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사라진 빛의 잔영

 

1. 이야기

농부가 밭에 두가지 종류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하나는 망고나무이고 다른 하나는 악취가 나는 열대 식물인 님(neem)나무의 씨앗이었습니다. 이 두 씨앗을 같은 토양에 같은 양의 물을 주고 동일한 공기와 햇살을 받도록 돌보았습니다. 두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님나무는 온 힘을 다하여 악취를 풍기고, 망고나무는 온 힘을 다하여 향기를 내뿜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왜 자연은(당신이 좋다면 神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하나에게는 향기를 주고 다른 하나에게는 악취를 주었을까요? 자연이 불공평하지 않은지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자연은 친절하지도 악하지도 않습니다. 자연은 규정된 법칙대로 작용할 뿐입니다. 자연은 씨앗의 본성이 드러나도록 도와줄 뿐입니다. 모든 자양분이 씨앗의 잠재적 능력을 발휘하도록 도와줍니다. 망고나무의 씨앗은 향기로운 성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무도 향기롭습니다. 님나무의 씨앗은 쓴 맛의 성품을 가지고 있으므로 나무는 필연적으로 쓴 향을 냅니다.
농부는 님나무에게로 가서 세 번 절하고 그 주변을 108번 돌면서 꽃이 피고 향기가 나고 열매 맺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농부는 기도를 합니다. "오, 님나무 신이여, 제게 향기로운 망고(mango)를 주십시요. 저는 향기로운 열매를 원합니다."
그러나 가없는 님나무 신은 농부에게 망고를 줄 수 없습니다. 만약 망고의 열매를 원한다면 농부는 망고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누구에게 구걸할 필요도 없습니다. 만약 농부가 망고나무의 씨앗을 심으면 향기로운 망고나무의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씨앗이 있으면 열매가 있습니다.
우리의 무지는 뿌린 씨앗에 대해 엉뚱한 열매를 원한다는 점입니다. 님나무의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맺을 때가 되면 우리는 갑자기 엉뚱하게 향기로운 망고열매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희망없는 망고열매 맺기를 기도하며 울기까지 합니다. 이런 일은 소용없는 짓입니다. 원인이 있으면 그 결과도 있습니다.  씨앗이 있으면 그 열매도 있습니다. 행동이 있으면 그 결과도 있습니다.

2. 마음의 흐름

천안통, 천이통, 숙명통 등의 초 감각적인 경계는 영원히 사용할 수 있는 자생력을 가진 에너지원이 아니라 일정기간 사용하면 방전되는 건전지나 축전지에 연결된 전구에서 발산하는 불빛과 같이 저장된 에너지만큼만 작용하는 한시적인 힘이며 현상입니다.

이러한 경계를 깨달음의 본질로 이해하는 수행자는 밧데리가 서서히 방전하기 시작하면 그것을 계속 붙잡으려는 탐심을 일으키게 되고 또한 잠깐 거쳐간 초 감각적 경험에 대한 환상을 잘 놓지 못한다. 얼핏 다가온 아련한 잔영들을 붙잡고 그것에 대해서 연연하고 있는 서글픈 모습이 됩니다.

이러한 일시적 경계를 무념무상의 세계로 착각하고 있는 수행자에게는 자칭 내가 道人이 되었다는 이기적인 사고가 굳어져 올바른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고착된 자기 기준을 벗어나면 正法조차도 수용되지 않습니다.

놓고, 비우고, 버려야 영원한 자기 것이 될 수 있다는 참 수행의 본질을 모른 채 잠깐 모양 이룬 것에 불과한 허상을 붙잡고 매달리고 담으려는 탐심은 작은 경계를 확대 해석하여 자랑하는 口業만을 끊임없이 지어가게 됩니다.

수행 과정에서 기운이 하나로 끌어 모아질 때에는 괴력, 투시력 등의 환희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때에 보고 들은 알음알이를 고집하고 집착하게 되면 바른 수행은 끝이고 정진은 불가능해 지며 고이면 썩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독덩어리로 변해 갑니다.

안 것을 붙잡지 않는 것이 지혜이며 다 알고 있으나 거기에 묶이지 않는 마음이 올곧은 수행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다만 수행자가 그것에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장애가 되지는 않습니다. 부처님이 오셔서 수행자에게 마정수기(摩頂授記)를 주실지라도 상관하지도 기뻐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부처님은 이 부분을 이렇게 경책하여 주셨습니다.

‘거룩하다는 마음을 짓지 아니하는 것을 善境界라 한다. 만약에 거룩하다는 알음알이를 지으면 곧 모든 邪道에 빠지게 된다’ (능엄경)

禪은 미래지향적이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머물지 않는 마음일 때 참 선의 진면목이 드러나 지난 세월에 감사할 수 있는 성품이 일어나는 것이 禪의 본질입니다.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쉬운 것이 아니고, 새로운 것이 밀려 오고 있기 때문에 지금 있는 것과 생각 속에 머물러 있는 것들은 당연히 물러서야 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어야 합니다. 즉 이 모두를 자연법칙에 입각한 수순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바른 수행의 자세를 견지할 수 있습니다.

3. 오늘의 KEY WORD

수행자는 아련한 추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