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과 인생
가을 색이 완연할수록 야생의 초목들은 계절의
끄트머리를 잡고 각기 고유한 향기를 내뿜는 일에 열중한다. 촛불은 자기 몸을 태워
어둠을 밝히듯이 산야에 너부러져 있는 이름 없는 작은 풀잎 하나도 생명의 근원인
에너지를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요즈음처럼 무서리가 내릴 때면 고유한 향기를 발산하면서
그 존재 역할을 다 하려 진한 몸부림을 쳐대는 자연을 느낄 수 있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고 고독을 싣고 오는
여신이기 전, 삶의 본질적 에너지를 한꺼번에 공급받는 수확의 계절이다. 세상이
삭막할 수록 대 자연의 섭리인 결실의 의미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을 때 존재의
근본에 귀의하는 안목이 열려지고 대 자연 앞에 좀 더 겸허해질 수 있는 동기가 있을
것이기에 한 포기의 풀잎에서 존재의 실상을 더듬어 본다.
사람들은 수확에 직접 참여를 하든 그렇지 않든 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베풀어주는 가장 필요하고 근본 에너지인 식량 문제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획득할 수 있는 무슨 공산품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가을과 더불어 그 역할을 다하는 한 그루 초목은 인간사를 유지시키는데 지고한 공헌을 한다.
삶의 가치 척도가 잘 못 구성되어지는 말세에
이르게 되면 다수의 성향이 순수성을 망실케 되어 생명력을 유지시켜 주는 자연의
지대한 공헌을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는 풍조가 만연해 진다.
탐욕에 자아가 묶여진 사람들은 대 자연의
혜택을 직·간접으로 받고 있으면서도 천혜의 의미를 바르게 인식하기보다는 당연한
것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비일비재한다. 이런 현상을 두고 이기심이 증폭된 말법
시대라 칭하여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산하대지의 초목은 인간의 인식여부에
아무 상관없이 그 존재의 역할에 충실한다.
열매를 맺는 식물들은 과실을 남겨 한 계절을 마감하고 그렇지 못한 식물들도 미묘한 기온의 변화를 인지하고 고유한 향기를 분출하여 삭막해져 가는 대지를 감싸는데 그 소명을 다하면서 한 시절을 마감한다. 길가에 흩뿌려져 있는 듯한 이름 없는 풀 한 포기라도 때가 되면 개체가 함유하고 있던 고유에너지를 분출하여 삭막한 대지 위에 미묘한 생명에너지를 불어 넣어주는 원대한 역할을 한다. 인간 삶의 초석은 한 포기 이름 없는 풀잎 역할들의 어우러짐 속에서 생명력이 영속되는 것이며 호흡 있음이 확인될 수 있다.
오늘은 회사업무로 내 사무실과 가까이 있는
법원에 갈 일이 있어 법원 입구 지하철역에 내려 무심히 계단을 올라가는데 진한
풀 냄새가 코를 진동시킨다. 도심 한가운데서 순수한 자연의 향취를 맡은 나는 '이게
웬 일인가'싶어 본능적으로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
주변에서 가장 많은 수목이 심겨져 있는 곳이라고는 법원 구내의 정원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그렇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여 법원에 들어서니 입구에서부터
인파의 물결이 출렁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법원정문을 나서는 군상들은 하나같이
인상들이 고약하며 눈에는 독기가 뻗쳐 있다. 적대감으로 팅팅 부어 오른 얼굴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는 현장에 들어서게 된 것도 내 업이려니와 동업중생이 공유하는
시대의 장에 그만의 생각으로 쌓여진 독기를 퍼뜨리고 다니는 것도 죄업이 된다.
혼탁한 시대는 잘 다듬어놓은 풍광 좋은
정원도 별 무용한 모양이다. 법원 정원 한 쪽에는 고성을 지르면서 삿대질을 해대는
초로의 신사가 있는가 하면 머리끄덩이를 서로 움켜잡고 길바닥에 나뒹구는 아낙네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들어온다. 세속사에 이해득실로 인한 갈등이야 어느 시대든
있게 마련이지만 운치 있게 조성되어 있는 법원 청사 정원이 격투장으로 화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런 것이 도대체 무슨 조화인지 순간적으로 이해가 닿지 않았다.
조금 전 정문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얼굴표정들이 하나같이 고약스러웠던 것은 눈앞에 펼쳐져 있는 저 모습을 본 후유증 이였던 모양이다.
사람이 모여 살아가는데는 갈등으로 인한
투쟁도 있을 수 있고 또, 그로 인한 갖가지 제도가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다수의
약속이 빚어낸 제도의 판결지 한 가운데서 이해관계로 격렬한 몸짓들이 일어나니
그 순간 고귀한 자연의 냄새도 맡을 수 없을뿐더러 영원성이 없는 물질로 인한 인간
삶의 처연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들여다보여 망연자실한 심정이 된다.
무위자연에 소속된 무정물인 작은 풀뿌리
한 개는 생명력이 다하는 극한 상황에 봉착되어도 그가 품고 있던 유용한 에너지를
대지 위에 쏟아 내어 주면서 존재의 역할을 다하려고 강한 몸짓을 짓는데 사유하는
인간은 순수 자연 속에서 취한 에너지를 생명력으로 하여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리사욕을 취하는데 온 정열을 쏟고 있으며 때로는 혼탁한 육근에 배여
있는 썩은 정신 에너지를 임의로 배출시켜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위를 스스럼없이
하면서도 바름에 대한 자각이 없다.
이해관계로 인하여 금방이라도 목숨이 끊어질
듯이 투쟁을 벌이는 중생의 그 이유라는 것은 대 자연의 섭리에 비교하면 참으로
가소로운 것이며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기가 그지없는 것인데도 그 사실을 쉽게 자각할
수 없는 것이 흔히 말하는 말법 시대이니 누구를 탓하랴.
제도는 인간의 속성인 이기심을 통제하기 위한 다수의 약속이고 서로간의 규약이다. 인간 내면에 깃들어 있을 순수 의식이 점점 메말라져 가는 말법 시대가 도래하다 보니 자신들이 임의로 설정한 정의마저 헌신짝 내버리듯이 하고 있으며 신의는 약에 쓸려고 하여도 귀한 시대로 변천되어간다. 배신 행위들이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한 시대가 되고 있는 것은 자연이 베풀어주는 일용한 곡식을 취한 인간의 에너지가 잘못 운용되는 것이니 이것은 결국 각자가 소유하고 다니는 생존이라는 제조 공장이 잘못 된 것과 같다.
한 조각의 빵 때문에 배고픔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에게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인도의 어느 철인 말처럼 중생은 곤경으로 인한
절박한 체험이 없으면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얄팍한 속성을 가지고 이 세상에
나왔기에 구제를 받아야만 될 어려운 물건인 모양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동업 중생
중에는 존재 의미가 지극히 미미해 보이는 길가의 풀 한 포기도 각기 그 소명을 다하는데
이성을 가진 인간은 이기심의 노예가 되어 제 소견에 차지 않으면 반드시 구분하고
부정하는 성향이 있어 극렬한 투쟁을 벌이는 본능을 쉽사리 내려놓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 대 자연의 섭리는 덜된 속성이 이 세상을 영속적으로 지배하지 못하도록
존엄한 존재라고 칭하는 인간마저도 반드시 생·멸을 겪어야 하는 윤회의 틀로 덧
씌워 놓았을 것이다.
존재의 본성을 잘 알지 못하기에 탐하고 탓하는 이기적인 성향을 가진 중생이 마지막으로 갈 곳은 무위법계의 한 분야에 귀착되는 것뿐이다. 그곳은 살았을 때 남겨놓은 그 흔적의 공과를 걸머지고 갈 수밖에 없는 숙명의 길이다. 이런 냉엄한 존재의 질서를 살아 있을 때 하루라도 더 일찍 깨우쳐 아는 것 그것 자체가 지고한 대복을 만난 것이다. 왜냐면 인간은 죽을 때 살아서 누리던 그 모든 것을 전부 다 되돌려 주고 오직 죄업만 가져가야 되는 숙명에 걸려있기 때문이다.
오고 감은 자신이 지어놓은 업연의 화현이다. 자위하는 것으로부터도 자유스러움을 얻을 수 있는 동기가 도래한 찬이슬 나리는 이 가을에 작은 풀 한 포기의 강렬한 몸짓에서 인생의 이치를 비추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