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과
삶
'나물 먹고 물마시고 하늘보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요만하면 족하리.' 문득 안빈낙도를 읊조렸던 옛 철인의 시구 한 토막이 가슴에 박힌다. 첨단도 모자라 최첨단을 부르짖으며 미친 듯이 내달리는 현대사의 수레바퀴가 나에게는 버겁거니와 물러설 곳 없이 몰아세우는 매몰찬 현실도 역겹다.
외환위기와 구조조정이라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은 경제거품을 빼고 철저한 약육강식의 생존질서를 요구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아 앞으로 나 같은 민초들은 살기가 더욱 힘들어지게 되었다. 나 역시 가진것 없고 보잘것 없어 작은 세상 일렁거림에도 조각배처럼 흔들거리느라 갈피를 못잡을 지경이고 천근같은 몸과 마음은 늘 바쁘기만 하다.
지금처럼 추락하는 대세는 능히 잘 안다는 것들도 별 소용이 닿지 않는다. 연 사흘동안 지방을 뛰어다닌 출장의 결과는 딱 부러지게 이거다 할 결론도 없이 출장가방을 둘러메고 급히 김해공항으로 갈 일이 생겼다. 부산은 내가 태어난 곳에서 이웃한 곳이기에 비교적 도로감각이 밝은 편이다. 서면에서 공항행 노선버스를 타도 별 무리없이 닿을 수 있는 거리인데도 막상 도로에 나서니 막막하여 습관적으로 택시를 탔다.
차바퀴가 구르면서 내 처신을 나무라는 소리가 들린다. 택시기사는 '아무리 어려운 세상이지만 비행기 타러 가는 사람이 사전에 택시요금을 왜 묻느냐'는 것이다. '형색을 보아하니 사업하는 사람같은데 쩨쩨하게 택시요금 겁내면서 다니느냐'는 일침과 '요즘은 불경기라서 그럴 것이다'라는 자문자답이 영락없는 점쟁이다.
단돈 팔백원만 주면 일억짜리 직행버스를 타고 내가 좋아하는 낙동강을 건널 때면 가을이 깃든 강변풍경을 감상하면서 공항까지 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택시를 탄 것에 후회막급이지만 별수 없이 되고 말았다. 평소에 버스를 타는데 습관이 되어있지 않아 우왕좌왕하다 공항까지의 요금을 먼저 물어보고 택시를 타게 된 것이라고 기사에게 이실직고하여도 그는 계속 빈정거렸다. 그는 나와 엇비슷한 나이와 억양이 아무래도 이곳 토박이라는 느낌이 들어 대뜸 '당신 고향이 어디 아니냐'고 했더니 짐작한대로 저기 낙동강 건너라는 것이다. 고향족보를 들이대니 한사람 건너 그이가 자기하고 절친한 친구란다. 제대로 임자를 만난 셈이다. 옳거니 싶어 '산 좋고 물 맑은 고향에서 농사나 짓고 살지 이 나이에 핸들을 붙들고 거리에서 사느냐'고 몰아붙이니 뒷머리를 긁적거리면서 '그러게 요즘 정치판은 수백억 정도는 게눈 감추듯이 꿀꺽하는데 택시운전해서 무슨 큰 영화를 누릴 거라고 목숨을 길거리에 내맡기고 사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껄끄럽던 농담이 미쳐 돌아가는 사회정세때문에 분위기가 심각해지고 말았다. 택시요금으로 농담을 걸어오는 기사의 말이 괘씸하여 던진 시국이야기가 결국 각자의 일이 되고만 셈이다. 낙동강 다리를 건너면서 나도 저기 푸른 강물건너에 있는 김해가 고향이라고 하였더니 휙 돌아보면서 "아 그러냐", 죽마고우를 만난 듯이 반가워하면서 '왠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는 등의 또, 그놈의 점쟁이 기질이 튀어나오더니 '서울에서 무슨 일 하느냐'는 등을 묻고서는 내 동의도 없이 차를 낙동강 제방 위로 휙 몰고 올라간다. 여기 잠깐 세워놓고 용무 좀 보고 가자고 한다. 이런 것은 내 기질에 딱 맞는데 까짓 비행기 시간이 대수인가.
높푸른 가을하늘 머금은 낙동강과 넓은 강변은 갈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낙동강은 언제 보아도 고즈넉한 풍경과 아련한 흙 냄새가 어우러져 있어 있는 그대로 정겹다. 갑자기 옛 친구를 만난 듯이 격의없는 사이가 된 택시기사는 담뱃불을 붙여 물고 제방 뚝 위에 퍼져앉아 자기도 일하다 말고 이렇게 해보기는 처음이란다. 낙동강 제방 위에서 만감이 교차하는 동병상련을 앓는 일이 전부인데 그것이 그저 편하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무르익어 시골에서 농사일 거들고 나무하면서 학교 다니던 옛 기억들이 두 사람 사이에 한치 오차도 없이 딱 맞아떨어지는 일색이다. 그런데 지금 자신과는 차이점이 많다는 것이다. 나는 무역회사를 경영하고 세계 여행도 많이 다닐 수 있지 않느냐고 하더니 갑자기 그의 시선이 흐르는 강물에 떠내려간다. 난 머리에 먹물 조금 더 들인 업으로 타향에서 고향을 그리면서 사는 팔자가 그리 자랑스러울 것이 없다는 것과 잘 안다는 고질병으로 온 천지 반연(絆緣)을 지어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니는 신세가 되었다는 푸념을 늘어놓고 나니 결국 낙동강에서 그와 눈물짓는 오후를 보내게 되었다.
당신 말대로 가방 끈이 짧은 복으로 재수 좋은 날이면 하루 한두번씩 고향 땅 언저리라도 밟으면서 살 수 있으니 그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냐. 감투 높고 돈 많다고 다 행복하던가. 집착이 남아 있으면 많고 귀한 것 쌓고 지키는데 바빠 참 인생은 없다. 썩을 몸뚱어리에 좋은 옷 입히고 맛난 음식 골라 먹이며 지극정성 기울일수록 고통스런 병마만 불러들일텐데 그게 뭔 대수냐는 자문자답에 그는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단다. 내친김에 잘 먹고 놀린 몸뚱어리는 죽을 때 몹쓸 병에 걸리기 십상이고 죽음에 임박해서는 편한 습(習)이 떨어지지 않아 한(恨)을 남긴다는 것과 애지중지하던 이승의 재물을 단 한줌이라도 쥐고 저승사자 따라간 인간은 아무도 없다는 말을 하고 나니 나도 아랫배가 후련하였다.
지금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 하다가 이 세상 하직할 때는 당신이나 나나 빈손일 것인데 뭘 그리 억울해 할게 있겠느냐. 당신 차 얻어 타는 나도 찢어지는 심사는 마찬가지다. 그것은 잘 알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앞세운 고질병 때문이었다. '이제 다 접고 가없는 자연에 기대어 농사나 짓고 살면 여한이 없을 것 같다'고 하였더니 그건 자기와 같은 생각이란다. 낙동강 제방 위에서 뜻 맞은 동지를 얻은 기쁨에 아는 것을 앞세워 스스로 묶이는 어리석었던 내 삶의 족적을 피력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