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궤도를 뛰어 넘어 저 넓은 우주 속으로
1. 이야기
북인도 사받티(Savatthi)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기 위해 찾아오는 큰 수행처가 있었습니다.
한 젊은이가 매일 저녁 부처님의 설법을 듣기 위해서 찾아 왔습니다. 여러 해 동안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었지만 결코 그 가르침을 실천하지는 못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젊은이는 평상시보다 빨리 오게 되었는데 부처님 혼자임을 알고 다가가
물었습니다.
“저에게 마음 속에서 자꾸 일어나는 의심이 있습니다.”
“그래, 법(法)의 실천에서는 어떠한 의심도 없어야 한다. 의심이 있다면 분명히
밝혀야 한다. 질문 해보라.”
“저는 여러 해 동안 수행센터에 찾아 왔습니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여러
해 동안 당신을 찾아 왔고, 제가 알기로는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궁극의 자리에
분명히 도달했습니다. 아주 명백하게 그들은 완전한 자유를 얻었습니다. 또 몇몇
사람들은 그들의 삶에 있어 중요한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제 자신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은 전과 다를 바가 없으며 심지어 더욱 나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고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사람들은
그처럼 위대한 사람, 완전히 깨달은 자비로운 사람, 당신에게로 옵니다. 그들 모두를
위해 왜 당신의 힘과 자비를 사용하지 않습니까?”
부처님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젊은이여, 그대는 어디서 사는가? 그대의 국적은 어디인가?”
“저는 여기 코살라(Kosala)국의 수도 시받티에서 삽니다.”
“그런데 그대의 얼굴을 보면 이 나라 사람이 아닌 것 같다.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저는 마가다(Magadha)국의 수도 라자가하(Rajagaha)에서 왔습니다. 몇 년 전부터
사받티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대는 라자가하와는 이제 모든 관계를 끊었는가?”
“아니오. 아직 가족들과 친구들이 라자가하에 있습니다. 저는 거기서 장사를 했습니다.”
“그러면 종종 라자가하를 방문하는가?”
“그렇습니다. 해마다 저는 라자가하를 갔다가 다시 사받티로 돌아옵니다.”
“그러면 가고 오는 길들을 잘 알고 있는가? ”
“저는 그 길을 완전히 알고 있습니다. 수차에 걸쳐 그 길을 갔기 때문에 눈을 가리고도
길을 갈 수 있다고 자부할 정도입니다.”
“라자가하에 살고 있는 친구들도 그대가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가”
그리고 종종 그대가 라자가하를 방문하고 돌아서면, 그대가 그 길들을 잘 안다고
친구들도 분명하게 알고 있는가?”
“그렇습니다. 나와 친한 모든 사람들은 종종 제가 라자가하에 가고 그 길을 완전히
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 중 몇 사람이 그대에게 찾아와 그 길을 물으면 그대는 무엇인가를
숨기는가 아니면 친절하게 모든 것을 다 가르쳐 주는가?”
“아니, 감출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저는 모든 것을 아주 친절하게 가능하면 자세하게
가르쳐 줍니다.”
“그러면 그대에게서 상세한 설명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틀림없이 라자가하에 도착할
수 있는가?”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오직 끝까지 완전하게 그 길을 가는 사람들만이 라자가하에
도착합니다.”
“그렇다. 바로 그 점이 내가 그대에게 설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젊은이여, 사람들은
계속해서 내게로 온다. 여기서부터 열반으로 가는 길을 완전하게 알기 위해서 그들은
와서 묻는다. 열반, 자유에 이르는 길은 무엇인가? 무엇을 감추겠는가? 나는 그것을
그들에게 자세하게 설명한다.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렇다. 매우
훌륭하다. 그러나 나는 그 길을 가지 않을 것이다. 그 길을 가는 데 고생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사람이 어떻게 마지막 목적지까지 도착하겠는가?”
“젊은이, 나는 누군가를 어깨에 태워 그 목적지까지 데려다 줄 수는 없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어깨에 태워 마지막 목적지까지 데리고 갈 수는 없다. 단지 사랑과
자비로, ‘그렇다. 이것이 길이다. 이것이 길을 가는 방법이다. 당신도 가 보라.
그러면 그곳에 도착할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몸소 걸어야 한다.
스스로 그 길을 가야만 한다. 한 발자국을 가는 사람은 그만큼 목적지에 가까이 간
것이다. 그 길을 다 걷는 사람만이 목적지에 도달한다. 그대는 그대 스스로의 길을
걸어야만 한다.”
2. 마음의 흐름
참 禪은 관념의 벽을 부수고, 태어날 때 가지고 온 運命의 틀을 자기 의지로 부숴 버린 다음 저 넓은 우주의 세계에서 걸림 없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쌓아 나가는 과정입니다.
스스로 자기 운명의 틀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힘은 전생 몇 겁의 세월 동안 열심히 수행한 공덕이 쌓여 있고 또한 그 공덕이 인연과 어우러져 모든 것을 인정하고 포용하며 완전히 놓고 비우고 버린 후에 역설처럼 찾아오는 자연의 은혜입니다.
모든 것을 놓고 비울 수 있는 용기! 그것은 할 수 없는 절박한 마음이 아니면 그 집착을 놓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한 마음 바꾸는 일(解脫)이 깨달은 자의 입장에서 보면 콧등을 만지는 것보다 더 쉽다고 하지만, 중생의 입장에서 보면 숙업의 세월 동안 익혀온 훈습[固定觀念]을 모두 부정하고 깨트려야 하므로 결코 그렇게 녹녹한 일이 아닙니다.
빌어서 구원 받고 소원을 성취하겠다는 기복이나 相을 뛰어넘지 못한 복덕 즉 有漏福을 가지고서는 저 넓고 광활한 실상의 세계에 결코 다가갈 수 없습니다.
무주상 보시와 같은 마음이 된 공덕만이 외상도 공짜도 없는 실상법을 통과하여 대자유의 세계와 이어져 작용할 수 있습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사실을 걸림 없이 수용할 수 있을 때 그 수행자의 마음은 항상 활짝 깨어있고 그 외모는 大人의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法이다, 論이다, 律이다 하는 모두는 대자유로 가기 위해 절차를 밟는 과정이지 그것 자체가 본질이 될 수는 없습니다.
禮로써 인간의 도리를 다 하면서 가장 사람답게 바른 길로 걸을 수 있는 의지만이 正道에서 이격 되어 있는 거리를 좁힐 수 있으며 이것이 正道를 行하는 모습이고 또한 覺者와 禪知識의 모습입니다.
만상의 근본인 실체(氣)는 이 우주 안에 꽉 차 항상 實存하고 있습니다.
대자유는 원래의 마음이고 실체로 꽉 찬 대 우주의 본질과 그 마음이 통하게 된 상태를 말합니다. 자신의 성품이 만상과 접목되어 의심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하나된 마음이며 이것이 곧 대자유인의 모습입니다.
궤도를 뛰어넘어 저 넓은 우주 속으로 가기 위한 正道는 성품이 순수로 되어지는 길 뿐이다.
3. 오늘의 KEY WORD
참 禪 수행은 태어날 때 가지고 온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힘을 갖추어 가는 과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