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유체이탈의 바른 이해

 

1. 이야기

어느 날 한 젊은이가 울면서 부처님을 찾아와서 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은 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젊은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예, 어제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어쩔 것인가? 운다고 해서 돌아가신 분이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해합니다. 그러나 저는 특별한 부탁이 있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제발 죽은 아버님을 위해 무언가를 해 주십시오."

"음, 내가 너의 죽은 아버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제발 무언가를 좀 해 주십시오. 당신은 매우 힘이 있는 사람이고 분명히 무엇을 하실 수 있습니다. 사제들, 면죄부를 파는 사람, 자선기부금을 모으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돕기 위해 장례식이나 종교적 의식을 집행합니다. 장례 의식이 행하여 지면 천국의 문이 열리고 죽은 사람들은 그곳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는 입국비자를 얻은 것입니다. 부처님, 당신은 그런 힘이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죽은 저의 아버님을 위해서 제사를 지내 주신다면, 그는 비록 입국비자를 발급받지는 못했지만 영원한 거주를 승낙 받게 될 것입니다. 제발 죽은 아버님을 위해 무언가를 해 주십시오."

이 젊은이는 너무나 슬펐기 때문에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그를 위해서 새로운 방식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부처님은 그에게 말했습니다.

"좋다. 시장에 가서 단지 두 개를 사오너라."

젊은이는 부처님은 그의 죽은 아버지를 위해 어떤 의식을 집행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는 시장으로 달려가서 단지 두개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좋다. 한 쪽에는 버터기름을 넣고 다른 쪽에는 자갈을 넣으라."

부처님이 지시한 대로 젊은이는 따랐습니다.

"자, 그것들을 연못에다 집어 넣으라."

젊은이는 그대로 했습니다. 두 개의 단지는 연못 밑바닥으로 가라앉았습니다. 부처님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자 이제 긴 막대기를 가지고 와 그 단지를 쳐서 깨뜨려라."

젊은이는 부처님이 그의 아버지를 위해 훌륭한 의식을 한다고 생각하고서 매우 기분이 좋았습니다.

인도의 옛 관습에는, 아버지가 죽으면 그의 아들은 화장터로 가서 장작 위에 시신을 올려 놓고 불로 태우다가 몸이 반쯤 탔을 때 두꺼운 막대기로 두개골을 지끈 깨뜨려서, 이때 두개골이 깨어지면 천국의 문이 열린다는 미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는 '아버지의 몸은 이제 다 재로 변해가고 부처님은 상징적으로 내가 이 단지를 깨뜨리기를 원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매우 행복했습니다.

부처님이 말한 대로 젊은이는 막대기를 가지고 두 개의 단지를 내리쳐 깨뜨렸습니다. 당장에 한 쪽 단지에 담겨진 버터가 흘러나와 연못 물 표면으로 떠올랐습니다. 다른 쪽에 담긴 자갈은 흘러나와 밑바닥에 남았습니다. 그때 부처님은 말했습니다.

"젊은이, 이것이 내가 행한 의식이다. 자, 이제 너의 사제들과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불러와 그들에게 찬송과 기도를 하게 하라. '오 버터여 밑으로 가라앉으라, 가라앉으라.'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오, 부처님 당신은 지금 농담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자갈은 물보다 무겁기 때문에 바닥으로 가라앉았습니다. 그것들은 위로 올라올 수 없습니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입니다. 버터는 물보다 가볍기 때문에 물표면에 올라옵니다. 버터는 아래로 가라앉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젊은이, 그대는 자연의 법칙을 매우 잘 알고 있으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그대의 아버지가 그의 인생에서 자갈처럼 무거운 행위를 했다면 그는 반드시 아래로 내려간다. 누가 그를 위로 끌어올리겠는가? 그리고 버터처럼 그의 행동이 가벼웠다면 그는 반드시 위로 올라간다. 누가 그를 아래로 끌어내리겠는가?" (상응부 경전)

우리가 보다 빨리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여 그 법칙에 따라 살아가면 갈수록 우리는 보다 빨리 삶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2. 마음의 흐름

사람이 살아서 경험할 수 있는 유체이탈이란 氣(에너지)의 늘어남 작용에 의해 視界와 의식의 인식범위가 확장되는 것이지 정신이 육체에서 이탈하여 어디를 다녀오고 무엇을 할 수 있고 하는 신비의 세계가 아닙니다.

유체이탈은 육신에 담긴 생명에너지가 다하는 날 자동적으로 유체(幽體)가 육체에서 이격 된 후 일어나는 의식과 육체의 분리작용입니다. 즉 엄밀한 의미에서의 유체이탈은 살아있는 동안은 불가능합니다.

세간에서 회자되고 있는 산자의 유체이탈은 확신에 찬 자기의식이 결여되어 주인 노릇을 제대로 못할 때 비몽사몽간에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 지구에서는 볼 수도 없고 현존하는 과학이 증명할 수도 없는 미지의 세계를 가보고 싶은 강한 염원이나 관념이 그려내는 환상에 불과합니다.

실체[法]로 말하면 하나[一氣]에서 가지 벌어져 있는 것이 이 삼라만상의 모습이니[萬法歸一處], 마음이 하나되고 시절인연이 닿으면 경계를 뛰어 넘는 과정에서 당연히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 현상계를 자유스럽게 넘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드러남의 모습은 세포 내 기억소자인 정신이 육신에서 분리되어 어떻게 된 것이 아니고, 정신이 담긴 육신이 주변의 가용한 에너지를 최대한 끌어당겨 자기의 불빛[氣 또는 에너지]을 극대화하는 실존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지 관념상의 신비로움은 결코 아닙니다.

설사 시공을 초월하여 우주 공간을 교통할 수 있는 경계를 체험하더라도 그것은 수행자에게 ‘이렇게 될 수도 있고, 이래서 하나가 萬이 되는구나’하는 ‘존재의 이치’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고 또 의심이 풀렸다는 것뿐이지 그 이상의 특별한 무엇을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또 다시 그러한 접목을 위해 의식을 굴린다거나 또는 그 자체를 일삼아 추구한다면 그것은 웃음거리에 불과합니다.

사람은 발을 땅에 딛고 사람답게 살아가려고 할 때 참 사람입니다. 잘못된 의식이 자아를 이끌고 다니면서 그리고 있는 신비스러운 환상과 관념은 모두가 허상이고 착시일 뿐입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금생에 주어진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신비와 관념의 세계를 뛰어넘은 지혜로운 자의 덕목이고 또한 최선의 삶을 사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3. 오늘의 KEY WORD

깨달음은 결코 신비로움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