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 맞이

 

<불교세계/2001.2月號, 풍경소리>

새 천년 첫날은 해운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부산 牛谷禪院에서 용맹정진으로 맞이하였다. 하얀 밤의 끝은 초하루 첫햇살이 늘 아름다운 해운대를 눈부신 허공 꽃으로 장엄한다. 신사년 초하루 태양은 지난밤 내내 심산유곡에 기대인 듯 유난히 붉고 선명한 자태로 대지를 밝히자 곧이어 인간의 시샘을 부른다. 지축을 울리며 하늘을 수놓는 선상의 축포, 오색연막으로 아침 바다를 누비는 요트 떼와 높푸르게 깨어난 새벽 하늘의 축하비행은 그대로가 본지풍광(本地風光)이다.

대망의 새 천년이 될 것임을 기대하였던 지난해 초 들뜬 꿈과는 달리 가슴에 품었던 소망들을 잠시 접어야만 했었다. 민초들은 뒤뚱거리는 나라사정으로 전전긍긍해 하는 심사에 묶여 세밑까지 떠밀려 왔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새해 새 희망을 담으려는 소박한 마음들을 저버리지 않았는지 지난 밤부터 꾸역꾸역 이곳 해운대로 밀려온 인파는 백사장과 동백섬을 가득 메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한여름을 멋들어지게 노래하다 생을 마감하는 매미는 어두운 땅속에서 일곱 번을 등이 터지고 피부 허물을 벗겨낸 결과이듯 오랜 관습에 찌들은 인간사 역시 제 분야를 총 망라하여 쓰디쓴 인고로서 대가를 지불해야만 새 시대에 부응할 수 있다. 위기로 여겨지는 총체적 불안감은 기회를 불러들이는 몸부림이듯 개인의 소슬한 마음들 역시 순환하는 자연의 섭리 위에 걸쳐진 한 토막의 인간사이기에 과거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쉽고 두렵지만 지금의 혼돈은 분명 새 지평을 여는 기미다.

인간사에서 획을 긋듯 극명한 모습으로 다가서는 변화의 물결은 새로운 정신세계를 태동시킬 것이다. 아울러 준비된 자(者)들에게는 그들의 시절이 도래하고 있다는 징후로 봐야 한다. 상(像)으로 세운 인위의 시대가 흘러가고 할 수 없어 무위로 다가온 참 시운은 무너지지 않을 성품의 터전에 심겨질 무심(無心) 씨앗을 품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여기 부산 우곡선원은 꿈을 찾아 산과 바다로 몰려나가지 않아도 항상 새 희망의 중심에 놓여있다. 불보살이 마련해준 천하명당에서 묵은해의 일몰과 함께 꼬박 밤을 새우는 용맹정진은 참선이 지향하는 성성한 정신으로 새해를 맞이하겠다는 야무진 각오도 한몫 하지만 옹골찬 기질의 배양으로 새 천년을 가슴에 가득 채우겠다는 야망이 더 크다. 그것은 이 몸에 의지하여 가 닿을 수 있는 무한세계로의 도전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한세계로 회귀하는 것은 원만한 지혜가 바탕이기 때문에 확고한 믿음과 의지 무너지지 않을 용기를 요구한다. 더불어 우곡선원의 공부 중 섣달 그믐밤의 정진은 불보살의 가피있어 어둡던 하늘이 열리고 닫힌 땅이 감응하여 동참자 모두의 가슴에 순연함이 뿌리 내려지길 발원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존재이치를 설법하여 좌선(坐禪)시키고 익은 열기로 무위법계를 열어 보일 때는 생사를 담보로 하는 긴박한 순간이 교차하기도 한다.

용맹정진의 본래 의미는 전도몽상에 젖어있는 중생으로부터 해방되어지는 바른길을 선택하는 간절한 염원이며, 피안의 세계가 있음을 분명히 믿는 불제자의 절절한 갈망이자 이생에 반드시 해탈하겠다는 진한 몸부림이다. 질긴 반연의 끈으로 묶여진 세속 잡사에서 한 발자국 벗어남이 고뇌와 혼절에 이르도록 험난한 단절임을 익히 알면서도 세모에 온갖 사연을 뿌리치고 내 안의 부처를 이루겠다고 몰려든 불심(佛心)은 참으로 갸륵하고 갸륵하다.

석가세존의 진리를 따라 힘겨운 용맹정진 수행 길에 동참하는 인연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조건적이며 최선을 다하는 일뿐이다. 그것은 정진에 지장을 초래하는 육신의 병통을 즉시 해결하는 것과 개개인의 경계를 살펴 업을 놓게 하는 것과 급격한 심신의 변화를 일으키는 동참자들에게 선정의 근을 심어 절호의 순간을 놓치지 않아야 하는 전광석화 같은 판단과 행동을 요구한다.

아(我)에 묶여 지내는 범부중생의 마음을 정도로 옮겨놓는 일은 태산을 뜯어 옮기는 것 보다 더 어려운 과업이다. 집착의 굳은 자리가 움찔거리면 적법한 이치를 설하고 상생(相生)의 가치관을 일깨워 주고 무심 씨앗을 심는 순간은 고불고조(古佛古祖)와도 상의할 수 없는 고독한 지존이 되어야 한다.

중생은 이치를 올바로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여 스스로 분별에 묶인 어둡고 여린 마음들이다. 그것은 산발한 머리카락처럼 흐트러진 마음모습이기에 묵은 관행으로는 날뛰는 마음이 잘 다스려지지 않는다. 제방의 수행풍토는 대다수 죽은 화두(話頭)와 씨름하거나 별 요상스런 기법을 말하지만 그것은 모두 집안의 일이다. 문 열고 나오면 힘들여 다스렸다고 생각하던 마음이 팔풍에 미친 말처럼 날뛰는가 하면 혹간에는 앉아서 즐긴 무기(無記)를 못 잊어 더 깊은 현실의 골을 파기 일쑤다.

나는 선가의 홀로 앉은 면벽 좌선을 참선 공부의 근간으로 여기는 관행적 행위 그 자체를 매우 딱한 처사로 여긴다. 마음은 무위의 집이다. 법[氣]운용으로 싹을 틔우고 묘목을 기르듯이 직접 다가간 농사법이 아니고서는 수행연륜에 아무 상관없이 도를 이루기는 고사하고 외고집과 아상만 높인 정신 결핍자가 되기 알맞다. 더더구나 맹목적인 종교관행에 의존하는 제 수행은 무거운 바위로 개개인의 심성을 꼼짝달싹 못하게 눌러놓는 것이며 다 함께 손잡고 또다시 윤회하자는 발버둥으로 본다. 활인검(活人劍)을 자재로 쓸 줄 아는 선지식 인연이 없고서는 백년수행도 기껏 이 구멍에서 저 구멍으로 옮겨간 것에 불과하다.

해탈의 밑거름인 지혜는 평정되고 맑아진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정신에너지이듯 잘 정비된 선법에 의거한 용맹정진은 오랜 세월동안 평정시켜야 될 수많은 깨달음의 과제를 단 시간에 수료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맑고 힘있는 산수(山水)가 감응하는 도량에서 사부대중이 몰아치는 정진수행은 죽은 관습의 굴레를 벗어버리는 한마당 대 탈출극과 같다. 또한 과·부족한 개인의 성향을 교류하여 한 생에 백 생의 효력을 볼 수 있는 나눔의 장이자 평정을 위한 지중한 방편인 것이다.

자유로의 여정은 내 안에 집을 짓지 않는 대인의 특권이다. 그것은 뇌리로 익힌 지식과 죽은 관행에 젖은 수행상과 권세와 명리에 묶이지 않는 마음만을 말한다.

여명은 깊고 어둡다. 그러나 새 천년 새날은 해맑게 열리듯 상생의 이치를 담은 우곡(牛谷)의 선법(禪法)이 머지않아 만 중생을 해탈의 문으로 인도하는 유일무이한 장명등(長明燈)이 될 것이다. 새 아침이다. 나와 함께 용맹정진으로 하얀 밤을 지새운 우곡학인 여러분과 불타 오르듯한 불국정토의 원(願)에 동참해준 유·무정 모두에게 세심(洗心)으로 맞이한 신사년 새 날을 헌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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