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를 구원하는 지혜, 참선
<불교세계/2001.9月號, 풍경소리>
최근 사회 여러 분야에서 참선(參禪)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종전에는 개인의 심신수행에만 국한되었던 참선이 현실탈출이 아닌 보편적인 일상에서 청정한 지혜를 득하고 구현하는 것임을 올바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껏 불교인들이 지켜왔고 발전시켜 온 선(禪)문화가 종교의 틀을 벗어나 사회저변 여러 분야에서 대중화가 되는 현상은 인류사회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물질만능 풍조에 시달린 현대인들에게 단순하고 명쾌한 선적사유체계는 긍정적이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시키는 가장 이상적인 정신문화이자 곧 일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현대문명에 지친 인류를 구호하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
선(禪)은 우주와 인생에 관한 의문을 해결하려는 고대 인도인들의 끈질긴 사유가 단초이며 인도요가로부터 유래한다. 요가를 인도의 선(禪)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은 정신과 육체를 이원론적으로 이해하며 육체의 고행을 통해 정신적인 해방을 맞이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는 요가를 비롯한 당시의 여러 심신수행이 육체에 고통을 가해 번뇌를 억제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육체에 고통을 주지 않고 해탈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을 찾았던 것이다. 6년 고행을 버리고 평상의 생활로 복귀한 후 빛나는 새벽 별을 보고 우주와 내가 원래 하나였던 이치를 깨달았던 것이 오늘날의 불교근원이자 참선법의 기원이다. 깨달음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심성영역이지만 깨달음의 대상은 생성소멸하며 연기하는 질량불변의 티끌먼지 같은 우주의 행성 중 하나였다. 따라서 선(禪)의 대상은 물질이고 본성은 상대법으로부터 놓여나는 해방론이다. 그러므로 선적사유체계를 갖는 깨우침은 분별시비 취사선택하는 인간의 이성이 우주만법과 일체화가 되는 순간이다. 대법(對法)을 일체화시킨 선(禪)은 교외별전(敎外別傳) 불립문자(不立文字) 언어도단(言語道斷) 심행처멸(心行處滅)이라 하여 말과 문자 이해력만으로는 참선의 당처인 해탈열반 경지를 모두다 전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국의 선법(禪法)은 선교(禪敎) 일체사상 바탕 위에서 간화선을 앞세우지만 일체법에 자유로운 선의 본질은 종교관마저 초월한 경지이기에 해탈진리 추구가 목적인 종교관에 얽매인 참선은 있을 수 없다. 참선은 자각의 지혜이며, 불연에 의한 이심전심으로 터득한 바를 스스로 실행하는 능동적인 심신수련법이기에 첨단문명시대를 이끄는 정신문화로 자리 매김 될 가능성이 크다. 일상에서 선법이 구현되는 현장은 참선 수행도량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본원의 좌선수행에서 호흡과 실상관법은 일상이며 단순하고 소박한 의복, 담백하고 절제된 음식과 차[茶],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재적소에 기민한 태도는 고귀한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 복된 삶의 지혜다. 선가의 참선이 대중화되는 과정에 여러 형태로 변형된 모습이 보이는 것은 정법과 인연이 먼 탓도 있지만 비인간적인 중생습관으로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가 기존의 종교관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생사윤회를 거듭하는 인간사에 대한 대 의심과 해탈진리에 대한 믿음이 없는 참선법 터득은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일제처소에 자유로운 선적사유체계도 불가능하다.
서구사회에서 참선에 대한 관심도가 고조되는 것은 그들이 현대문명을 주도하였지만 역설적으로 이기적인 사회증후군과 황폐화된 정신세계에 대한 위기의식에서 기인한다. 그들은 산업발전과 자본주의적 가치관이 결코 행복의 척도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으며 자신들이 정신과 육신의 불균형상태에 빠져있음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1980년대 한국의 참선법이 그들에게 대단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티베트불교 지도자 달라이라마 역시 미국으로 건너가 밀교의 명상법을 전파한 것도 이즈음이다. 미국의 저명한 배우 리처드 기어는 달라이라마의 명상에 심취하여 티베트에서 명상수행을 한 적도 있고 애플의 창시자 스티브잡스는 명상에 심취한 스타트업 기업가였다.
한국불교사에서 가장 신선하고 획기적인 대중사업으로 자리 잡아 국비가 지원되는 외국인 템플스테이 기원은 사단법인 우곡선원이다. 2001년 정부초청 외국인 석·박사 국비장학생들에게 참선체험을 시켜 전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본원의 참선법은 선(禪)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국. 내외에 신선한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본원이 국내최초로 시연한 템플스테이는 서구인들의 구원종교관은 그냥 놓아 버려도 아무 상관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또 본원에서 실시한 교원직무연수와 청소년 인성교육은 참선이 존중과 배려를 실천하는 인성교육의 대안이자 영재를 탄생시키는 결정적 요인임을 여러 사례로 증명되었다. 오늘날 명상이라는 대중적 브랜드의 근원은 불가의 낮은 참선법이며 선법은 요가나 스트레칭 같은 감성적 기법이 아닌 보고 듣고 맛보면서 찌든 오랜 마음의 때를 씻어내어 지혜를 밝히고 운명을 재창조하는 인생의 묘약과 다르지 않다.
참선수행은 인종과 이념 종교를 초월하여 문명사적으로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참선수행은 정신과 육체의 균형을 잡아주는 정교한 테크닉이며, 둘째 인성이 자연친화적 사고를 함으로써 인간 본래의 순수성을 되찾게 하며, 셋째 절약과 검소 담백한 의식주로 삶의 여백을 가져 치열한 생존경쟁보다 화목하게 사는 사회공동체의 이점을 깨닫게 하며, 넷째 근검절약하며 소욕지족으로 안락하게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함으로써 자연환경회복에 기여한다.
서양에서 한때 물질문명을 거부하는 히피운동이 일어났던 것은 편리한 현대문명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는 철학의 부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서구사회의 선[ZEN] 열풍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신비감을 추구하는 오리엔탈리즘 또는 식상한 물질문명의 저편이 아니라 순수를 그리워하는 인간본능이 빚어낸 결과이며 건전한 삶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문명사적 현상이다.
참선법은 잡다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고뇌하는 마음의 잔재를 씻어 살고 죽음이 없는 일체만법의 본래모습과 같은 순수세계로 회귀하는 인생의 나침판이다. 선(禪)적 사유체계는 균형과 조화이기에 첨단문명에 지친 현대인들의 정신세계를 한 단계 성숙시키고 물질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탐욕과 근심을 유발하는 원인을 줄이고 합리적이고 긍정적인 삶을 구축하는데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본원은 일상에서 누구나 참선수행을 할 수 있도록 종교와 이념, 사상을 초월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생활참선프로그램을 계발하여 단순하고 명쾌한 정신력으로 자기 자신을 건사하고 선(禪)이 인류를 구하는 최후의 지혜임을 증명하는 그날까지 쉼없이 정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