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환상과 무기공 그리고 선정삼매
1. 이야기
어떤 사람이 아파서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의사는 그를
진단하고 몇 가지 처방을 적어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의사에 대한 믿음이 대단하였습니다.
그는 집에 돌아와서 그의 기도실에 의사의 사진을 걸어 두고 그 사진을 향하여 존경하는
마음으로 세 번 절하고 꽃과 향을 바쳤습니다. 그리고는 앉아서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의사가 적어준 처방을 꺼내어 매우 경건하게 "아침 두 알, 오후에 두 알, 저녁에도
두 알"하고 암송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온 종일 아니 일생동안 내내 그는 의사에
대한 믿음이 대단하기 때문에 의사의 처방을 암송하였습니다. 그러나 의사의 처방은
아직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의사의 처방에 대해서 더 많이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의사에게 달려가서 물었습니다. "왜 당신은 이 약을 처방했습니까?
이것이 나의 병을 낫게 할 수 있습니까?"
의사는 지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자, 이것이 당신의 병이고 그리고 이것이 병의
원인입니다. 만약 내가 처방한 이 약을 먹으면 병은 자동적으로 사라집니다."하고
설명하니 그 사람은 '매우 훌륭하고 그의 처방은 매우 적절한 방법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집에 돌아와서 "나의 의사가 가장 훌륭하다. 다른 의사들은 필요없다."고
주장하면서 그의 이웃들에게 자랑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그에게 무슨 이득이 있습니까? 평생을 주장한다 해도 이것이
결코 그를 도와 주지는 않습니다. 그가 약을 먹을 때에만 그 사람의 고통이나 병은
치료될 수 있습니다.
자유를 얻은 모든 사람 즉 깨달은 사람은 의사와 같습니다. 자비로부터 고통으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하는 처방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만약 수행자들이 이런
처방을 준 스승을 맹목적인 믿음의 대상으로 발전시키고, 그의 처방을 경전으로 만들어
버리며, 그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교파들과 싸우기 시작한다면,
그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약을 먹고 가르침을 실천하는 올곧은 수행자라고 결코
존경할 수 없습니다.
만약 의사의 충고를 환자가 따른다면 의사에 대한 환자의 믿음은 유용합니다. 만약
약을 먹고자 하는 동기를 유발시켜 준다면 약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유익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약을 먹지 않는다면 병은 치유되지 않습니다. 수행자는
스스로 약을 먹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먹은 약이 작용하여 약효로 나타나야 합니다.
처방전이 자랑이나 위안의 대상으로 남아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2. 마음의 흐름
스스로 그려놓은 환상의 세계 속에서 虛像의 나래를 펼치며 결가부좌하고 두 눈 지그시 내려 감고 흔들흔들 앉아 있는 모습, 눈뜨면 귀찮고 짜증나고 역겹게 느껴져 다시금 가부좌하고 앉아 환상의 극락세계로 회귀해야 하는 수행자 즉 현실과 부닥치면 즉시 허물만 벗어 놓고 實體는 도망을 쳐버리는 수행자의 모습은 無記空의 모습입니다.
禪定三昧는 생각을 일으켜 분별의 파장을 일으키지 않으니 몸과 마음이 새나 산짐승 등 주위의 순수 자연과 함께 어울려 하나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微細妄念이 그려내는 환상의 세계가 아니고, 몸과 마음이 완전한 휴식을 취하면서도 정신과 의식은 활짝 깨어 있는 실제의 세계입니다.
이 세상을 허망하고 부질없는 공망의 장소로 생각하며, 관념만 如如해지고 할 일을 잃어버린 수행자, 즉 잠시 맛본 기억에 대한 주의 주장만 앞세우며, '내가 확실히 높고 아는 것이 많다'고 큰소리 치며 지나가버린 작은 체험(超感覺的知覺)에 대한 향수와 추억에 사로잡혀 있는 수행자의 모습은 無記空의 모습입니다.
일상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中心이 흔들리지 않으면서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함으로써 인간된 도리를 해 나가는 日常三昧, 一行三昧야말로 靜中動의 진실한 본체이며 禪定三昧의 살아있는 모습입니다.
정녕 깨달은 자는 산속의 암자로 向하지 않고 삶의 현장으로
돌아와 누구보다도 많은 일들을 기민하게 行하나 삼라만상의 존재에 묶이지 않습니다.
'도인은 할 일이 없고 할 일이 없다'라는 말은 억수로 많은 일들을 行하나 내 마음이
거기에 묶이지 않음을 표현하고 있을 뿐이며 수행자가 바로 알고 行하지 않으면 그것은
무기공의 모습입니다.
참선 수행과정에서 수용하게 되는 경계는 무수히 많기 때문에 이루 다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고요하고 편안한 三昧를 탐하여 거기에 머물러 있고자 하면 그것은 이미 탐심의 발로이며 靜 속의 순간삼매 자체도 체험, 유지할 수 없으며 行住坐臥 語默動靜간의 動 속의 삼매는 더욱 더 맛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옛 스승들은 무기를 경계하라 하였고 이런 저런 논설 없이 오롯하게 자기 할 일을 이행할 수 있는 성품된 것이 곧 선정삼매에 몰입된 生佛이니 옛 부처, 죽은 부처, 송장보다 못한 신선 그리워 할 일 없는 것이 선정 삼매요, 행동하는 참 禪이라 하였습니다.
육조 혜능대사는 이렇게 당부하고 타일러 주셨습니다.
"이 법은 모름지기 실행할 것이요 입으로 외는 데 있지 않다. 입으로 외고 실행하지
않으면 꼭두각시와 같고 허깨비와 같으나, 닦고 행하는 이는 법신과 부처와 같으니라.
마하의 마음은 한량없이 넓고 커서 허공과 같으나 빈 마음으로 앉아 있지 말라. 곧
무기공에 떨어지느니라." (육조단경 : 性空)
3. 오늘의 KEY WORD
수행자는 환상과 무기로부터 벗어나 行住坐臥 語默動靜간의 日常三昧로 돌아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