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정신개발론
<불교세계/2001.5月號, 풍경소리>
인류역사 이래로 지금처럼 편리한 물질혜택을 누린 바도 없거니와 오랫동안 평화가 유지된 세상은 없었다. 특히 지금 우리 앞에 다가선 새 천년은 여러 분야에서 꿈을 이룰 수 있는 희망이 넘쳐 난다. 이 좋은 첨단시대를 타고난 것은 각자의 지복(至福)이기도 하지만 열린 정보세상으로 말미암아 더욱 평안을 희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사유하는 동물이다. 물 흐르듯 사유하는 인간은 태생적으로 물질과 정신 두 가지의 가치관을 충족시키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것 중에 정신이란 절대세계를 확립하려는 본능은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항상 변모하는 물질로서는 마음의 안정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처럼 인간은 물질을 우선한 가치관으로는 참된 인생을 구축할 수 없다는 천리(天理)를 꿰고 있으면서도 허망한 물질에 속아 자유롭지 못하며, 본래에 귀착할 수 없어 항상 갈애를 느끼고 허둥거린다.
이생에서 진정한 자유를 보장 받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길인 열반의 세계는 물질적 가치관에 입각한 근성을 짊어지고서는 절대로 접근할 수 없는 정신계의 극점이며 주인자리다. 고뇌와 갈등이 없는 세계인 주인자리에 들어가려는 인간의 몸부림은 순수자연으로 회귀코자 하는 귀소본능과 성주괴공(成住壞空)하는 섭리에 순응코자하는 정신인자의 위대성 때문이다. 그러나 물질계의 피조물인 이 몸에 의지한 생존본능과 속진 세상을 건너온 잔재인 감정적 의식을 탈피하지 못하고는 원래 주인을 되찾아 온전한 마음의 평정을 얻기란 불가하다. 오욕칠정에 길들여진 사바세계 논리에서 해방되어 지는 법은 절대세계인 무심을 예감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로부터 우주관과 나의 존재,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가에 대하여 깊이 사유하는 대 분심이 태동하여야만 진리에 눈을 뜬 참 사람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첨단의 물질문명을 이끌고 21세기로 들어선 지금 세상은 산술적 계산으로는 그 향방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급속히 변모하고 있다. 고기능과 합리성을 두루 겸비한 물질계는 시시각각으로 발전하고 있으나 반하여 인간의 정신 역량은 기계적 소양을 제외하면 오히려 퇴행의 길을 걷고 있다. 모든 면에서 외적으로는 향상된 모습들이지만 정신력은 오히려 퇴보하여 예절과 공동체 의식이 희박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으며, 비례하여 각종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성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편리한 세상에 길들여진 인간의 허약함은 물질 편린이 빚어낸 불균형의 한 단면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현대인의 심신(心身) 구조는 더욱 허술하여 첨단의술도 어쩔 수 없는 정신 바이러스를 불러들일 것이다.
존재는 유·무위의 양립이며 그 절반인 물질적 충족만으로는 온전한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것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숙명이다. 삶의 불균형적인 요소를 배제할 당면 문제는 무엇보다 급격히 발전하는 물질계에 비교하여 현격히 뒤떨어진 정신계에 건전한 가치관을 불어넣어 보다 균형잡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비전과 방편을 적절히 구사하는 선지식이 더 많이 요구될 것이다.
인간의 정신세계를 계도하는 주체는 국가적인 전문 인성교육기관 보다는 각종 종교단체들이 더욱 열성이었으며 두각을 드러내 보였다. 제 종교는 그들의 이념과 사상을 인간의 절대적 가치관으로 매김하였고 그것만이 진리라는 기치로서 물질시대를 선도했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모순점을 안고 있는 종교 논리이었지만 한 시대 정신계의 주도적 위치를 선점하는 힘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절대자와 신비주의로 혹세무민을 꾀하는 종교는 그 의미가 급락하여 인간의 마음을 다듬는 숭고한 역할에서 도태되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순수성을 일깨우고 배양시켜야 할 본래의 종교목적을 상실하고 맹신과 기복을 주창하는 낮은 인성으로서는 21세기 첨단시대와 함께 할 수 없는 운명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인간 생존의 당위성인 첨단시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종교는 진리의 본질인 자연 철학과 동떨어진 것이며 더불어 살아갈 세계관이 결여된 어두운 시대의 불가피한 민족주의 논리가 강하게 어필될 수밖에 없었던 한 시대의 피조물이었던 것이다. 목전에 도래한 21세기는 내세관에만 매달린 종교논리와 신비주의, 형이상학적인 언어 유희를 일삼는 행위는 사회로부터 당연히 격리될 것이지만 문제는 환부를 도려낸 정신세계를 치유하고 건전한 인성을 일깨우고 고양시킬 역량을 갖춘 사회단체가 없다는데 있다.
지금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습득한
고도의 지식체계와는 아무 상관없이 진리의 척도는 특이한 기량과 운명의 예시 또는
무슨 신과의 원만한 교감을 위하는 것으로 여기는 하찮은 의식에 지나지 않는다.
진리는 누구의 말이거나 교리, 역사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자연의 이치를 올바로
깨닫기 위한 가르침이며 실천수행인 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십년 가뭄에 콩
종자보다 더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맹신과 환, 기복에 매달린 제 종교인들은 편협하고
낮은 의식으로 전락되어 진리의 바탕인 순수성은커녕 종교를 경원시하는 비 종교인
보다 훨씬 더 의식수준이 낮고 어둡다. 또, 스스로 탈 종교인이라 외치며 무슨 도법과
명상이라는 정신수련 기법에 도취된 자들은 오감의 흐름을 쫓고 느낌과 주시로서
번뇌[에고]를 극복할 것이라고 몸부림치지만 합리적인 선법(禪法)에 입각한 심신수련이
아니고는 만상을 통찰할 정신에너지 배양도 불가하거니와 피안의 세계 또한 없다.
자리이타(自利利他)할 그러므로 원만구족한 지혜를 갖추어 내적 평정을 기할 수만 있다면 마음공부의 방법과 이름은 그 어떤 것이라도 무관하다. 기존의 종교철학이든 아니면 별 용천한다는 도술이나 기법도 아무 상관없다. 그러나 깨우침으로서 만이 완전한 안정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인간사 원래 모습이고 천지이치 또한 그러하기에 온전한 인간이라면 비과학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종교행위와 환(幻)에 묶이거나 죽은 논리는 두 번다시 되뇌이지 않는다.
삼세(三世)가 끊어진바 없다. 현재가 분명하면 과거, 미래세계를 거울들여다 보듯이 훤히 알 수 있는 것이 지혜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종교관에서 탈피하고 진정한 자산인 지혜와 흩어지지 않을 마음의 평안을 찾고자 온갖 기법과 명상을 쫓아 여기저기 기웃거리지만 애꿎은 짚신만 닳을 뿐이다.
일생에서 가장 큰 죄업은 뭐니 뭐니해도 인생을 낭비한 죄가 가장 크다. 주인공을 되찾고자 한 심신수행이 오히려 돌아오지 못할 외도(外道), 사도(邪道)에 빠져 헤매는 것은 한번뿐인 인생을 허비하는 것이며 지금의 이 첨단시대마저 함께 하지 못하는 대단히 불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영생의 삶으로 인도하는 참 법은 이 세상이 탄생될 때부터 있었지만 육경(六境)에 때가 묻어 진실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중생이다.
봄은 누가 부르지 않았어도 시절 따라 스스로 닿아오듯 우리와 마주한 21세기는 지난 속세상의 우등생들 교과목으로 인식되었던 독소적이고 편협한 종교관이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그렇다면 첨단시대를 계도할 정신력은 육신과 정신을 길들이는 특이한 행위와 기법에서 빌어오는 것이거나 구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극한 과학인 인과(因果)에 대한 믿음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려는 당찬 용기로부터 지혜의 불꽃이 솟아나듯 지금 우리가 숨쉬고 있는 이세상의 근본인 정신세계의 가치관을 올바로 세우려는 원이 진정한 자비이며 참 삶의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