지 않는 원각(圓覺)도 열반적정(涅槃寂靜)도 없기 때문이다. 돈오는 완성이 아니라 이 풍진 사바세상을 등지는 출발점이고 그로부터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회복시켜야 하는 피 말리는 구도역정을 수반한다. 반전의 세월동안은 인간이 창조한 그 어떤 가치에도 의미부여가 되지 않았고 감정이입이 안 되었다. 상대세계는 물론 인간적인 연민마저 완전히 사라진 적멸(寂滅)의 선상은 우주의 미아이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지만 역설적으로 이 고립무원의 경지는 입전수수로의 시발점이었다. 문득 느껴지는 산등성이의 아카시아 꽃향기, 장끼 우는 소리, 들판의 보릿대 타는 냄새, 청산의 물소리 바람소리 등등 가없이 순수한 자연의 율동을 하얀 마음에 새기며 다시 인간적인 감정을 일깨우는 안타까운 시간 또한 피 말리는 구도역정의 딱 절반 세월이었다.
성ㅇ스님과의 첫 만남에서 주고받은 짧은 한마디는 당시 나로서도 아주 의외였다. 나와 성ㅇ스님과는 세속나이로 30년 차이인대도 “왜 이제 오느냐”는 그나 “왜 일찍 와서 늙은 중이 되었느냐”고 대꾸하는 나의 천연덕스러움이 있었다. 삼계가 끊어진 불법세계와 차별의 사바세계가 동시에 작동하는 기묘한 인간관계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70대 노승과 40대 세인의 모습은 주변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격식을 차리려다 보니 탁마도반으로서의 연민이 엷어졌다. 세상물정이 어두운 성ㅇ스님은 사바세상 인간사보다는 당신의 출가수행 일대사가 탁마의 주제이고 서산에 기운 햇살이 아쉬운 듯 공부에 대한욕구가 드샜다.
지금껏 내가 직접 만났거나 소식을 접한 제방의 선문납자 중에 비록 미약한 경계이지만 돈오경계를 확실히 체험한 사람은 활ㅇ 성ㅇ스님이 유일하였다. 성ㅇ스님의 세속나이 22살 때 해인사 화장실에서의 경계는 분명한 개오(開悟)였다. 해인사 강원생활 중 이유 없는 분심과 절망감에 쩔쩔매다가 해인사 화장실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식은땀을 줄줄 흘렸는데 갑자기 무거운 들 짐 밑바닥이 훌렁 빠진 듯 가볍고 시원해진 이후로 팔자가 바뀌더라는 거였다. 그 후로 중노릇도 시시해지고 더 배울 것도 없어 4년 동안은 중노릇을 그만 두었다는 것이다.
돈오를 체험한 인생여정은 환희와 고난이 점철하는 우여곡절이 필연이다. 정각자라면 칭송이 하늘에 닿고 따르는 무리가 인산인해를 이루어도 전생 습이 발동하는 보임 중에는 결코 현실에 안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소한 나이였던 활ㅇ 성ㅇ스님의 소속종단에서의 직분과 업적은 특이하고 선명하지만 용두사미가 된 것은 승가에 돈오의 참맛을 아는 선지식이 없었고 철저하게 보임하지 못한 것이 패착이었다. 조계종의 종조 육조 혜능대사는 자기 이름조차 못 쓰는 문맹자였지만 그의 해탈법이 꽃을 피운 것은 그가 출가 승려가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방앗간 일꾼일 때 5조 홍인으로부터 심인을 받고 시샘한 중들의 살해위협을 피하여 17년 동안 사냥꾼 생활을 하였던 때 묻지 않은 야생의 삶 그 자체가 심신을 다듬는 최상의 보임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승려신분으로 선지식 이라는 어설픈 중들과 어울렸다면 개오를 하였어도 꽃을 피우지 못하고 그 나물에 그 밥이었을 것이다.
활ㅇ 성ㅇ스님의 개오(開悟)는 딱 그날 그 경계지점에서 멈추어버린 애달픈 시대의 불꽃이었다. 77세 고승의 정신세계는 반세기도 더 지난 해인사 해우소에 고정된 체로 추억의 시계만 돌아갔었다. 나와 탁마할 때마다 모든 사고가 22살 그날의 환희지에만 귀납시키는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그의 운명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많은 세월이 흘러가 버렸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왜 좀 더 일찍 태어나 자기를 이끌어주지 못했느냐”는 투정어린 솔직함도 현실에 묻혀 제자리를 맴돌았기에 탁마 횟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정법이 다한 황무지 승가에서 아주 드물게 견성은 하였으나 제대로 꽃피우지 못한 안타까운 노 수도자의 삶이 진한 영상으로 다가왔던 것은 “서산에 해 기울면 소는 누가 키우나”하는 염려를 일깨워주었던 탁마도반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