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올바른 삶이란?
1. 올바른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
정녕 올바른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기독교에서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삶을 가장 올바른 삶으로 주장하고 있고,
유교에서는 공자께서 펼친 사서삼경에 따라 예와 덕을 쌓으며 사는 삶을 추천하고 있고,
또 불교에서는 석가모니께서 살다 가신 모습처럼 자기 마음 즉 자기의 성품을 알아 걸림없이 사는 대자유의 삶을 제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또 무신론자들은 보다 많은 돈과 지위를 얻어 물질적으로 궁하지 않게 떵떵거리며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을 그 목적으로 삼고 있기도 합니다.
아뭏튼 그 삶의 양태는 각양각색이고 보는
관점에 따라 옳을 수도 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희 우곡선원은 어떤 형태의 삶이 반듯이 진리이고 꼭 따라야만 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일부 사람들만이 인정하는 그러한 진리가 아니고 良識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가장 보편 타당한 올바른 삶의 양태를 제시하고자 할 뿐입니다.
종종 사람들은 진리, 수행 또는 깨달음 등의 얘기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생각하는 부분이 고행, 평화로움, 신비로움 등으로 이어지면서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초능력의 개발을 궁극의 목적으로 하여 그 어떤 경계에 도달하고자 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왕왕 이러한 공부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자기가 하고 있는 현실의 일들을 하찮은 것으로 부정하고 산이나 암자로 또는 특수한 수행 처로의 도피만이 올바른 수행의 전부인양 강조하기 쉽습니다.
1999년10월18일자 중앙일보 31면에 실린 기사 내용입니다.
"道 닦는데 걸림돌" 40代 성기절단
16일 오전 3시10분쯤 광주시 동구 김모(43)씨 집 안방에서 김씨가 "종교생활에 걸림돌이 된다"며 자신의 성기를 절단,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봉합수술을 끝내 거부했다. 김씨는 군 제대 후 특정 종교에 심취해 결혼도 하지 않고 산중 생활을 해오다 3년 전부터는 집에서 두문불출 해왔다.
이 얼마나 안타깝고 어리석은 행동입니까?
우곡선원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道는 자연의 섭리를 정확히 알아 그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더불어 사는 모습이며,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살 수 있는 힘을 증장하는 과정이 곧 수행이다.
2. 牛谷禪院이 지향하는 올바른 삶의 모습
1) 생각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 있는가?
가.우주의 中心은 내가 아닙니다 : 고정관념으로부터의 탈출
모든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가가지 않고 자기 견해와 주장에 묶여서 객관적이 아닌 극히 주관적인 내 생각만이 맞다고 고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五感으로 감지되는 부분들이 우주의 全部는 결코 아닙니다. 우주의 實體는 보이는 세계 절반과 보이지 않는 세계 절반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즉 有爲世界와 無爲世界의 조화입니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억측입니다.
내 생각만이 진리라는 것은 망상입니다, 내가 또는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생각도 인간입장에서만 바라본 억측입니다.
나.나의 입장이 아닌 우주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知慧를 갖추어야 합니다.
붉은 안경, 파란 안경을 벗고 있는 그대로 보니 지금까지 세상을 나의 잣대로만 측정하여 잘못 보아 온 것에 대한 회한의 마음이 가득히 일어나야 합니다.
2) 연의 이치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있는가?
가.禪定에 들어가지 않으면 자연의 순수에너지와 교류할 수 없습니다.
내 마음의 항아리가 망상과 미혹으로 가득
자리잡고 있는데, 어떻게 자연의 이치인 순수의식이 그 항아리에 다시 들어가 채워질
수 있을까요?
내 마음의 어리석음 즉 미혹을 놓고 비우고 버릴 때 순수에너지가 그 자리로 교체될
수 있습니다.
역대 선지식들의 言行을 내 마음의 율장으로 삼아 인과에 묶이지 않는 實像觀을 익혀가면
점차 禪定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내가 머리를 숙이면(下心이 익어서 無念이 된 마음) 삼신불이 작용하여 순수에너지가
감응합니다
나.연과 나의 생체에너지가 상호 교감을 일으키면 내 몸 구석구석에 氣의 작용이 일어납니다.
氣의 운용을 위해서는 앞서간 스승 즉 선지식의
지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한 마리의 병아리가 부화되기 위해서는, 안쪽에서 쪼고 바깥 쪽에서 쪼아주는 시간이
정확하게 들어 맞을 때 계란의 벽은 깨지고 새 생명의 탄생이 가능하게 됩니다. 이를
'줄탁동시'라고 말하며 時節因緣이라고도 합니다. 물론 그 時間이 되기까지 알을
품고 앉아서 온도를 조절해 주고 때를 기다리는 어미닭의 인내와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 어미닭의 역할이 수행에서는 곧 스승의 역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느 한쪽이라도 그 역할이 결여된 상황에서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어미닭의 도움과 더불어 안쪽에서 쪼는 작업, 즉 내면적인 자각과 주체적인 수행자의
정진 또한 필수적인 전제 조건입니다.
다.생체에너지의 회전이 가능하면 정신에너지가 맑아지고 병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므로 자연의 이치에 따라 양양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힘은 확신에서 비롯되며 확신은 의심하는 마음이 없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의심하는 마음이 없어 지려면 자연의 이치 즉 根本을 확연히 알아야 합니다
라.이렇게 나의 주장과 집착을 놓고, 비우고, 버리는 과정을 참 禪 수행이라고 합니다
상대 비교하는 분별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다가갈 수 있어야 합니다.
3) 나는 만상을 수용하며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걸림 없이 살아가고 있는가?
가.생각한 바를 확신을 가지고 가장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실행합니다.
힘있는 사람에겐 오직 이 순간밖에 없습니다.
과거의 기억을 끌어다가 미래의 걱정을 결코 만들지 않습니다
定과 慧가 함께 어우러진 올곧은 마음 즉 一行三昧로 살아갑니다.
禮와 德을 갖추고 지금 있는 이 자리에서 자기의 役割에 충실합니다.
모든 境界를 수용하는 마음으로 萬象과 調和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나.이 우주와 하나된 삶을 살아갑니다
생체에너지가 均衡을 이루어 항상 中心잡힌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무량한 중생을 다 제도하고, 무량한 번뇌를 다 끊고, 무량한 법문을 다 배우고, 위
없는 불도를 다 이루는 사홍서원의 誓願力으로 살아갑니다
다.일체유심조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생이 바뀝니다.
3. 牛谷禪院 5계원
이러한 수행을 우곡선원에서는 "行住坐臥 語默動靜의 일상생활 속에서 中心 잡힌 삶을 영위하는 행동하는 참 禪 修行"이란 말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지혜는 '나다'하는 小我的인 것들이 부서지고 '우리'가 되고 '하나'가 되는 즉 '하나로 보는 智慧'가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慈悲의 實踐'으로 이어져 가야 하겠지요.
그렇게 하여 '正語, 正業, 正命, 正精進,
正念, 正定, 正思惟,正見 즉 八正道의 行이 모두 함께 그리고 동시에 어우러지는
삶' 그것을 일러 우리는 '보살의 行'이라 이르고 있습니다.