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달마, 그는 누구인가.

 

달마대사(達磨大師)는 인도사람으로 석가세존의 28대 제자이고 중국 선종(禪宗)의 시조(始祖)다. 달마는 통달하고 크다는 뜻이며 지혜롭다는 뜻의 “보리달마”라고도 한다. 달마대사가 직접 저술하였다는 혈맥론(血脈論)은 대승불교의 중심사상인 마음에 관해서 문답 형식으로 전개하고 있다. 교리나 문자가 아닌 마음을 직관하여 깨달음을 얻는 참 선법과 양나라 황제 무제와의 불사공덕에 관한 일화를 통하여 해탈을 위한 정법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시사하고 있다.

달마대사로부터 시작된 중국의 선종은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달음의 묘경을 터득하는 법으로서 우리나라는 신라말에 참 선법 종지를 받드는 구산선문(九山禪門)이 설립되었다. 이때의 아홉 선문은 희양산문, 실상산문, 가지산문, 사굴산문, 동리산문, 성주산문, 사자산문, 봉림산문, 수미산문이다.

달마대사의 아버지는 남인도 향지국의 왕으로 불법(佛法)을 숭상하였고, 달마대사는 세 아들 중 막내로서 ‘보리다라’라고 불리었다. 그 무렵 인도 최고의 도인이라 칭송받던 반야다라 존자가 향지국 왕과 교분이 있어 보리다라 왕자의 총명함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훗날 향지국왕이 세상을 떠나자 모든 사람들이 통곡을 하였으나 보리다라 만은 영구 앞에서 선정에 들어 칠일만에 깨어나는 것을 보고 출가를 권유, 반야다라 존자의 제자가 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이것은 선정삼매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7일 동안의 부모상 앞에서 면벽좌선 하듯 앉아있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초상을 치르는 7일 동안 선정삼매에 몰입된 것처럼 마음의 동요가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예의와 부끄러움, 겸손하지 않은 참 사람과 깨달음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보리달마는 그의 스승 반야다라존자 입멸 68년 후, 서기 527년 중국 광주에 도착, 불심천자라는 양(梁)나라 무제와의 만남에서 3천개의 절 짓는 불사(佛事)는 아무런 공덕이 되지 못한다고 직언하여 무제로부터 수모를 겪었다. 절 많이 짓는 것이 불사공덕이 아니라는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황제를 제도할 수 없어 양자강을 건너 숭산의 동굴에서 9년 동안 면벽하며 때를 기다리다 좌방을 끊으라는 법문에 결기를 보인 신광(혜가)에게 참 선법을 전수한 것이 6조 혜능에 이르러 꽃을 피웠다. 달마대사의 9년 면벽이 깨달음을 얻는 수행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은 해탈법의 종지와 해탈자의 시대적 소임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지의 소산이다. 달마대사가 절집이나 키우는 타락한 중국 불교시대를 종식시키고 마음과 마음으로 전해지는 선법의 씨앗을 신광(혜가)에게 심으려 하였으나 9년 전에는 시운이 아니었던 것이다. 햇살이 따스한 봄날에 씨앗을 파종해야 하듯 심법 또한 천기와 인기, 지기가 일치하는 시절인연이 닿아야만 쉬 뜻을 이룰 수 있다.

담림의 “약변대승입도사행론서”에 의하면 스승 보리달마의 선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도(道)를 통하는 여러 방법 중에서 보편적으로 원리적 방법인 이입(理入)과 실천적인 방법 행입(行入: ) 2가지로 귀결된다. '理'에서 들어가는 것은 경전으로 근본정신을 파악하고 무릇 살아 있는 것 모두의 평등한 본성임을 관(觀)하여 자신과 상대가 둘이 아님을 깨달아 해탈이 되어지는 것을 말한다. ‘行’으로부터 들어가는 것은 다음의 4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보원행(報怨行)은 현세의 여러 가지 원망과 증오 및 고통과 번뇌는 모두 자신의 과거 업보라고 보아 인내하며 인간 본래의 도리에 힘쓰는 것, 둘째 수연행(隨緣行)이라고 하여 사람은 인연에 따라 괴로움과 즐거움을 경험하게 되지만 그러한 것들은 모두 업과로서 인연이 다하면 無로 되돌아가는 것이기에 순리와 역리의 인연 조화로 道에 들어가는 것, 셋째 무소구행(無所求行)은 삶의 가치를 밖에서 추구하고 집착하는 것을 그치고 없애는데 철저히 하고자 하는 것, 넷째 칭법행(稱法行)은 일체중생이 모두 본래 청정하다고 하는 이법(理法) 원리적인 방법을 믿고 바라밀을 실천하되 바라밀을 닦는 것에도 머무르지 않고, 얻을 바 없는 무소득심을 확립하는 것이다. 행법을 요약하면 첫째 보원행은 원망을 지었으니 억울함을 참고, 둘째 수연행은 무슨 일이든 인연으로 받아들이며, 셋째 무소구행은 사물을 탐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말고, 넷째 칭법행은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자는 것이 달마대사의 실천적 수행법이다.

불교설화에 의하면 향지국의 왕자였던 달마대사는 원래 미남자였다고 한다. 중국의 어느 마을에 못된 짓을 하는 이무기를 제도하는 과정에서 신통력으로 잠시 몸을 벗어 놓고 이무기를 다른 곳에 옮기고 온 사이에 자신의 잘생긴 몸은 사라지고 못생긴 중국인의 몸뚱이만 있어 할 수 없이 그러한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달마대사가 유체이탈 당시 신선들에게 항상 따돌림을 받던 못생긴 신선하나가 잘생긴 달마대사의 몸을 발견하고는 자신의 몸을 벗어 놓고 달마대사의 몸과 바꾸어 달아나버렸기에 달마대사의 모습이 그렇다는 종교 설화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신비롭게 여기는 유체이탈은 영혼이 육신에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전기에너지에 의하여 심신을 구성하는 원자에너지가 유동화가 되어 시공간을 초월하는 시쳇말로 파동의 양자역학이 실증되었던 내 체험을 본원 유튜브에 상세히 기술해 놓았다. 교법이 지리멸렬한 당시 중국불교에 참 선법을 전수한 달마대사의 신통 자제한 법력을 맹목적으로 흠모하고 그 힘을 빌려 액운을 피하려는 말세 중생들의 무지로 달마대사를 마치 주술행위의 주인공처럼 묘사하는 것은 해탈자의 정체성과 시대적 소임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며 불교역사에 대한 모독이다.

불심천자 양나라 무제와 달마대사의 참선법을 부정한 인연상관 역사를 간략히 소개하면, 양나라(서기 502년~557년)는 중국 남북조 시대 남조의 3번째 왕조다. 제나라가 폭정으로 멸망하고 양나라가 세워지자 무제(武帝)는 초대 황제로 추앙되어 48년 제위 중반기까지 불교를 장려하며 태평성대를 이룬 명군으로 칭송을 받았다. 또한 그의 장남인 소명태자는 금강경을 32구절로 분절하여 금강경을 누구나 쉽게 접하도록 하였다. 금강반야바라밀경은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은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느냐는 수보리의 물음에 부처님의 답변형식을 빌은 경전으로서 ‘번뇌를 없애고 피안에 이르게 하는 경전’이라고 풀이하지만 반야바라밀, 즉 지혜를 쌓아 해탈세계로 건너가려는 그 마음도 집착이니 금강석이 강철을 자르듯 피안을 염원하는 그 마음마저 끊어내라는 단호한 가르침이다. 금강경의 핵심은 탐착을 버린 무아(無我)가 곧 진아(眞我)임을 깨닫는 것이 진리를 터득한 것이고 피안의 삶이라는 아주 간단하고 단순한 경전이다.

소명태자가 금강경을 32구절로 분절한 것이 공적이라고 평하지만 뜻을 모르고 입으로 읊조리는 독경으로 치부되게 한 것은 실책이었고 그는 31살에 요절하였다. 성군으로 칭송받던 양무제도 후반에는 황제의 직위를 버리고 여러번 동태사로 출가를 시도하였다. 그럴 때마다 신하들은 절에 막대한 돈을 주고 무제를 되찾아 오는 어처구니없는 행위로 말미암아 국가 기강이 무너지고 나라가 궁핍해져 서기 548년 후경이 반란을 일으켜 무제를 죽였고 지리멸렬하던 양나라는 수나라에 병합되고 말았다. 불심천자라던 양나라 무제의 3천 절 불사가 불교중흥 정신이고 불보살의 가호를 받는 공덕이라면 그의 아들 소명태자는 말할 것도 없고 불교국가였던 양나라와 무제의 비참한 종말은 우리의 신라와 고려 말기처럼 불교사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불도가 인간사에서 유일무이한 인간완성의 길이지만 불교를 빙자하여 대중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혹세무민한 죄업만큼 인과응보가 따르는 진실만큼은 변함이 없다. 업보 중생의 미혹한 영혼을 일깨우는 불법(佛法)이 무지몽매한 군상들의 구미에 영합하고 위무하는 산중기생들 영업 도구로 전락한 말법시대도 안타깝지만 치열하게 도는 닦지 않고 영혼 장사에 福 구하는 것이 당연한 풍조와 양무제의 그릇된 불교가 겹치는 세태를 혈맥론 해제에 앞서 간단히 서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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