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류(海流)를 지켜보는 어부 되어
어부는 결코 서두름이 없다. 무위로 흐르는 바닷물을 드러낸 후 고기잡이를 할 수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해류를 지키는 어부의 심정과 같은 자성의 소리는 존재의 근원을 밝히는 언어이기 때문에 함부로 뱉어 세상을 휘젓고 다닐 경구가 될 수 없으며 무슨 교법화 될 수도 없다. 순수한 자성의 소리를 말할 때 인간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영원한 그의 내면세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기에 때 되면 어부가 바다에 투망을 하듯이 자성의 소리 그 본연의 의미를 들어 올릴 날이 올 것이다.
물길을 지켜보는 어부가 그물을 던질 그날이 도래하면 그해 피어올랐던 자성의 빛 에너지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임을 확신하며 지금은 인고의 세월 위를 걸어간다. 알음알이로는 빛의 근원에 접근하기 불가능하다.
겸손과 겸허한 마음 자세일 때만이 빛의 근원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이론으로는 선(禪)을 볼 수 없고 경(經) 이면을 알지 못하듯이 문자에 얽매이는 낮은 근기의 사람으로서는 경을 통해 무상에 이르려고 노력하나 불멸의 근원과 같은 무념무상에 이를 수 없다. 확신으로 무장된 뜨거운 가슴이 아니면 지혜의 문은 열려지지 않듯이 무상의 도리도 이와 마찬가지다.
작금은 평등과 자유라는 화두가 보편화되어 누구나 사람 행세할 수 있는 시절이고 무상도리로 가는 길에는 입만 벌렸다 하면 천지 이치 달통했다는 자칭 선지자가 득실거린다. 혼돈의 시대는 인간임을 선언할 수 있는 기본적인 신의마저 없어진다.
인간의 올바른 가치관이 소멸되면 대혼란의 시대가 도래 할 것이니 그때는 반드시 많은 어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선 수행은 내 마음의 어부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그리고 어부는 매일 새벽이면 바다에 나가 해류가 바뀐 후 그물 드리울 날을 기다리는 것이 그의 참 역할일 것이다. 어부는 각고 이후의 날이 도래할 때까지 일상사에 전력투구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며 이것은 깨어있는 사람 모두의 과제일 수도 있음을 이해할 때 미래의 우리 모두는 그날의 어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